
[설날 처가집동네 다리 앞에 마눌의 동창회 알림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는 형부]
엄마, 아빠에게 세배드리러 친정으로 갔다. 엄천교에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올해는 엄천골 한마당에 가야만 한다. 다들 내 꼬락서니를 궁금해하니까.
내가 어쩌다가 하늘같은 1회 선배서부터 12회 동년배들한테까지 존재감을 떨치게 되었난고.
국민학교시절의 청소시간이었지. 저건네 후배 가스나와 머리카락 쥐어뜯고 싸우다가 선생님
의 중재로 겨우 머리털을 건사하긴 했는데 시원하게 성질 제대로 피운 댓가는 아주 참담한 것
이었다. 연적과 마주보고 두 팔로 서로의 양쪽 귀를 잡은 채 청소시간이 다 끝나도록 서 있어야
만 하는 체벌을 받게 된 것이었다 하필 같은 층에 모개의 교실이 있어서 복도를 청소하던 모개
가 이 꼬락서니를 보고 말았다. 그 시절 선생님들은 체벌에 있어서 어쩌면 그렇게도 창의력이
풍부했던지......
선생님의 끗발나게 왕성한 창의력 덕분에 이후로 쪽은 내가 팔았는데 고개는 모개가 수그리고 다녔다.
"니 언니 지금 귀때기 잡고 벌 선다"
"니 언니 어제 머리 쥐뜯고 싸우다가 벌 섰데"
"와아, 역시 동강딱다구리 쎄다야~"
이렇듯 내 드높은 존재감은 일찌기 발현이 되었던 것인데 이와 더불어 앞으로 십수년간 내 2년 후배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모개에게는 고개를 들지못하고 다녀야하는 숙명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양념한 무우조각에 북어대가리를 빠수어 넣은 깍두기
갈비찜
각종나물
어리굴젓
굴비
버섯두부찌게
쇠고기콩나물국
얘들을 끓이고 볶고 데우고 지지고 무쳐서 저녁밥상을 차리는데 둘째언니네가 들이닥쳤다.
아버지께서 일찌감치 절받을 준비를 끝내신데 반해
"아유~ 나는 세배 안받아 밥 채리야 돼"
식구들 밥상차리는 일을 방해받고 싶지 않으신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셨다.
결국은 아버지 옆에 앉게 되신다는 사실을 수십년간 겪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체득이 안되실까원~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응, 너그도 올 한해는 다아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잘 살아라"

저녁을 다 먹고 치우니 모개네가 들이닥쳤다. 모개네가 매번 꼴찌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너그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이~"
이 쓰부랄것들은 꼭 골찌로 와서는
양념한 무우조각에 북어대가리를 빠수어 넣은 깍두기
갈비찜
각종나물
어리굴젓
굴비
버섯두부찌게
쇠고기콩나물국
얘들을 끓이고 볶고 데우고 지지고 무쳐서 차렸던 밥상차림을 다시 반복하게 한다
모개네가 매번 골찌로 도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고성시댁에서 친정인 동강으로 바로 오지않고 진주의 자기네 거주지를 경유하여 오기 때문이었다.
샤워를 하고 온다나 뭐라나 이래놓고 우리가 저녁세안을 한다 아침 세안을 한다하고 수선을 떨면
모개는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장황하게 이야기 하였다.
"어허~자고로 설, 추석 명절엔 씻는 법이 아니거늘~"
하면서 덧붙이기를
"눈꼽까지는 떼 주어야지"

시간이 매애 흘러
문어,오징어숙채, 경단, 오징어구이, 전, 순대, 식혜, 소주, 맥주, 딸기, 사과, 감, 배, 키위
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주안상과 다과상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두 모였다.
별안간 악력이 월등한 혜진이가 보스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일제히 혜진
의 손 끝에 따라 진저리를 치는 보스의 어깨를 타는 목마름으로 지켜보았다. 다들 하나같
이 눈에는 별을 박아넣은 듯 초롱초롱 반짝였다.

마침내 아이들이 벌떼같이 보스에게로 달려들었다.
"어이~ 어이~ 그라지 말고 주욱 서 봐라"
보스형부가 광란의 벌떼들을 진정시켰다.

아이들이 재빠르게 세배대열을 이루었다.
"현아 너도 빨리 저 형 옆에 가~ 서 빨리"
막내 희는 때묻지않은 순수한 영혼을 벌떼의 무리에게로 들이밀었지만 현의 반응이시원찮다.

"하나 둘 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렁찼다.

"줄을 서시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큰 이모부의 지갑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세뱃돈 받는 대열이 한 명씩 줄어들 때마다 큰 이모부의 지갑에서는
만원짜리가 두 장씩 줄어들었다.

여호~ 여호~ 엿호~!
세상을 다 가진듯 원~ 저렇게도 좋을까
주어서 즐겁고 받아서 기쁘고 펄펄 날뛰게 우리 좋은 날! 설날!
"성은아 받는 자의 체통을 지키려무나"
엄숙한 현우가 마지막으로 세뱃돈을 받았다.


이 둘의 공통점은 세뱃돈 수령의 열외자로 세뱃돈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곧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현과 이제 곧 대학졸업과 함께 취업의 좁은문을 앞둔 민지는
좀 심란하였다.

대학생 유진, 제 밑은 제가 닦아야하는 일반인의 신분으로 세뱃돈 수령의 대열에
당당히 끼지 못하고 약밥 두어개 집어 먹다가 큰이모부에게 호출되었다.
오만원권 세뱃돈이 지급되었고 지켜보는 이들의 환호속에 유진은 오지게 기뻤다.
만원 권 두 장씩 받은 아이들도 자기일처럼 기뻐했다.
대학생은 노는 물이 자기네랑은 다르니까 세뱃돈 금액도 달라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더 나아가 유진의 모습이 머지않아 미래의 자신들의 모습이겠거니 하며 흐뭇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혜진이가 둘째이모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혜진의 악력에 관한 악명을 익히 아는 카르멘은 빠진 놈, 줬는데 또 받는 놈이 없도록
재빠르게 아이들을 줄 세웠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세뱃돈을 줄테니 세배는 필요없고 대신 전부 저 방으로 싹~! 들어가 놀아"
"예에~엡!!"
아이들을 한 방으로 몰아넣고 어른들끼리의 격정적인 담소가 이어졌다.
"우리 전깃세가 17만원이나 나왔지 뭐야"
"그건 당신이 전등불을 잘 안끄니까 그렇지"
"아냐 아파트 자체가 쓸 데없이 조명장치를 너무 많이 해 놨어"
"그러고 자기는 코드를 생전가야 안뽑잖아"
"그거 꽂을 때마다 얼마나 썽나는데 왜 뽑아"
"우리 장항 시댁은 수도공사가 잘못돼서 다른 집 수도세가 시댁으로 날라왔어
"우찌 그럴 수가 있노"
"물을 전혀 안써는데 계량기가 뱅뱅 돌아가 옆 집 수도를 다 잠그면 안 돌아가고"
이런저런 오만이야기를 하다가 엠비씨 드라마 [빛과 그림자]를 시청하고 자
정이 훌쩍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캄캄했던 마당에 햇살이 퍼졌고 마루창으로 저건네 하늘, 산, 강, 들판, 길, 전
봇대가 쏟아져 들어왔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밥짓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밥하는데 우리는 이리 누워있고 이래서 되겄나"
보스가 말했다.
"이건 그냥 엄마가 밥을 하는 거야, 명절 뒷날은 이렇게 늦잠을 자 줘야하는 게 맞아"
나는 잠에 잠긴 목소리로 보스에게 내 신념을 펼쳐보였다.

남편과 아이들을 따돌리고 순수혈통 밀양박씨 다섯자매는 당성개울로 갔다.
남서방이 멋모르고 따라 붙었다가 귀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매서운 날씨에
놀라 그만 귓볼을 감싸쥐고 집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이른 겨울에 김장배추를 씻던 자리가 꽁꽁 얼어붙었다. 세월은 쏜 화살과 같
이도 빨라 배추씻던 일은 벌써 작년일이 되어버렸다.
구시락재를 넘을 때 국민학교 동기생을 만났다. 이 동기생은 나와 같은 밀양 박
씨로 윗항렬이어서 판경이 아재로 불렸다. 이 아재는 국민학교를 엄천골에서 다
니고 이내 마산으로 전학을 갔다. 아재는 동네에서 야무진 놈으로 어디에 내놔도
굶어죽지는 않을 놈이라고 했다. 땡땡하고 거무튀튀한 얼굴이 둥글넙적했고 눈과
코가 부리부리했던 아재는 동네에서고 학교에서고 국민학교 시절의 내 패악질과
명성을 두루 꿰뚫고 있는 인물이었다.
거무튀튀하던 얼굴이 뽀얬고 치아가 하얬다.서글서글 미소띤 눈가에 사람좋은 주
름이 부채살처럼 퍼졌다. 현재 마산에서 한 몫 단단히 일구어 따뜻하게 잘 산다고
언니가 뒤에 말해 주었다.
진주 처가에 들렀다가 혼자 이 곳 뒤뜰에 있는 조상의 묘에 절을 드리러 왔다고
했다. 홀로 조상을 찾을 만큼 뿌리에 애착을 갖는 중년이 된 것인가 싶어서 나는
가슴이 얼얼했다. 판경이 아재는 매해 초등총동창회에 참석한다고 했다.
우리는 서 너박자 늦게 악수를 나누었다. 수십년 동안 만나지 못한 시간들을 만
회하고 재회가 수십년 만인 것을 일깨우려는 듯 판경이 아재는 내 손을 으스러
지게 잡았고 내 손은 아재의 손 안에서 짜부라들었다. 집에 들렀다 가라는 인사
도 없이 우리는 판경이 아재를 뒤로 하고 구시락재를 넘었다. 다섯자매들의 타
고 난 혈통에는 고향을 배회하고 떠돌아야만 하는 역마살이 흘러서 귀한 손님
을 집으로 들일 만한 염을 낼 수가 없었다.

운서마을을 지나서 엄천교를 보고 걸어갔다.
카르멘이 평소 갈고 닦은 정치, 사회, 문화, 예술, 경제, 철학이야기를 설파했다.
나는 연애이야기가 좋은데 카르멘은 연애이야기만 쏙 뺐다. 그런데 듣다보니 정
치, 사회, 예술, 문화, 경제, 철학이야기가 몹시 신선하게 다가왔다.


가다가 묘지를 만났다.
참새가 물레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듯이 우리는 메똥에 들러서 쉬어갔다.
어릴적엔 메똥에서 많이 뛰놀았다. 메똥이 많이 모여있으면 무섭지만 하나, 둘만
있는 메똥은 따뜻하고 만만하고 정겨웠다.

"저 소나무 두 그루 있는 곳에 가 본 사람?"
보스가 해뜨는 동쪽을 보고 물었다. 여름엔 왕산에서 해가 뜨지만 겨울엔
왕산 앞쪽 기암터를 에워싼 동산에서 해가 떴다 그 동산의 칠부 쯤에 소나무
두 그루가 우뚝했다. 우리는 보무도 당당한 대신 강추위에 어깨를 잔뜩 움츠리
고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뒷동산으로 출발했다.

유년기에 묵나물을 먹던 겨울이 지나고 새 봄 제일 먼저 먹게 되었던 봄나물이
양지에서 돋아 있었다. 북서풍이 부옇게 부는 그 바람속에서 터진 손으로 한소
쿠리 캐어가면 어머니는 끓는 물에 데쳐서 간장, 고춧가루, 식초, 다진마늘, 깨소
금을 넣고 무쳐 주셨다. 이름이 무언지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그냥 <첫봄에 먹는
오골오골한 나물>이라고 했다.

동강마을(기암터)앞으로 지리산 둘레길 제 5구간이 나 있지만
진정한 지리산 둘레길은 제 5구간을 아래로 바라보며 걷는 이 길이 맞을 것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고향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지리산에 기대어 세상을 맞아들이는 형국이었다.
아니, 지리산에서 나서 세상으로 뻗쳐나가는 형국이었다.
저 강물이 세상으로 흘러가고 있지않은가

빈들녘에 봄이 오면 쑥캐러 오자고 약속했다.

길은 얼어서 샤벳트 같았다.
사각사각 걸었다.
봄볕에 녹았다가 봄볕에 말랐다가 다져질 것이었다.

밤나무밭을 지나고 덤불숲을 헤집었다. 카르멘이 길을 열었고 다들 뒤따라갔다.
"우리는 왜 저 멍청한 리더를 따라가야만 하지?"
"글쎄 저 리더만이 지도를 갖고 있대"
나는 오쇼 라즈니쉬의 [배꼽]에서 읽은 한토막을 지껄였고 모개가 낄낄거렸다. 목표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겪게 되는 고난의 여정을 기꺼이 즐겼다. 함께라면 지옥불 속에서도 우리는
행복하리~
"이것이 바로 빨치산행이라는 거야, 지리구구의 정신이지"
내가 또 지껄였다.
곧 또렷하고 정갈한 길이 나왔다. 길따라 묘지가 나왔고 묘지를 따라 나 있는 산길을 치고
올라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 곳에 닿았다. 제법 시야가 넓었다. 저 멀리 유림면소재지가
보였다. 소나무는 멀리서 바라볼 때보다 아담했다. 높낮이가 약간 다르게 위치한 이 부부
소나무의 성별을 가늠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떼지어 한 나무씩 번갈아가며 소나무를 따
뜻하게 안아주었다. 여기서 더 동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방곡 쪽으로 이어져 있어서 계속
나아갈 수도 있었고 소나무가 자리한 이 능선을 이어 나갈 수도 있었다. 방곡방면의 숲쪽
에서 우거진 나무들이 연누런 빛깔로 부풀어 보였다.
"와아~ 저기 봄이 온다"
희가 소리쳤다.
"어, 진짜 그러네 나무 색깔이 틀리네"
카르멘이 외쳤고 나무중에서 가장 먼저 움을 틔우기 시작하는 것이 오리나무라고 알려주었다.
"오리나무는 옛날 행정가가 길의 거리를 가늠하려고 오리마다 한 그루씩 나무를 심은 데서 오
리나무라는 이름이 생겼다데"
내가 어디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속에 들어와서 또렷하게 살아있는 기억으로 오리
나무의 이름에 대한 유래를 말해주었다.
눈으로 길은 들어왔고 마음속에 길이 흘렀다. 새봄에 다시 와서 꼭 저 오리나무 숲 길을 걸어보
자고 약속했다. 우리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뛰었다. 점심 때가 많이 지나있었던 것이었다. 아량
이 좁은 남편의 순서대로 다섯자매의 뜀박질의 대열이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내가 맨 먼저 튀어
나갔고 보스가 맨 뒤로 쳐졌다.
"나 신경쓰지 말고 뛰어 어서 가서 집안의 평화를 지켜내~~"
뜀박질에 약한 보스가 숨이 차서 곧 쓰러질듯한 몸짓으로 겨우 소리쳤다. 앞쪽으로는 성질이 뿔처
럼 돋아서 씨근벌떡해 있을 남편들이 떠 올랐고 뒤쪽으로는 짜리몽땅 동글동글한게 잘도 뛴다고
킬킬거리는 카르멘과 모개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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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박씨네 집안이 화목한 이유가 뭘까하고 나름 생각해봤습니다...
1.양부모님의 생존
2.훌륭한 가풍 아래 인성 바른 아들딸로 키워낸 올바른 자녀 교육
3. 전구성원의 선한 심성
4.형제 자매들간의 독독한 정..
글의 후반부에 자매들끼리 산책을 나서는 모습을 읽으며
이들중 자매들간의 변함없는 두터운 정리가 제일 큰 역활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강딱다구리 입이 건 줄은 익히 알고 있지만 제발 마산 방향 바라 보고 쓰부랄놈 소린 좀 그만해줄 순 없겠소
요새 내 귀가 하도 이상스레 근질근질 해서 하는 부탁이니 제발..........ㅋ
석죽과 '별꽃'입니다. 흔히 잡초처럼 취급하는 2년생 풀입니다.
나물로 그리고 국으로 많이 먹기도 합니다. 특히 산모에게 도움을 많이 주는 식물입니다.
사실 맛은 별로 없습니다. 풀맛이죠 하지만 매서운 겨우내 뽑아낸 별꽃은 그어떤 영양가 있는
식품 보다 뛰어난 보양식이랍니다.
땅빈대.돌나물.별꽃.쇠별꽃.광대나물.양지꽃 등은 겨울에도 살아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데요
산야초 효소를 담거나 아님 나물로 먹어도 손색이 없답니다.
암술머리가 5갈래로 갈라지는걸 '쇠별꽃'이라고 합니다.잎의 모습이 별꽃하곤 조금 다르죠..하지만 맛은 같습니다.
비슷한 유사종으론 '점나도나물' '벼룩나물'이 있습니다. 모두 식용합니다.
오랫만에 들어 와도 가끔 보이는 유키언니 서부경남 찐한 사투리 같은 욕덩어리가 쏙 맘에 듭니다!
첫봄에 먹던 오골오골한 나물은 벼룩나물이 아니었을까요? (위의 사진과는 상관없이 서마산에서는 벼룩나물을 초장에 무쳐 먹었거든예)
온 가족의 간부화가 되는데는 유키의 공이 젤 클것 같은데
그집 외며느리는 딸들끼리 마실가면 안따라 가나?
우리친정 외며느리는 지가 먼저 나서는데
여섯째 딸이라면서
여자 형제 많으니 참 좋제?
아들은 하나만 있으면 돼!!!
딸은 많을 수록 좋아!!!!
자매들이 많은 유키님이 넘 부럽네요
전 딸랑 남동생 하나 아직 결혼도 안해서 명절이어도 집이 썰렁하답니다 ~
시댁도 1남2녀라 단촐하고 ~
명절이면 시골내려가서 뒷산에도 같이 오르면서 수다도 떨고
밤에 모여 같이 자고 이래야 명절 기분이 나는데 말이죠 ~
형제 자매들끼리 우애있는 모습 넘 정겹고 부럽고 보기좋아요 ~^^
유키님 늦었지만 복 많이 받으세요 ~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 큰절올립니다 .,, 새배돈은 구좌로 보내주이소, ㅋㅋㅋ,ㅇㅎㅎ,우우하하.
독수리 오형제인대 암수 독수리이네잉,,,
정말 화목한 가정 부럽습니다, 가정이야기를 자신있게 올릴수있는것 정말좋습니다,
새해에는 좋은 일 마니마니 있으시고 좋은 글 많이 올려주이소 ,,
아이~ 춘세님 와 이라세요
제가 세배를 드려야죠
큰절 올린다시는 씨근밥겉은 소리 하시오면 제가 민망합니다요
제가 요즘 김훈의 [흑산]을 읽고 있사온데 거기에 재밌는 표현이 나와요 [식은 소리] 이온데 재밌죠?
이것을 뼈대로 하여 제가 살을 붙여서 말을 좀 꾸며 보았어요 [씨근밥겉은 소리]로요 재밌죠? ㅎㅎㅎ
식은 밥을 서부경남에서는 씨근밥이라고 하지요.
춘세님이 주시는 기운에 힘입어 새해에도 재미난 글(수다) 많이 많이 올릴게요
제 경우, 수다를 푸는 일은 푼수를 떠는 일일 것인데 이 푼수떠는 일은 힘에 겨웁지만 이 일로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거든요.
설날 풍경이 정겹구나.
세월이 갈수록 이런 정겨움과 멀어지는것 같아 슬플때도 있다.
제사는 저 멀리 형네로 가져 가버리고 썰렁한 고향 부엌에는 연로하신 어머니만 홀로앉아
그들막을 지키고 계시니 차마 차례를 모신다고 어머니를 안뵐수가 있어야제.
이런이유 저런핑게 때문에 설날이 설날같지않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가봐.
못먹고 못살때의 소박했던 정겨운 설날이 유키의 설날을 보며 더 그리운것은 나만이 아닐것 같어.
엄서방한테 잘해라~~~
어이~ 뚱띠~
아니아니 우리 진주팀의 복스럽고 아름다운 청년 덕불고야
진주비박은 잘 다녀왔제?
어머님을 모시고 큰형님댁으로 차례지내러 가면 되지않아? 창녕, 의령, 형님댁....... 너무 멀까....
설날이란 글을 올려놓고 곱고 고운 분들이 해 주시는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복구디에 빠져있는 사람이란 것을 깨달아간다
우린 시댁이고 친정이고 명절만 되면 난리벅꾸야
요즘사람같지 않게 가부장적 중심을 잡고 굳건히 지켜나가는 엄1세 엄2세 덕분일테지.
그래서 엄서방한테 잘 하고 있어
간밤엔 내 늑골을 하도 발가락으로 찔러대서 (뇌쇄적인 미소로 수차례 그러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서 던졌더니 그게 하필 라이터였고 서방얼굴을 스쳤지 뭐야
(순간 아주 강력한 데자뷰 현상을 겪었어 성종적, 윤비의 환생인듯 했지.)
엄서방 씨근벌떡 일어서더니 그 라이터를 집어들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담배를 한개비 뽑아서는 입에 무는 대신
내게 소리쳤어 "꼴보기 싫다 나가"
그래서 나는 얌전하게 방을 나와서 아이들 방에서 잠을 잤지 그러면서 꿈속에서 석고대죄했어.
이 정도로 내가 엄서방한테 열렬하다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좋은 말 해줄게. 불고야 절대 마눌 늑골은 건들지 마라 죽는 수가 있다.
새해 복 많이 받고 날 풀리면 산에서 보자~
명절날 꽃이라면 단연 자매들의 수다 아니겠습니까.
특히 경상도에서는 형제나 동서간에는 술이나 마시고 취해야 화기가 느껴지지 맹숭맹숭한데
무슨 수다가 끝없이 나오는지 징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명절날 분위기를 돋구는 꽃입니다.
세상이 자꾸 핵가족화되면서 자매들의 수다도 멀지 않아 골동품이 될 것 같아
그대 다시는 (자매들의 수다가 없는)고향에 가지 못하리
향수의 실향민이 될 것 같습니다.
아직도 건재한 수 많은 자매들과 함께 모일 수 있는 고향집이 멀지 않아
삶이 그대를 때로는 속일지라도 <유키>님은 아주 행복합니다.
징하고 귀가 따갑고 정신사납기도 하지만 수다의 긍정적 힘을 인정하시군요
꼭대님이 인정하셨으니
저는 쭈욱 꽃이 되겠습니다. ㅎㅎㅎ
어느 날 카르멘이 제게 들려준 이야기 한토막이 생각납니다.
A가 동네 마트엘 갔더랍니다.
그런데 뒤이어 그 동네에서 수다왕으로 소문난 Z가 마트로 들어서더랍니다.
A는 수다왕 Z를 대면하기가 힘겹고 두려워 (워낙 수다왕이었으므로) 진열대 뒤로 몸을 감추려고 했는데
그 곳엔 이미 B가 몸을 숨기고 있더랍니다.
B가 Z에게 들킬까봐 A에게 조용히 하라는 시늉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갖다대면서 말입니다.
이다지도 무서운게 수다랍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서 A와 B의 속내를 모르는 수다왕 Z가 인식하지 못하는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제게 끼쳐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집은 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작 명절 날은 썰렁해 집니다.
전날부터 지지고 뽁고 날리치던 행사가 아침 제사 지내고 세배하고 아침 먹고 10시도 안돼 용인으로 성묘갑니다.
그리고 나면 엄마와 저희 식구만 남습니다.
아내는 친정가고 싶어 눈치만 보고.
설거지 끝내고 저희도 나오면 큰집은 부모님만 남습니다.
이래서 아들말고 딸이 있어야 명절저녁까지 분위기가 이어지는것 같습니다.
장가 가기전에는 엄마와 둘이 남아 그 많은 설거지 헤치워야 했고...
그래서 아버지가 장남이란 것이 싫을 때도 있었습니다.
아버지 형제 5분x2. 딸린 자식x2. 딸린자식의 자식......역 피라밋 구조의 인원으로 현관 밖까지 신발이
늘어섭니다.
이런 가족 뭉침이 좋아 대장노릇하시는 엄마는 허리를 두두리면서도 사는 맛을 즐기싶니다.
양가의 부모님이 모두 건강하셔서 당연시 되는 가족문화가 이 양반들 돌아가셔도 유지가 될까 의문도 해봅니다.
형제가 많은 것은 축복이란 생각을 나이들며 진하게 합니다.
가난한 주머니지만 비상금 털어 봉투에 담아 부모님과 아이들 건내 주는 것도 행복이고.
머리에 기름냄새 풍기며 허리 주무르라는 아내의 앙탈도 정스럽습니다.
엄천골의 추억도 좋지만 유키님의 현재가 담긴 엄천골 또한 읽는 맛이 참 따뜻합니다.
근데 5월 잔치 벌써 현수막 달아 놓으면 이른것 아냐?
엄천골행사는 박씨집안 모두가 간부인가 봅니다.
저번 아버지 행사 때도 그렇고,
자식 행사도 이러하니....잘되는 집안은 대를 이어 빛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