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엄천골 일기 - 동네 한 바퀴
2020년3월27일. 금. 날씨 : 봄비 뚝, 구름 갬
곱게 다듬은 장항 도라지를 챙겨들고
동강으로 출근합니다
동강에 도착하니 날이 갭니다.
지방도60에서 동강을 봅니다
때는 바야흐로 무릉도원의 계절입니다
집에 도착하니 감있는 여자가 외출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읍내에 볼일이 있다고 하는데 글쎄요
읍내로 가다가도 도중에 일정이 바뀌지 싶어요.
차를 달리다가도 탐스런 나물이 보이면
그리로 돌격하는 스탈이라...
엄마는 뒷곁에다가 호박씨를 심고 계시네요.
하이~ 좋은 아침이야 호박씨
머위와 달래가 보습제를 듬뿍 뒤집어 쓴 채
촉촉 빛나고 있네요.
머위가 봄비 먹고 성큼 자랐어요.
진줏것들도 아침을 먹어요
반찬은 봄동김치 딱 하나.
이맘때 제가 제일 좋아하는 김치인데
이것만 있으면 밥 두 공기를 비웁니다.
동강의 달콤한 산소와 싱그런 물맛이 깊게 밴 김치가 너무나 시원해요.
시금치도 봄비를 과식했나 봅니다
오드리햅번이 소피아로렌 되었어요
장갑을 끼고 달래랑 돌나물 캐러갑니다.
봄비에 꽃봉오리가 빵 터졌어요.
동네뒷산 허리춤에 걸렸던 구름이 승천을 하고
옥순은 달래뿌리를 뒤지기 위해 두더지 코스프레 합니다.
'달래 캐기 쉬운데 있는가 찾아보고 오께'
저는 밭을 건너 동네 탐색을 나섭니다.
이것은 절대로 봄꽃에 미쳐 구경 나서는 거 아니예요.
벌써 금낭화가 피었네요.
감있는여자가 이걸 본다면 또 뭔 나물을 만들려고 할지 모르니 금낭화 소식은 비밀로 할게요.
붉은지붕이 있는 붉은 밭을 지나
집으로 돌아옵니다.
역시 봄구경은 동네 한바퀴!
옥순이가 한눈 팔지않고
열심히 땅을 파고 있네요.
땅 파기 참 좋은 아니, 두더지 게임 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집 나갔던 작은언니가 돌아오고
다같이 둘러앉아 나물을 손질합니다.
작은언니가 어디서 발견했는지 돌미나리를 채취했어요.
역시나 읍내엔 가지 않고 돌미나뤼를 떠억!
엄마는, 어릴적 작은언니를 메구라고 자주 부르곤 하셨는데 작은언니의 메구 기질은 여전히 싸롸있네요.
오붓하고 평화롭게 나물다듬기를 하는데,
뒷산 옆산 떠났던 큰언니가 돌아왔습니다.
머위를 한아름 안아들고요.
큰언니가 머위를 펼쳐놓으면서
기뚫리는 소식을 들려줍니다.
드디어 두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고요.
큰언니는 금광을 발견한 광부처럼 들떠있어요.
엄마는 이 좋은 머위를 어디서 캤느냐시며 궁금해 하십니다.
큰언니는 두릅 소식을 전하느라 엄마 말이 안 들립니다.
엄마는 머위의 자생지가 계속 궁금합니다.
서너 번 물은 끝에 큰언니가 대답합니다.
'뒷골!'
뒷골이 어디더라...
난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은 동강 뒤쪽이면 다 지리산이라는 사실이지요.
손질을 끝낸 머위가 이쁘지요.
택배시간에 맞추느라 끼니를 놓치고...
고객님께서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보내주신
빵을 먹으며 작업을 계속합니다.
오늘은 봄비때문에 나물에 흙이 들러붙어 손이 한 번 더 갑니다.
포장을 하려고 보니 곰보배추가 모자랍니다
서둘러 캐러 나섭니다.
봄 풍경이 꿈결처럼 감미로워 황홀하네요.
정말이지 나물캐기 좋은 날이어요.
캐 온 곰배를 다듬고 본격적으로 포장을 시작합니다.
포장 상자들을 들고 동네앞 다릿걸 택배소에 가니 택배차가 벌써 떠났어요.
전화를 하니 유림까지나 가버렸네요.
기다려주십사 부탁드리고 부랴부랴 달려갑니다.
'국수 삶아 놔'
작업이 끝나고 난장판이 된 집안을 걸레로 훔치고 있는데
유림 간 옥순이가 국수 겉은 소리하고 있네요.
'청소하니라 바빠!'
'그럼 불에 물 올려놔 우리가 가서 끓일게'
이 말은 헛말입니다.
나는 불에 물을 올릴 것이고
물이 끓으면 면을 넣을 것이고
면을 넣은 김에 저을 것이고
끓여넘칠까봐 지켜볼 것이고
그러다보면 결국 국수를 끓이는 사람은 '나'가 될 것이 뻔하지요.
급박한 하루 일정이 무사히 끝나고
모두 부엌으로 집결합니다.
불꽃이 육수를 끓이고 제가 국수를 넣어요
큰언니가 묵은김치를 송송 썰고
달래장도 뚝딱 만들어요.
허둥지둥 삶아서 허겁지겁 먹기 시작합니다.
어머머 둘이 먹다 옥순이가 나를 버리고 지 혼자 진주로 가버려도 모를 맛입니다.
옥순이가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심장발작이 온다카네요.
알싸한 바람이 들락거리는 쪽파 밭에
석양이 들이칩니다.
쪽파에서 통통 소리가 나네요.
바로 살찌는 소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