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일제시대, 난리도 아니었던 지리산 화엄사 봄맞이 풍경입니다.

등산박물관 | 787


지금은 구례 봄맞이하면 노란 산수유 말고 다른 게 연상되기 쉽지 않은데. 이것도 시절인연입니다.

6,70년대까지만 해도 이른 봄 구례하면 거자수가 앞섰고, 산수유는 늦가을 약재채취때나 언급되는 게 보통이었죠.


8,90년대에만 해도 봄이 오면 외지인들이 말린 오징어 한축 들고 구례의 농가 온돌방에서 밤새도록 고로쇠물을 마시는 문화가 있었다 합니다. 

물마시면 싱거우니까 오징어 씹고, 오징어가 짜니까 다시 고로쇠 물마시고...


이거 재미로 하면 재미있는 이야기인데요.

한때 인기높았던 소설 "야인"이던가에서는 고문 중의 고문이 대충 이런게 기억이 납니다.

창문이 없는 골방에 위스키나 소주하고 오징어 말린 거를 던져놓는다. 

그러면 배고프면 오징어 먹고, 짜니까 소주마시고, 소주마시니 안주로 오징어 먹고, 배고파서 오징어 먹고 목말라 소주먹고... 

사흘쯤 지나면 완전히 폐인되어 술술 비밀을 불게 되어 있다네요.


 


각설하고 다시 돌아가 고로쇠라는 것 이전에는 물론 거자수 축제가 있었는데, 이게 일제때로 올라가면 1.4후퇴는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래 육당 최남선 선생의 1925년 "심춘순례" 맨 마지막장 장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탄식이 사실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그당시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 양반네들이 아닌- 어떻게 봄을 즐기고 싶어했는지를 볼 수 있으니 말이죠.


 


심춘순례 마지막은 순천에서 구례로 들어와 화엄사 동구에서 끝맺습니다.

무엇이 그리 급했을까요.

 만약에 시간이 쫓기지 않았다면 분명히 노고단에 올랐을 거라는 건 그의 그 이전 여정을 보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어 하동 쌍계사 등에 관한 글도 남겼을 텐데 애석한지고.


글의 말미는 사성암에서 내려와 나룻배를 이용해서 섬진강을 건너 구례읍내로 들어오는 부분부터입니다.

이 글 이전에는 지리산 쪽의 봄맞이로 거자수문화를 언급하는 구절이 있고요.


찬찬히 읽으시면 재미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 심춘순례"는 아쉽게도 끝을 맺습니다.

그는 분명히 노고단에 올라 만장의 소회를 풀어냈을텐데 아쉽습니다.



아무튼 일주문 안에까지 갈비를 내다 걸고 파는 화엄사 봄맞이 풍경.

분위기 지금으로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습니다.~


 

6 Comments
꼭대 2021.08.20 10:06  
1925년도 화엄사 사하촌 모습이라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지난번에 올려주신 항공사진에서 지금은 깨끗하게 정비가 된 화엄사 입구 하천변의 당시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흥청거리기가 지금의 남대문시장 못지 않네요.

아마도 별 재밋거리가 없던 시대에 거자수축제가 전남 동부지역에서는 놓칠 수 없는 큰 축제였던 것 같습니다.
흥미 있는 추억의 지리산 장면입니다.

<박물관>님 아쉬움 대로, 이어진 소회 풀이가 있었을 것인데,
속절없이 끊어진 문장에서 현대 못지않은 최남선의 필력을 느낍니다.
등산박물관 2021.08.20 21:24  
꼭대님, 저도 일제시대 화엄사가 이럴 줄 몰랐습니다.

성철스님이 3000배 해야 만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스님들의 위상을 높였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글을 보니 이해됩니다.

사실 조선시대때 스님들은 천민계급이었으니 말이죠....
해영 2021.08.21 21:03  
깔아시캬~~ 그때나 지금이나.............
그래도 그때는 밥장사 고기장사 방장사로 던을 벌었으니 지금보다 인간적이고 생산적입니다.
종교가 배부르면 보기 안좋습니다.

언제 부턴가 개신교 목사들이 로만칼라~그것도 보라색 양복입고 입고 설치는 것하고
중이 자기 스스로 스님이라 존칭을 해 되는것 보면
싫더라구요.
등산박물관 2021.08.26 17:18  
그러고보니 더 인간적^^이고 생산적이네요~
스님들이 '일'을 했네요, 그시절엔
산유화 2021.08.27 03:05  
요즘 상식으로는 상상이 안 되는 풍경이지만 어찌보면 이해가 될 것도 같습니다.
그 어려운 시절에 꽃놀이 가는 여유가 대단했다는 사실이 나름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좋은 자료 올려주어 고맙습니다.
등산박물관 2021.09.01 16:17  
네 저는 암담했던 그 시절 사람들이 이렇게라도 즐거움을 누렸다는 것에
기분이 좋더라고요.

승려가 천민이던 조선시대를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사찰이 저렇게 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고요.

산유화님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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