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Coffee - 2

애기나리 | 460

커피이야기 2


새로 직장을 잡아 출근한지 8개월이 지났습니다.

커피이야기 1편을 쓴지 그만큼 시간이 지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매일 동네뒷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던 시절이 끝나고 어느새 일에 빠져 토요일에도 쉬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집에서 놀 때는 커피를 마실 일이 전혀 없어서 그랬는지 약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새로 출근한 직장에 예전부터 알던 분들이 많아서 마음이 편했고 그 중에 예전에 나와 함께 지리산을 누비던 분도 책상을 마주보며 근무하고 있어 아침에 출근하면 늘 커피 한잔을 타서 사무실 옥상에 올라가 돼지 키우는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그는 창원에서의 생활을 관두고 산청으로 이사해서 거기서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운전해서 매일 출퇴근하고 있습니다.

400평정도 되는 텃밭에 처음으로 농사를 짓는데 궁금한 걸 내게 묻곤 했는데 내가 촌놈 출신이라 군대 가기 전까지 농사를 지었던 경험이 필요했던 모양이지만 그건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고, 요즘은 농사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았지만 아는 대로 이야기 해 주기도 하고 오늘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의논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병원에 가니 단백뇨가 갑자기 늘었다며 약이 두 배로 늘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대책이 있을 리도 만무해서 속으로 끙끙거리고 있다가 한 달 후 다시 병원에 갔더니 단백뇨가 또 늘었다며 먹던 약이 또 두 배로 늘었습니다.

갑자기 변화가 극심하게 나타나니 혼란이 와서 퇴근하고 방구석에 조용하게 틀어박혀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리고는 지난 일들을 하나씩 복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어릴 때 형이 바둑 두는 걸 즐겨 보곤 했는데 바둑돌을 놓을 때마다 왜 저 자리에 놓을까 하고 가만가만 생각해 본적이 있었는데 형들의 정신연령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미처 깨닫지는 못했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게 좋아서 그 뒤로 신문을 보게 되면 바둑란을 찾아보곤 했는데 한 가지 연재가 끝나면 바둑 총보가 한 번씩 실리곤 했습니다.

그걸 오려두었다가 노는 날 심심 할 때 혼자 앉아서 그걸 번호순으로 놓아보곤 했습니다.

물론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호통을 치시는 바람에 바둑과 멀어지게 되었지만 그 기억은 아직도 내게 남아있었던 모양입니다.

근래 들어서 내 입으로 들어간 많은 음식들 중에 많이 변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보니 갑자기 아침마다 봉지커피를 타서 마시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조절한답시고 절반만 타서 연하게 마신다고 했지만 그래도 커피를 마신 것은 사실이었으니 그게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내 몸이 나빠진 원인을 찾으려고 수없이 노력해 보고 혹시나 몸이 좋아질까 해서 여러 가지로 실험을 많이 했습니다.

한번뿐인 내 삶이 더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 많은 것을 가리지 않고 해 보았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오래전에 내가 직접 채취한 상황버섯을 연하게 우려서 마셔보기도 했고 그 시점에 직장 동료가 나를 생각해서 내가 구해준 겨우살이를 이용해서 흑초라는 것을 만들어 내게 주며 복용하라고 했었습니다.

식초의 일종인데 산도가 높아서 커다란 머그컵에 티스푼으로 한 스푼 정도 타서 마시되 하루에 한잔만 하라고 했습니다.

상황버섯은 퇴근하기 전에 텀블러에 온수를 받아 거기에 조그만 조각을 하나 넣어 밤새 우렸다가 아침에 출근하면 주변에 동료들과 나누어 마시곤 했습니다.

그렇게 두주간이 지나자 내 몸에 변화가 시작되었는데 아침에 머리를 감는데 세면대에 새까맣게 머리카락이 내려앉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대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갑자기 겁이 나서 그날부로 흑초는 그분에게 반납하고 상황버섯은 주변에 암으로 투병중인 사람들께 모두 나누어 드렸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다시 머리카락이 돋아나기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가 옛날보다 숱이 더 많아졌다고 해서 나는 아닐 거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자꾸 강조 하길래 그럼 한 번 더 해볼까 하니 그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는 사람이 직접 칠보미염단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해서 거금 십오 만원을 투자해서 몇 백개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한두 알씩 먹어보았습니다.

그게 콩팥에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일주일이 지나니 부작용이 나타나서 이것도 아니네 하며 그냥 내버렸습니다.

어쨌든 한 번 더 실험해 볼 생각으로 그날부터 커피를 끊었습니다.

당장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해서 고민하다가 녹차는 카페인이 많으니 옥수수차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옥수수차도 조그만 거 말고 큰 주전자에 넣어서 끓이는 걸 선택해서 텀블러에 넣고 종일 우려 마시면서 커피를 대신했고 고객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그냥 조금 마시는 시늉만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늘어나던 단백뇨가 멈추었습니다.

또 한 달이 지나니 조금 줄었다고 했습니다.

그제야 확신을 가지고 내 주변에 널리 알렸습니다.

내가 커피를 끊어야 하는 당위성을 이야기 하고 협조를 부탁했고 다들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우리 사무실에는 커피 말고는 마실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매일 아침이면 내 옆에 앉아있는 분이 커피머신을 세척해서 작동시키는데 그 향이 온 사무실을 가득 채웁니다.

커피를 끊은 지 삼 개월이 넘어가니 아침마다 풍기는 커피향이 나로 하여금 견디기 힘들게 만듭니다.

담배를 제대로 피워 본적은 없지만 독하게 금연하는 사람들의 애타는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았더니 단백뇨 수치가 일반인 수치로 돌아왔다고 하면서 오랜만에 두 달치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지난달에 내가 담당의사에게 커피 이야기를 했더니 공부를 조금 하신 모양입니다.

요즘 커피를 참기 너무 힘들다고 엄살을 피웠더니 프림이 들지 않은 커피를 하루 한잔정도는 괜찮다고 하신다.

그러니 아침마다 향을 맡는 정도로는 괜찮다는 뜻입니다.

오래전에 술을 끊으려고 시작한 커피와 이제는 작별할 때가 되었습니다.

요즘 2030세대가 자조적으로 내뱉는 말이 이러다가 백 살까지 살면 우짜지?

이런 말을 달고 산다고 했습니다.

나도 이제 이런 말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겨울이 다가오는데 올해는 산행을 거의 하지 않아서 야생화 연말정산을 할 형편이 안 되니 어쩔까 하다가 고민 끝에 와운골에 얽힌 이야기를 한번 해보면 좋겠다 싶어 자료를 준비중입니다.

다들 산행기에 적었던 내용인데 산행기에는 사진이 일부만 들어가지만 여기에 연재할 때는 더 많은 사진을 첨부할 수 있으니 볼게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물론 산행기를 못보신 분들이 더 많으니 ~~~

오래전에 실비단이끼폭포를 보고 돌아 나와 천년송을 보러 가는 길에 내가 알지 못하던 골짜기를 보고 흑심을 품고 있다가 그곳을 다니게 된 일부터 시작해서 지난 겨울에 언밥을 먹던 이야기까지 이어보겠습니다.


3 Comments
황하주 2021.11.24 14:26  
새로운 곳에 적응 하셔서 무탈하게 지내시고,단백뇨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 왔다니 다행이네요 ~
저도 커피를 좋아하는터라 나중에 건강에 이상이 있을까 심히 걱정이 되는터라 요즘은 조금 줄여서 마시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지리산 다니실수 있길 바라며 와운골 이야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강호원 2021.11.24 17:43  
그동안 재취업하여 직장생활  하면서 마신 커피가 그런 부작용이 있었네요.
커피에 과민한 체질인 것 같습니다.

저도 하루에 아침  묵고 한 잔, 점슴 묵고 한 잔.
봉다리 커피믹스를 마시는데 그런 증상은 없었습니다.

와운골에 얽힌 사연!
기대하겠습니다.

잘 봤습니다.
꼭대 2021.11.27 16:00  
커피 자체 보다는 봉지커피의 프림이 원인일 수 있겠습니다.
<애기나리>님이 온 몸을 던져 체험한 결과이므로 참고해서 봉지커피는 끊어야겠습니다.

대머리든 아니든 나이가 들어가면서 머리가 빠지는 현상은 남녀불문 모든 중년의 고민인데요,
글을 읽어가다가 다시 머리카락이 돋아난다해서 눈이 번뜩했는데, 쉽게 테스트 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잔잔하게 전해주시는 일상에 공감이 느껴져 훈훈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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