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첫눈 오면 거기서 만나라고 약속한 적 없지만

유키 | 476


주말에 눈이 오면 가야하는 곳


바래봉에 갑니다



운지사 지나자마자 

황하주님과 웅이님 일행을 만납니다.

'첫눈이 오면 거기서 만나'

라고 약속한 적이 없어도

눈이 오니까 이렇게 만납니다

하주님과 웅이님도 눈이 오면 바래봉에 와야하는 사람이었던게지요




하주님으로 부터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답지님이 가던 길을 멈추고 

저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답지님도 눈이 오면 바래봉에 와야만 하는 사람이었던 게지요.

어찌나 활기차고 반갑게 맞아주시는지 

앞으로 석달 열흘은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체구는 아담하시지만 목소리는 우렁우렁 킹콩 같으시고

지리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폐인 그 잡채십니다.



오솔길을 빠져나와 드넓은 인도에 올라서니

창공이 찬란하고 백설에 반사된 햇살이 눈을 찌릅니다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덕두봉은 

아주 제대로 눈난리가 났어요



푹신한 눈을 한 땀 한 땀 눌러 밟습니다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눈꽃을 보시려면 좌측으로 가시고요

봄꽃을 보시려면 우측으로 가시고요




겨울왕국의 정점을 향해 걸어갑니다.



개도 눈 보러왔네



푸들입니다.




옷도 잘 챙겨입었고 신발도 깔마춤으로 신었어요

설국이 경험이 처음인지 어리둥절 아니 푸들둥절합니다.




산객들의 오찬장, 샘터에 다와갑니다.



바래봉 샘물이 먹기에 부적합하대요

그래선지 예전에 비하면 점심 먹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어요

산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샘터인데 아쉽네요




키서방이 바래봉 정상을 오를까말까 멈춰섭니다.

진짜배기 눈꽃은 이제부터닷!




키서방을 몰고 갑니다.

푸들도 잘 걸어갑니다.



걷던 길을 뒤돌아보면 또다른 세상이 훅 들어옵니다




눈이 한송이씩 날아오릅니다



답지님이 정상 찍고 급히 달려 내려오십니다.

거북이 봐야디야.

답지님 말씀에 키서방이 당장 폰을 꺼내 산거북이님을 찾습니다



답지님은 행여 산거북이님을 놓칠새라 맘이 급합니다

산거북이님은 바다거북이보다 많이 빠르니까 서두르는게 맞습니다




현재 산거북이님이 봄꽃군락지에서 점심을 드시고 있다합니다.



 

한창 통화 중에 하주님 일행이 정상을 찍고 내려옵니다



아름다운 설국 풍경에 자꾸만 붙들려서는 

휘이휘이 둘러봅니다




왔던 길도 돌아보고요



사실 샘터 근방은 은근히 칼바람이 양 뺨을 저며대는 곳입니다.

그래서 바래봉에 올 때는 행동식만 가져옵니다



샘터를 지나




눈꽃터널을 빠져나갑니다


 

봄꽃군락지에 접어드니 

목화송이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가시덤불을 헤지고 확자한 소리가 들리는 데로 가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습니다

'눈이 오면 바래봉 철쭉 군락지에서 만나' 하고 약속한 적 없습니다

적석님이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산거북이님도 뵙고요



소나타언니랑 기동님을 뵙니다



하주님 일행도 커피를 마시고 계시고요



답지님은 주섬주섬 배낭을 돌봅니다.



냉기는 온데간데없고 

따스한 햇살만이 충만합니다

순수한 설국 속에서 반가운 분들을 만나

함께 마시는 따뜻한 밀크커피 한 잔

 

모두 만면에 미소가 떠나질 않습니다



소나타언니 

천화대 암벽등반을 하셨다니

우러러봅니다



지리산에서 봬면 늘 웃고 계시는 적석님

늘 웃고 계시는 것인지

웃을 때만 뵙게 되는 것인지

알쏭달쏭합니다.



시방 지금 현재가 최곱니다



산거북이님이 적석님을 애인처럼 돌봐줍니다

 

나는 찍지마 

영혼 뺏긴다

죄송합니다 ㅋ ㅋ ㅋ



커피 첫 모금 마시고 천왕봉에 눈길 한 번 

커피 두 모금 째 마시고 서북능선에 눈길 한 번

커피 세 모금 째 마시고 반야봉에 눈길 한 번



오지게 좋은 산상 카페입니다




바래봉에 작별인사하고

하산합니다



나란히 

서로서로 껌딱지처럼 붙어서 

산길을 내려갑니다.




이 순간을 오래오래




 



함께 자주 지리산에서 눈을 맞춰보아요



광주는 바래봉이랑 가깝다

진주는 1시간 10분빼이 안 걸린다 

남원은 30분인데에

서로 자기 동네랑 바래봉이 가깝다고 자랑을 합니다



오솔길을 지나 운지사에 도착합니다.



바래봉에 왔으면 인월장터에 들렀다가야지요



꽁당보리밥을 6천원에 먹습니다.

사장님이 숭늉도 떠 주십니다



우리동네 도착해서 키서방이 세차합니다

제설작업에 쓰인 염화칼슘이 자동차에 해롭다고요

세차장엔 영하의 날씨인데도 손님들이 많습니다

'이젠 눈 구경 못 가겠다'

옆에 세차 손님이 푸념을 합니다

혹시 저 손님도 바래봉에 다녀온 걸까요.
저녁엔 인월 장터에서 사 온 생태를 무 삐져넣고 끓였더니 시원합니다.


 

6 Comments
레테 2022.12.20 15:36  
그러게요.
따로 약속한것도 아닌데 여러팀을 만나셨네요.
서로가 서로를 아는분들끼리 뭉쳐져
하얀 눈세상에서 꽤나 즐거운 시간 보내셨군요.
부럽습니다.ㅎㅎ

파카까지 갖춰입은 강아지 귀엽습니다.ㅎ
Zza웅이azZ 2022.12.20 17:21  
글이 재밌습니다.
"석달 열흘"  " 산거북이 바다거북이" ㅎ
제대로 인사도 못했네요.
지난 장터목 모임때 뵌거 같았는데요

강쥐는 국립공원 출입불가인데 주인이
몰랐나 봅니다. 

유키님 말씀대로 설산은 바래봉이네요.
약속하지 않았어도~~
진주에서는 남원 바래봉에 이렇게 눈이
많이 왔을거라곤 예측을 못해서 그냥 나무에
눈 좀 쌓였겠거니 하고왔는데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멋진 사진들 감사합니다. 셔터를 연신 누르더니
한두명이 아니라
모두 잘나온사진들이네요

감사합니다
답지 2022.12.20 17:45  
1953년 뉴욕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학사, 스코틀랜드에서 석사, 호주에서 박사 학위를 얻은 “숲우듬지” 전문가, 여성과학자. Margaret D. Lowman

  유키님은 바래봉 눈산행으로 세상을 다 얻은 듯이 허공을 날아가는 새처럼 족적도 남기지 않은 줄만 알았는데, 눈발 대신에 글.발.을 맛깔스럽게 날리시니 이 글을 읽고 댓글을 남기지 않은 분들은 도대체 어떤 강심장을 갖고 있을까?

  白雪은 산꾼을 한 덩어리로 엮었다. “자연은 하나의 언어이며, 우리가 새롭게 배우는 사실은 모두 하나의 새로운 말이다”(랠프 월도 에머슨, 『초기 강연들』에서)
  앞에서 인도하는 전문 산꾼과 뒤에서 감싸고 도는 몰이 산꾼들 덕분에 운지사 입구까지 무사히 내려왔다.
 
        그날 만났던 10명의 산꾼들이 남긴
        ‘그림자’를 가지러 가야 하리라
황하주 2022.12.20 18:09  
지리산에서 우연한 만남은
언제나 반갑고, 행복한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우연히 뵐수있길 바라겠습니다 ^^
키서방님 풍체가 좋아지셨습니다 ㅎㅎ
소나타 2022.12.20 18:20  
유키님 혼자  웃으면서 산행기 봅니다.
참 재미있고 유머스럽게 표현해서요.
바래봉에서 유키님 내외분을 만난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우리동네 눈 내렸으니까  우리동네로
다모인거죠.
억스로 반가웠습니다.
옥국장 2022.12.21 10:41  
너무 흐뭇하고 정겨운 바래봉 눈산행 즐감합니다.
나도 저기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하면서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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