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1938년 사진속 지리산, 과연 어느 봉우리일까요?
지리99 선배 회원님들, 지리산에 눈꽃피고, 봄꽃피고 여름 구름 가을 단풍 때마다 지리산과 함께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저도 회의 일원으로 함께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펴낸 "조선의 풍경 1938"과 대법관 "손지열" 구술서에서 지리산 사진을 각각 한장씩 발견했습니다.
지리산 어디일지 궁금합니다.
1938년 조선총독부가 기세등등하던 시절, 철도국에서 펴낸 "조선의 풍경 1938"입니다.
일본인의 시선, 그러니까 부산항에 도착하여 북상하면서 명승지와 조선의 발전상을 담으려는 의도의 책인데,
그들이 '남선의 알프스'라고 했던 지리산 사진 한장이 있습니다.
바로 이 사진입니다. 등산객이 등을 보이고 저멀리 구름이 산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유장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찍는 게 당시 유행했기에 우리는 지리산 산세를 볼 수 있게 되었는데요.
저도 언제 저곳에서 사진 찍고 싶은 마음이 사무칩니다.
과연 이곳은 어디일까요? 지리산에 눈밝은 분들의 말씀을 기다리겠습니다.
두번째 사진.
법원 도서관에서 펴낸 '법관의 길" 구술총서 중 손지열 대법관을 주인공으로 한 책입니다.
손지열은 대구출신으로 서울대보다 더 어렵다는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를 졸업한 다음 1965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입학했습니다.
부친도 대법관으로 최초의 부자대법관의 기록을 갖고 있는데,
그는 서울대 법대 산악반이 입회하여 1년정도 활동하고 2학년부터는 사시공부에 전념합니다.
그전인 1966년 1월 전후 그는 산을 찾고 사진 한장을 이 책에 담습니다.
*원 설명 - 대학산악반에서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와 함께 한 산행, 왼쪽 끝
대학산악반답게 키슬링 배낭도 있고 입음새도 근사합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건 저 멀리 검게 칠해진 물체입니다.
사진이 긁혀서일 수도 있겠는데요. 뭔가 흥미롭습니다.
약간 포토샵(?)를 했더니... 제법 큰 건물로 보여집니다.
좌측에도 한 개. 가운데와 오른쪽에도 잔해 또는 산장이 눈에 덮힌 듯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시절 우리네 산에 저렇게 보란듯한 산장이 있을리는 없고요....
지리99님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좌측과 우측으로 나누어 조금 더 확대해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왼쪽의 검은 점들은 잘 다듬어진 산길로 보여지고,
건물은 지붕은 날아갔지만, 분명히 제법 큰 공회당같이 보이는군요.
슬슬 우리는 이곳이 어디일지 짐작이 가기 시작합니다.
혹시 이곳이 아닐까요? ^^
지금 이 사진은 노고단에 있던 외국인 선교사 타운의 잔해입니다. 전쟁 때 파괴되고 남은 모습입니다.
두어군데 검은 선이 가로로 놓여져 있는게 보입니다. 이게 통나무일리는 없고요.
그렇습니다. 한때 영화로웠던 노고단 선교사 별장촌입니다.
교회와 강당은 물론이고 수영장도 있고 9홀 규모의 골프장도 있고 병원과 호텔(3층 17실) 등등 50동 이상의 건물이 있던 시절의 모습이고요.
물론 이 호텔은 사적 공간이니만큼 조선인과 일본인은 입장 불허였습니다.
산아래 마을의 조선인들은 여름이면 물자수송과 고객운송으로 두둑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 휴양촌은 지리산 노고단 뿐만 아니라 원산에도 있었고, 평양근처 등등에도 있었습니다.
지리산 휴양촌을 찾은 선교사들은 주로 전라도권역 교회에서 활동한, 미국의 ㅁㅁ파(잊어버렸슴)입니다.
그들은 해마다 여름이면 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찾아 휴가를 즐겼고, 따라서 그들이 찍은 사진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선교역사 관련 책에서 이 사진들을 발굴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한국의 관련 교파 교회에서 언제 미국을 찾아 당시 선교사 후예들을 수소문해서 이 사진들을 우리에게 선물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아니면 국립공원 공단은 관심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출장을 떠나볼만한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어찌된 영문인지, 전쟁 후 파괴된 선교사 휴양촌 사진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이곳을 지나치면서 낯선 풍경을 카메라로 남겼을텐데 말이죠.
그만큼 1966년 1월 전후,이들이 찍은 사진은 하필이면 노고단 저멀리 그곳이 담겨 있어, 귀한 '자료'로 남게 되었습니다.
감사를~~~
ㅡㅡㅡㅡㅡㅡ
덧붙여) 관련 사진의 설명은 각각 이렇습니다.
1938년 사진)
선의 절경 지리산
지리산은 예로부터 조선의 삼신산(三神山) 18의 하나로 꼽히는 영산(靈山)이다.
온대, 아한대의 원시림이 우거져 있고 고산성 초목이 많다. 최고봉인 천왕봉(天王)은 매우 웅대한 조망을 자랑한다.
산속에 화엄사(華嚴寺), 대원사(大源寺), 쌍계사(雙磎寺) 등의 큰 절이 산재해 있고 그 경내(境內)가 모두 경승지이다.
그러므로 여행하기 아주 좋은 곳일 뿐만 아니라 봉우리중 하나인 노고단(老姑壇)은 외국인의 피서지로서도 알려져 있어 여름에는 많은 내외국이 찾아온다.
전라선(全羅線)의 남원, 구례구(求禮口), 경전선(慶全線)20의 진주 방면에도 등산로가 있다.
1966년 사진)
-제가 1학년 때 산악반을 들어갔고 주말이면 선배들 따라서 등산을 다녔는데, 산악반이 그렇게 재미있었어요.
그때 등산이 그냥 이렇게 산을 올라가는 게 아니고 자일(seil) 가지고 클라이밍 (rock-climbing) 하는 그런 걸 했거든요.
법대 산악반이라는 게 아주 오랫동안 지속돼 왔는데 근자에 와서 학생들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산악반 자체가 거의 폐지가 될 정도라고요.
-산악반에는 내가 한번 들고 싶다 이런 생각이 있으셨나요 아니면 어떤 누군가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그때 아마 선배들 권유로 간 거 같은데, 글쎄, 정확한 기억은 없네요.
그냥 산에 가자 그러니까 놀러가듯이 따라간 게 산악반에 들어간 거지요.
-예, 근데 험한 산은 위험하지 않습니까?
-생각보다 안전합니다. 그래도 안전장치는 다 해서 자일이니, 또 그게 뭐라 그러죠?
올라가면서 등반하려면 이렇게, 그 이름이 뭐 있는데, 고리같이 생긴 거.(카라비너 -인용자 주)그때 그런 장비는 다 갖추고 올라갔습니다.
무모하게 다니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도 이렇게 산행을 하고 내려오면 왜, 막걸리 같은 것도 한잔하고 그런 시간이 있었나요?
-아이고, 그때 많이 했지요.
덧붙여) 전쟁후 대학산악부가 만개를 합니다.
명칭을 산악부라고 하고, 여기서처럼 산악'반'이라고도 했습니다.
산악'부'의 '부'는 클럽Club의 번역어이고, 산악'반'의 '반'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때 총력전을 펼치면서
대학의 클럽 '부'를 준전시 조직의 일환으로 재조직하며 '반'으로 부른 시절의 흔적입니다.
이 호칭은 유신 정권때에 다시 부활하여 1970년대 후반 대학산악부는 '산악반'으로 강제 개명당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