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우연 : 털 개 회 나 무
나는 내 ‘수첩’ 속에 우연을 위한 빈자리를 남겨 둔다. 예기치 않은 것을 위해 숨 쉴 자리를. 내가 눈을 떴을 때 나를 도울 줄 아는 삶의 무한한 다양성에 나 자신을 내맡기고 싶다.
3년 동안 개인적으로 배낭(20kg)을 메고, 한뎃잠을 즐기면서 바닷가 여행 중에 처음에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고 실행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만, 텐트 속에서 세웠던 계획이 아침에 약간씩 바뀌고, 심지어는 현장에서 또다시 내 마음 끌리는 대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과정에서 우연찮게 놀라운 소득을 얻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였다.
평소에는 집에서부터 오로지 걸어서(!) 무등산으로 접근하고, 귀가할 때도 여전히 걸어서 집까지 와야만 '나'다움이라 여기면서 기본적으로 30km 정도를 걸으려고 산행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평소와는 달리 가볍게 무등산 산행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 주말에 아내와 함께 모처럼 1박 2일 출타를 해야 할 계획이 있기에 몸을 덜 혹사시키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등산의 원효사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산허리길을 어슬렁거리자. 절대로 뛰고 싶어도 뛰지 말고 걷자.
원효사에서 규봉암에 가까워지자 평소와는 달리 목탁 소리가 유별나게 크게 다가온다. '부처님 오신 날'이 임박했음을 직감하고 숲터널을 걷는데 어디선가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가 진하게 풍겨온다. 이것은 언젠가 노고단 정상에서 '비목'으로 향하는 비탐방로 가는 길목에서 만났던 꽃향기!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정말로 코끝을 찐하게 후벼파듯이 냄새가 나를 에워싼다. 나뭇잎 사이에, 햇살이 잘 들지 않는 곳이라 꽃의 정체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일단 냄새에 푸욱 빠져든다. 규봉암에 잠시 들렀다가 나와서 지공너덜 방향으로 걷는데 또다시 꽃향기가 더욱더 진하게 풍긴다.
지공너덜을 막 지나는데 왼쪽 숲속에 꽃향기의 정체가 방실댄다. 털개회나무........저 너머의 백마능선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꽃향기에 매료당한다. 반석 위에 걸터 앉아 꽃향기에 취하면서, 점심상을 펼친다. 점심이라고 해봐야 초라하기 짝이 없다. 쑥가래떡 2개, 사과 1/2, 커피 한 잔으로 점심을 먹는데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무감각해질 정도로 둔하다.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의
눈 감은 매혹에 사로잡힌다
무등산의 지공너덜에 얽힌 이야기...
지공너덜은 무등산 정상아래, 해발고도 약 1,000~1,100m 사이의 남쪽 사면에 위치하며, 폭 150m에 이르고 상부 경계가 아래로 들어간 혀 모양의 형태로 발달되어 있다. 너덜의 평균 경사는 20~35도이며, 너덜을 구성하는 암괴의 크기는 최대 4~5m에 이른다. 지공너덜은 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인도의 승려 지공대사에게 설법을 듣던 라옹 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지공너덜이라고 명명하였고, 지공대사가 여기에 석실을 만들고 좌선수도하면서 그 법력으로 억만 개의 돌을 깔았다는 전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