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지리산을 냅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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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리산 인근 지자체들은 물 만난 고기떼 같다. 너도나도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벽소령도로 개설, 산악열차 시설, 산상호텔 건립, 골프장 건설 등을 추진하느라 아주 신이 났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지자체별 케이블카나 산악열차를 환지리산권으로 묶어 연계하자는 얘기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단군 이래 지금만큼 사방에서 지리산을 거덜내겠다고 달려든 적이 있었던가 싶다. 그들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모양이다. 나는 듣기만 해도 열받는데.
뭐 케이블카 유치위원회 발대식, 주민설명회 개최, 지역민 서명 운동 등 난리다. 며칠 전 마을이장이 서명받으러 왔길래 나는 반대한다고 했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돌아가더라. 집사람이 말했다. 당신 이제부터 찍혔다고, 왕따라고.
잊을 만하면 등장한다. 도대체 뭐 먹을 게 있다고 저렇게 들러붙는지 모르겠다. 선거철마다 들고나오는 공약(公約)이고 또 늘상 공약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깃발 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다. 다른 건 다 공약(空約)이더만 이건 왜 안 잊어먹고 지키겠다는 건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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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론자들이 첫째로 내세우는 논리는 경제성‧수익성이다. 정말일까?
예를 들어 추성~제석봉 구간(7㎞ 이상)에 케이블카를 설치한다고 하자. 사업비는 600~700억 정도가 소요될 것이며, 1년 중 눈‧비‧바람 등의 기상악화로 운행일수는 넉넉잡아도 250일을 넘지는 않을 것이고, 편도 25~30분이 소요될 것이며, 2대의 케이블카를 왕복운행하면 하루 8시간 운행에 20회 왕복이 가능할 것이다. 20인이 정원이라면 하루 400명이고, 1년이면 10만명이다. 혹시 순이익이 난다 치고, 왕복요금 4만원에 순이익을 높게 잡아 20%라 해도 연간 순익은 8억에 불과하다. 투자비 회수에 75년이 걸린다. 경제적인 거 맞나?
아, 물론 직접적인 수익 외에 부수적인 파급효과, 즉 관광객 증가와 탐방객 체류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소득 증대가 엄청나다고 선전한다. 과연 그럴까?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몇 시간이면 지리산 내려다보고 올 수 있는데 뭐 때문에 지리산 밑에서 머물다 가겠는가? 함양 마천에 방문객을 붙잡아둘 수 있는 위락시설이나 관광단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축된 지리산 방문 시간 때문에 사람들은 오히려 휑하니 스쳐 지나갈 뿐일 것이다. 물론 매표소에 딸린 매점의 음료수는 꽤나 팔리겠지. 이건 지역주민의 소득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함양군의 예산(연간 6,700억)으로는 여력이 없을 것이므로 민간업체에 투자를 유치할 가능성이 높으며, 손실이 날 경우 통상 지자체에서 보전해주는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함양군의 재정자립도는 10% 미만이다. 결국 함양군민, 나아가 국민 세금으로 적자를 메꿔야 한다는 말이다. 단지 혜택을 보는 부류라면 업체와 공무원 뿐인 셈이다.
승용차도 지나가기 힘든 동네 골목길과 가뭄이면 상수도 부족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에 대한 대책은 감감무소식이면서 꼭 이런 빛좋은 개살구만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인가? 책임도 못 질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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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논리는 케이블카가 환경보호에 크게 기여하며 국립공원을 보전하는 수단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등산객들 때문에 등산로가 패이고 주변의 훼손된 식생의 복구도 힘든데, 케이블카로 등산객을 흡수하면 자연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지리산 곰도 웃겠다. 설마 웃자고 한 소리는 아니겠지.
걸어서 오르기 힘든 사람도 케이블카 덕분에 산에 온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케이블카 때문에 등산객이 줄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기존 등산객에 케이블카 관광객이 플러스될 뿐일 것이다. 그로 인해 제석봉~천왕봉 구간은 미어터질 것이며, 케이블카 건설 및 운행으로 인한 환경파괴는 계산하지도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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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노약자의 국립공원 방문 권리, 국민의 삶의 질 향상 등을 내세우지만 이때까지 지리산 케이블카가 없어서 우리 국민이 불행한 것 같지도 않으며 그것이 있다고 행복해질 것 같지도 않다.
이제까지 케이블카 얘기만 했지만 산악열차 등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뻔한 얘기다.
처음 심원마을을 철거한다고 했을 때 나라에서는 국립공원 보전을 위하여 성삼재 관통도로를 폐쇄해야 하므로 심원마을도 철거해야 한다고 하였다. 막상 심원마을을 철거할 때나 철거된 지금 지자체나 정부 공단 어디에서도 성삼재 도로 얘기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한번 설치되면 설사 흉물이 되어도 무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국립공원에 뭐든 인공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은 자칫 국민의 재산을, 미래세대의 유산을 훔쳐 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두려워할 일이다. 신중에 또 신중해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