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아쉬움을 안고 돌아온 산행

꼭대 | 1661
역시 지리산 일기예보는 산신령 소관입니다.
우중산행을 기대했으나 혹은 걱정했으나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11월 14일 금요일

서울역 11시 50분 발 남원행 열차를 타러 가니
<칠부>님 산행팀인 <짠>님, <파발마>님, <하늘>님 이외에
전설 같은 입빨 부라더스의 한짝인 <자작나무>님을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다른 한 짝인 <들머리>님은 열애 중이라는 소식을 전하면서.


작년엔 <칠부>님이랑 단둘이서 산행을 많이 하였지요.
그때는 주로 수원역 혹은 최대 평택역을 지나면 잠을 청했는데
이번에 <칠부>님이 젊은이랑 같이 앉아가서 그런지
정차역을 알리는 방송에 잠이 깨어보니 논산역을 지나고 있는데도
재미있게 이야기 하느라 잠잘 생각을 않더군요.
더 오래 잠자지 않고 있었는지는 익산역부터 기억이 없어 알 수 없습니다만.

역시 젊은이는 젊은이랑 있는 것이 편한 모양입니다. ㅠㅠ


11월 15일 토요일


남원역에 내려 백무동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하여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했습니다.
터미널 옆 성원식당 아주머니를 깨워 맛있는 아침 밥을 주문하고
아가씨들인 <칠부>님이랑 <짠>님은 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도록 하였지요.

백무동행 버스를 타고 잠들어 있는 일행들을 놓아두고 저 혼자 마천에서 내렸습니다.
곧 연결된 추성리행 버스로 갈아타고 광점동 입구에서 내려
홀로 산행을 시작하였지요.


지난 태풍때 파손되었는지 어름터 직전 계곡 건너는 다리가 파손되어
우측 바위를 넘어 계곡을 건넜습니다.
(노약자, 연약자 단독 산행은 곤란할 것 같습니다.)

어름터에 수도하던 스님은 보이지 않고
새로 만들어 놓은, 무엇이라 하나요? 지붕 있는 평상?
단감을 잔뜩 널어놓았더군요.
물 한 바가지 마시고 쉼 없이 길을 재촉했습니다.

향운대에서 어름터로 내려오는 산길의 표지기를 누군가 다 떼 버렸다 했는데
쑥밭재 방향의 길에는 그대로 있더군요.

합수점에서 능선으로 붙어 삼거리에서 우측의 허공다리골을 따라
절터를 찾으러 갔습니다.
곧 [유적답사]에 실릴 폐사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였지요.
나중에 안 사실입니다만 이 절터의 이름은 [두루암]이었다 합디다.
아마도 두루봉 아래 있다 해서 그렇게 지은 모양입니다.

재법 규모가 큰 마을 터(아마도 허공다리골)의 끝 무렵에
석종형 부도 한기만 외롭게 서 있는 절터에 도달하여
주변의 암자 흔적이 더 있는지 살펴본 후 여러분께 보여드리려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쪼다 같이 디지털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빼 놓고 온 것입니다. ㅠㅠㅠ

이번 산행의 최대 목표였던 두루암과 광덕사지 사진 확보였는데
허망하게 되었지요.


낙담한 채 그래도 광덕사지 사전 답사는 하자 싶어 중봉에서 순두류로 내려가서
로타리산장에 묵을 계획을 세우고 힘 빠진 다리를 채근하며 국골 사거리를 지나
하봉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국골 사거리를 지나고부터 능선은 운무에 잠겨버리고
차가운 강풍이 몰아치는데 정신이 없습디다.
하봉 방향으로 가는 도중에 바위로 가려진 공터에 앉아 점심을 먹고 가만 생각해보니
국골로 탈출하기 위한 핑계거리가 막 생기더군요.

-카메라가 없는데 광덕사지 가보아야 뭐하나, 다시 와야 할 텐데…..
-이렇게 강풍이 몰아치는데 자칫 체력을 잃을 우려가 있는데…..
-중산리에서 만나기로 한 <가객>누님께서 사정상 못 오시겠다니 딱히 가야 할 이유도 엄꼬..
-에, 또… 최근 백무동 [초가집]의 동현이네 병치레를 많이 했다는데 얼굴이나 함 보지 뭐.

내일 만약 비가 오더라도
초가집 마루에 뒹굴며 가을이 떠나가는 지리를 먼 눈으로 즐기는 것도 좋은 일이고
항상 그렇듯이 산꾼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누려보고
그래, 초가집으로 가야겠다!


그런데 나중에 <김삿갓>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입니다만 그 시각.
<김삿갓>님과 함께 있던 초가집의 <동현아배>님이
이상하게도 기분상 <꼭대>형님이 자기 집에 올 것 같다며
그 앞에서 저에게 전화를 하더랍니다.

저는 산행 중에는 전화를 꺼 놓으니 연결이 될 턱은 없고
연결이 되지않으니 <동현아배>님은
‘올타거니. 전화를 받지 않으니 필시 지리산으로 내려온 모양이고
그렇다면 초가집으로 올 것이다.’라고 터무니 없는 상상을 하더랍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지리산 산신령의 조화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그 사연에 대하여 조만간 별도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결국 다시 국골 사거리로 돌아와 탈출을 하였습니다.
고도를 조금 낮추자 마자 더워서 여름 산행용 옷만 입고 내려와야 했습니다만
능선 위에는 여전히 운무에 잠겨 칼바람이 불 거라 최면을 하면서
너덜길을 내려왔습니다.

추성에서 버스 세 번을 갈아타고 백무동으로 가서 귀한 멧돼지 구이로 술안주 삼아
회포를 풀었지요.

정말 이날 백무동으로 오지 않았다면 천추의 한을 남길 뻔 하였습니다.


국골로 내려오면서 세웠던 다음날 산행 계획을 포기하고
하루종일 마루에 뒹굴며 지내기로 계획을 수정하였습니다.
천추의 한을 남기기 않기 위하여….


11월 16일 일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쾌청한 하늘을 보니 천왕봉 일출이 좋았을 거라 싶었는데
[JLA]에 붙어 사신다는 전주에서 오신 분이 오시더니
멋진 일출을 보았다 하시더군요.

전날 야영장에서 새로 산 침낭 테스트를 위하여 야영을 하고 내려온
<김삿갓>님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그리고 노는 김에 벌써 부터 만나 뵈리라 마음 먹고 있었던
백무동 최고령이신 <이정수>영감님께 산 이야기를 들으러
영감님 댁에 갔지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느라 점심도 그 집에서 얻어먹고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분에게 들은 이야기는 곧 [지명탐구]게시판에 정리하겠습니다.



급기야 서울행 버스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동현아배>님이 데리러 와서
자리에서 일어나 초가집으로 돌아오니
세석에서 자고 큰새골로 내려온 <칠부>님 산행팀과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넘어온 <산하>님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또한 뜻밖에도 만나고 싶었던 <그림자>님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4시발 동서울행 버스를 타고 길이 막히는 바람에 10시 30분 동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아쉬움 하나가 이 시간 까지 영 서운하게 합니다만.
많은 분들을 만난 뜻 깊은 산행이었습니다.
5 Comments
지리동사 2003.11.17 10:47  
꼭대님 수고 하셨습니다.저의 상상은 16일 새벽에 중산리에서 꼭대님과 가격님을 만나(산행 방해와 분위기상 동참을 꺼리는??? 경우를 제외하곤)동참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쌍재의 공수님댁에 가서 국밥과 커피 감홍시만 신세지고 왕산 등산로 기념산행 뒷풀이 행사 구경하고 왔습니다.다음에 함께할 산행을 기다리며...
꼭대 2003.11.17 10:59  
꺼릴 리야 있었겠습니까. 제가 게을이 늘어 아쉬운 기회를 놓쳤군요. 님의 맛있는 솔잎차 등등 얻어 묵으며 즐거운 산행 했을 텐데... 다음 기회를 기다려 보겠습니다.
공수 2003.11.17 11:05  
나름대로 분주한 시간이었습니다! 꼭대형님도 총을 두고 전쟁터에 오셨고,지리동사님은 언제나 많은 사람을 구름처럼 거느리고(?)다니시고... 저는 동사님이 다녀가신 후 바로 구형왕릉으로 내려가서 거나하게 한잔하고 새벽에 부산으로 내려 왔습니다.
꽃노루귀 2003.11.17 19:21  
꼭대님께서 열심히 다니시는 덕분에 집에 앉아서 지리를 봅니다 동현이 집에 고마움을 전하러 한번 가야지~~~
거칠부 2003.11.18 10:12  
크크... 아마 꼭대님이 그 자리에 앉아 계셨더라도 논산역이 지날때까지 주무시지 못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꼭대님과 산행한지도 참 오래되었네요. 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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