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도대체 나는... 무슨 말이 하고파서였을까??

산돌림 | 1655
언제부턴가, 출근길 버스를 타는 일에서 그날의 일진을 점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집에서 버스 타는 데까지 15분쯤 걸어가는데,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버스를 타면 "운수 좋은 날",
5분 정도만 기다리면 "그저 그렇고 그런 날",
목을 빼고 한참을 기다리다 짜증을 내는 자신을 볼 때면 "재수 더럽게 없는 날"...
이런 식으로, 순전히 내 몸의 편한 정도에 따라 그 날의 일진을 보는 셈이지요.

오늘 아침은... 재수가 없었습니다.
저만치 정류장에 서 있는 버스를 보고, 내딴엔 부지런히 걸었지만,
불과 몇 미터를 남겨두고 떠나는 버스를 붙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애초 버스를 보자마자 죽어라 뛰었으면 못탈 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아둥바둥 살지 말자"는 게 평소의 지론이라...(^^)

때마침 들어오는 마을버스를 탔습니다.
내려서 사무실까지 또 10분쯤 걸어야 하지만,
막연히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던 거지요.

그런데 마을버스를 타고 앉아 떠나기를 기다리는데,
옆으로 그 놈의 시내버스가 휭하니 지나가더군요.
평소엔 10분에 한 대 꼴이더니, 어째서 오늘은 두 대가 연이어 지나가는 건지...
조금만 참았으면 "운수 좋은 날"인데, 순간의 판단 착오로 "재수 없는 날"이 돼버리고...

마을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가로수 밑에서 낑낑대는 강아지가 보입니다.
두어 번 빙빙 돌더니 한 쪽 다리를 쳐들고 시원스레 볼일을 보고,
옆에 있는 주인 아저씨는 사랑이 듬뿍 담긴 눈길로 그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이 놈의 개××가 나를 보더니 왈왈대며 짖기 시작합니다.
안 그래도 재수 없는 날이다 싶은데, 한 그릇도 채 되지 않을 놈까지 나를 업신여기다니!
안 그래도 아침부터 노상방뇨의 현장을 목격하고 불쾌했던 참인데,
지놈이 나서서 시비를 걸어오니 "너, 잘 걸렸다" 싶었습니다.
주인이 있건말건 한 번 걷어차주려고 오른발에 힘을 주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때마침 주인이 개××를 말리더군요.
(물론 덩치가 큰 놈이었다면, 제가 먼저 일찌감치 길을 건너 피해 갔겠지만,
저란 인간이 또 '강자에는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인간의 본성에 충실한 존재라...)

그렇게 해서 사무실에 들어오니... 오늘 일이 걱정이 됩니다.
제가 공무원은 아니지만, 시민의 세금에서 월급을 주는 곳에서 일을 하다보니,
가끔 이런저런 "조사"니 "감사"니 하는 걸 받아야 하는데, 오늘이 그 중의 하나였거든요.
사실 높은 사람이 아니니 제가 책임질 일이야 없겠지만, 주변에서 긴장을 하니 나도 덩달아...(^^)
아침부터 재수가 없었으니, 낮에도 재수 없는 일을 당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별 일 없이 넘어갔습니다.
저녁에 집에 가다 넘어져 코가 깨지는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만 보면 오늘은 "재수 없는 날"이 아닌가 봅니다.
아니, 어쩌면 아침에 개××가 짖는 걸로 액땜을 한 건지도 모르겠고...

아!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이만큼 쓰다보면, 도대체 내가 주장하는 바가 뭔지 모르게 됩니다.(^^)
글이 길어지니 마무리를 해야 될 텐데,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어쩌면 "재수(=미신)를 믿지 말자"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고파서였을까요?(-.-;;)

* * * * * * * * * *

그건 그렇고...
오픈 이래 최대의 꼬리말이 달렸다는 "엄처시하..."를 읽으며,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고민은 비슷하지만, 저와 달리 슬기롭게 대응하시는 분들이 부럽기만 하구요.

그 중에서도 압권은 <네스카>님의 말...
"...나중에 후유증이 없냐구요? 잘 모르겠는데요..."
아! 같은 40대 초반으로서, 어찌 그리 당당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첫단추를 잘못 꿴 탓에 눈치를 보며 살 수밖에 없으니, 저는 그저
"나름대로 지리를 즐기는 법"을 빨리 찾아야 할 텐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서 목하 고민중입니다...

어이쿠! 퇴근 시간이 지났네요...
소인은 그만 물러가옵니다.
모두들 기분 좋은 한 주일 보내십시오!
6 Comments
발통기 2003.11.18 19:28  
ㅎㅎㅎ 항상 아우님 이야기 잼있게 보구있어번개때 볼 수 잇것제
꼭대 2003.11.18 19:45  
내가 님을 경험한 바로는 개xx에게 시달린 날은 재수 없는 것을 넘어 죽을 뻔한 일이 생기는데 오늘 밤 조신하게 보내고 내일 아침 무사함을 알려주기 바랍니다. 서북능 가면서 인월에서 개떼들에게 시달린 이후 어이없이 성삼재을 눈앞에 두고도 당동으로 빠져버려 죽을 뻔 한 일이 전광석화 처럼 떠오르군요. 여러가지 하는 님이 재수 운운하니 괜시리 걱정입니다.^^
임우식 2003.11.19 08:56  
산돌림.....연구 대상입니다.ㅎㅎ
네스카 2003.11.19 09:34  
연구대상 맞습니다...ㅎㅎㅎ 얼마전 서북릉 산행때 성삼재가 빤히 보이는 곳에서 연구대상님의 "죽을뻔한...당동" 산행기를 떠올리며 10여분 이상 연구했었죠. 결론은...아직 연구중입니다.
산돌림 2003.11.19 09:42  
오늘 아침, 일단은 무사함을  형님께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역시 어제는 재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퇴근길에 버스 안에서 직장 상사의 전화를 받고, 반강제로 직원들 술자리에 호출되어 12시를 넘긴 데다가, 술김에, 집사람의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카드까지 긁음으로써, 장차 이를 어찌 고백할까 하는 걱정까지 안게 됐으니 역시 어제는 "재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성님! 송년회 때, 가기는 꼭 갑니다. 다만 그 날, 도저히 도망갈 수 없는 직장 행사가 야간에 있어 좀 늦을 것 같습니다. 막차 타시기 전까지는 갈 터이니, 제 몫의 은 꼭 좀 남겨두시옵소서...
임우식 2003.11.19 10:16  
네스카님의 연구가 아직도 진행중이면...매우 중한 상태일것 같습니다., 당동도 당동이지만.....도저히 이해는 고사하고 오해도 안되는건 써레봉에서의 뺑뺑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네스카님의 연구가 빨리 마무리되길 기대해 봅니다.ㅎㅎㅎ

To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