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삼정 가는 길

지다람 | 1612
<< 지난 6월 중순에 작성한 글을 이 곳에 옮겨 봅니다... >>

지리산의 삼정 마을은 벽소령을 담으로 남과 북에 각각 위치하고 있다. 북쪽의 삼정은 음정, 양정, 하정을 합쳐서 부르고, 남쪽은 의신마을 위쪽을 일컫는다. 예전의 가난한 삶 대신 이제는 민박 등 관광지로 변모하고, 특용작물 재배 및 지리산의 여러 부산물을 채취하여 다른 곳 보다 훨씬 넉넉한 삶을 누리고 있다.

두 마을은 지리산 주능선의 한 가운데 위치한 벽소령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자리잡고 있다. 빨치산 진압작전 당시 개설되었던 도로가 역사의 아픔을 안고 산자락의 상처와 함께 굽이굽이 벽소령으로 오른다. 이 도로는 지자체 선거 때마다 공공연하게 공약으로 거론되는 단골 메뉴다. 옛 도로를 복원, 포장하여 관광상품화 하자고...

엊그제 찾은 남쪽의 삼정마을 가는 길은 그러한 우려를 증폭 시켜주기에 한결 충분했다. 의신에서 끝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드문드문 급경사나 위험구간에만 콘크리트 포장으로 변하고 대부분은 흙 길이었던 삼정까지의 도로가 반절 가까이 포장되더니만, 이제는 추가 포장을 위해 길을 다듬고 말뚝을 박아 나무판을 고정시켜두었다. 콘크리트가 부어지기만 하면 된다.

지금껏 화개에서 택시를 이용하여 의신까지 접근 후 산행에 나섰던 패턴이 이제는 삼정까지 편하게 올라선 후 나서게 되었다. 택시 비는 조금 더 들겠지만 이 얼마나 아름다운 혜택인가? 참으로 슬플 따름이다.

예전 포장도로가 쌍계사 앞에서 신흥까지, 다시 의신까지 이어질 때만 해도 환경 문제에 대한 목소리가 미약하고 현지 주민에 대한 배려가 강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요즘의 새로운 시도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특히 반달가슴곰 보전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고 있는 실정에서 더욱 그렇다.

옆 동네 범왕 쪽은 어떤가? 칠불사로 이어지는 좁은 도로를 확장하기 위해 가파른 산자락을 깎아내고, 맑은 계류에 돌과 흙을 쏟아 부어 메꾸면서 관광도로를 만들고 있다. 주민들의 소득 증대와 뭇 사람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엄청난 배려가 가슴 아프다.

지리산 곳곳에 자리잡은 오지마을 중 비록 비포장도로지만 길이 나있는 마을은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국립공원 내에 속하지만 사유지기 때문에 인정받는 특혜는 비포장의 불편함을 감수하기에 충분하다. 공원 밖으로 보상이주를 권해도 나날이 새롭고 편하며, 넓은 건물로 증축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리산이 주는 부산물의 특혜를 가장 많이 부여받으면서 포장도로의 혜택까지 받으니 이만한 낙원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반달가슴곰 보호와 증식을 위한 일련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맞춰 입산 통제지역이 광범위하게 넓어지고 단속 또한 심해진다. 하지만 가장 큰 고민은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위한 환경은 이미 파괴되어 치유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것이다. 이른 아침 택시를 이용하여 의신으로 질주하는 길에는 삵쾡이를 비롯한 무수한 짐승들이 밤새 차에 치이고 밟혀 도로에 널부러진 모습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동물들의 가장 큰 적은 무수히 몰려다니는 산행객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위협은 포장도로에 의한 생태통로의 단절과 이동제한으로 개체 수 유지는커녕 멸종단계를 부추긴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 반달가슴곰을 비롯하여 여타의 동식물을 보급한다한들 얼마나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을런지...

올 여름에는 그간 주민을 제외하고 의신에서 불법으로 차를 끌고 삼정으로 올랐던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삼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이 포장도로로 거듭날 것이니까. 하지만 주차장이 협소한 그곳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벽소령을 넘어 삼정과 삼정을 잇는 도로가 뚫릴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벽소령에서 반반씩 나누어 시도하는 종주. 이 얼마나 기막힌 발상인가?

군작전도로를 따라 잠시 걷다보면 자연의 위대함에 고개를 떨구곤 한다. 인간에 의한 엄청난 상처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스스로 치유하며 이제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갖춰가기에 이르렀다. 눈을 피해 가끔씩 오르는 4륜 자동차와 산악자전거들의 짓밟힘에도 자연은 스스로 자연스러워져 좁다란 오솔길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포장도로와 함께 자꾸만 쫓기는 심정은 비단 반달가슴곰만이 아니라 왠지 나의 모습인 것 같아 씁쓸하다.

2003년 6월 중순에...

(^_^) 지다람 / 윤 재정
4 Comments
임우식 2003.11.27 13:30  
동감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지리산이 싫어질까 두렵습니다. 산이 지리산 하나는 아닐진데...... 그래서 자꾸만 지리의 가슴속 깊이 파고 드는게 아닐지요.... 6일후에.....
철화 2003.11.27 15:13  
오랜만입니다. 연락함주시지요...
꼭대 2003.11.27 15:47  
이곳에서 체계적으로 문제점을 정리해고 논리를 비축하여 운동이 필요한 적절한 시기가 오면 제대로 한번 해 봅시다. 누구보다도 지리산 구석구석을 사랑하시는 님의 가슴에 담아온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지다람 2003.11.27 17:14  
지엽적이고 작은 목소리도 합쳐지만 언젠가는 울림으로 전해지겠지요. 인터넷 공간의 다양한 목소리를 묶어 세우기는 어렵겠지만, 작은 부문이나마 공감할 수 있음에 힘을 얻습니다. 얼마 전 한 상철 님의 글이 너무 조용히 지나가기에 안타까움에 지난 글을 올렸습니다. 조만간 뵙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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