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천국'에서 '지옥'으로....

산돌림 | 1392
지난 주말은 제 개인적으로,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초가집 번개>를 빌미삼아 많은 분들을 만나뵐 수 있어 좋았고,
일정 기간 서울에서 물질적인 토대를 마련한 다음 꼭 다시 지리로 돌아올 거라는,
동현이 아빠의 "8개년계획"에서 묻어나는 당당한 의지도 아주 부러웠습니다.

이야기도 좋았고, 이런저런 맛있는 것들도 맛볼 수 있어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만,
혹여라도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이 불편해하실까봐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아주 배터지게 먹었다는 것만 말씀드리지요...

선약이 있는 분들이 저녁 늦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고,
나머지는 따스한 장작 난로 주위에 빙둘러 앉아 또 이런 얘기, 저런 얘기...
그러다가 각자 잠자리로 들었고...

아침에 눈을 떠서 <철화>님, <백운>님, <뫼가람>님은 "빡신산행"을 하러 가시고,
<꼭대>님을 포함한 <산유화>, <범쓰>, <투덜이>님은 지리산 주변의 암자를 찾아 가고,
<임우식>님과 <발통기>, <꽃노루귀>, <산사나이>, <거칠부>님과 <산돌림>은 왕산을 거쳐,
쌍재의 <공수>님 댁에서 맛있는 점심을 얻어먹었습니다.

봄날 같은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 자리잡은 <공수>님 댁 마당에 앉아 있노라니,
정지용의 <향수>라는 시가 저절로 떠오르더군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물론 시(詩)에서 그리는 서정적인 세계와는 달리 사람의 생활이라는 게 팍팍한 것이 사실이고,
잠시 거쳐가는 이가 느끼는 푸근함과는 달리 뿌리박고 살아가는 분이 느끼는 어려움이 크겠지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얼룩배기 황소"가 한가로이 어슬렁거리는,
그런 <공수>님 댁에 또 다시 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품고 돌아왔습니다.

* * * * * * * * * * * * *

그런데... 이처럼 꿈결 같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건만,
월요일인 오늘은, 어제와는 또다른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월요병'의 유혹을 어렵사리 뿌리치고 출근했는데,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 아침부터 짜증을 내는 직원을 보고나니
제 심정은 어제의 '천국'에서, 오늘의 '지옥'으로 곧장 떨어진 것만 같습니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하여(물론 의사의 진단은 아닙니다만), 큰소리 내는 걸 싫어하는 몸이건만,
월요일 아침부터 날카로운 목소리를 듣고나니 가슴이 두근두근, 심장이 벌렁벌렁...
'내가 왜 이러고 사나?' 싶고, 그냥 다 집어던지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면 좋겠다는 마음이 굴뚝 같지만,
어쩌겠습니까? 자식 새끼들 얼굴 떠올리며, 그냥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수밖에요...

불과 하루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겪고 있는 저와는 달리,
우리 모든 식구들은 즐겁고 활기찬 한 주일 보내시기를 조심스레 빌어봅니다.
1 Comments
투덜이 2003.12.01 17:29  
저두 콧구멍에 지리산 바람을 집어 넣고 나니 괜한 짜증도 그냥 넘어 가게 되더군요. 지리산 바람 냄새가 아직도 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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