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이름'이 문제인지, '사람'이 문제인지 모르지만...

산돌림 | 1449
그동안 "한가하신", "극소수의" 몇몇 분들이 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는 걸 알고 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제 개인신상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비교적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툭하면 길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는...",
일종의 초자연적(超自然的) 현상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몇몇 분은 "연구 대상"이라는 수식어도 붙여주셨고요...

그런데 이번 <초가집 번개>의 과정에서 그 원인 규명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몇몇 분이 둘러 앉아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하던 중, 모든 것은 제 이름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더군요.

"돈다"라는 어원에서 나왔음이 분명한 "돌림"이라는 말을 이름으로 쓰고 있으니,
똑바로 가려고 아무리 기를 써봤자 빙 돌아갈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니 당연히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 아니겠냐는 설(說)이었지요.

듣고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어떤 분의 말처럼 "작명가"가 괜히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말도 그럴 듯했구요...
사물(事物)을 대표하는 게 이름이고, 또 이름이란 게 사물의 특성을 규정짓는다고 보면,
모든 것을 제 이름 탓으로 "돌려도" 그리 잘못된 결론은 아닐 성싶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작명가는 아니지만, 이름을 지을 때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건 분명합니다.

"산"씨 성을 쓰는 사람들 특유의 "단순함"(<산유화>님을 비롯한 다른 '산'씨들은 아직 이를 강력히 부인합니다만)
때문에, 일단 성은 '산'으로 정해야겠고,
나머지 이름은 여기저기 뒤적여 그럭저럭 좋은 말을 갖다 붙여야 했습니다.

제 이름의 뜻을 알고 싶어 사전을 찾아볼 만큼 한가하신 분들은 당연히 없을 터이니,
이해를 돕기 위해 국어사전에서 옮겨 적으면 대충 이렇습니다.

"산―돌림(山―) : [명사]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한 줄기씩 내리는 소나기."

구름을 따라 이 골짜기에서 저 골짜기로 옮겨다니는 소나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소망도 있었고,
구슬땀을 흘리며 산에 오르는 이에게 잠깐 스쳐가는 빗줄기가 시원함을 안겨주듯,
뭔가 남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주제 넘은' 욕심도 있었던 거지요.

그런데 다들 아시다시피, 자유는커녕 산에 갈 때마다 집사람 눈치를 봐야 되는 불쌍한 처지에다가,
두 달에 한 번꼴로 피 약간 뽑는 것 말고는 세상에 전혀 도움 되는 일이 없으니,
한마디로 "이름이 아까운"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쯤 되니 모든 것을 이름 탓으로 돌리기엔, 제 양심에 거리낌이 생깁니다.
"과연, 사람은 멀쩡한데 순전히 이름을 잘못 지어서 그런 거냐?",
아니면 "이름은 좋은 건데 사람이 제값을 못해서 그런 것이냐?"...

그 구체적인 답은 좀더 길고 어려운 연구과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적어도, 제가 끼면 길을 잃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어제 쌍재의 <공수>님 댁에서 구형왕릉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길을 놓쳐 빙
돌아와야 했었지요.
저를 빼고는 모두 역전의 베테랑들이 모여 꾸려진 산행팀임에도,
희미한 등산로도 아닌 차량이 다니는 임도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왔으니,
"산돌림! 너 때문에 빙 돌아 왔다"는 지적에 대해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이름"이 문제인지, "사람"이 문제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돌림>이라는 이름 속에,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그 어떤 우주의 오묘한 원리가 숨어 있는 듯하니,
혹시 앞으로 저를 데리고 다니실 분들은 독도에 좀더 신경을 써주시를 간곡히 부탁드리옵니다.(^^)
6 Comments
꽃노루귀 2003.12.01 17:40  
제 탓이지요 함께 산행했던 분들께 미안했어요 다행이 트럭을 얻어타서 쬐끔 미안한 마음이 적어졌지요
흙기사 2003.12.01 18:35  
반가웠습니다. 인사도 못드리고 먼저 가서 죄송합니다. 똑바른 길보다 약간은 돌아가는 길이 더 여유로움이 있지 않은가 합니다. 좋은말씀 많이 듣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수 2003.12.01 19:02  
잘 가시지 못했군요! 내만 잘 다니면 좋은 길 인줄 알았더니만... 원래 그 길은 처음으로 가시는 길이 힘이 드는가 봅니다. 미리 알려 드려야 하는데...
산돌림 2003.12.01 19:16  
님! 설거지 끝내고 나오니, 그사이에 가셨다 하더구만요. 밤새 신었던 남의 신발이 그대로 있는 걸 보면, 잘못 신고 갔던 사람이 늦게나마 나타났던가 보죠. 벽소령이나 세석에서 부산의 랑 언제 한번...! 님이 아무리 "내 탓이오!" 우기셔도, 형님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걸요.(^^)... 만나뵈서 반가웠습니다. 님! 새벽 알람소리에 깨어나 부랴부랴 출근하는 걸 알면서도, 눈 뜨기가 귀찮아 "잘 가라" 인사를 못한 내가 더욱 죄송합니다. 다음에 또 반가웁게...
산돌림 2003.12.01 19:32  
님... 저희 잘 왔습니다!! 그냥 웃자고 한 얘기일 뿐인데요.(-.-;;) 그라고 사진이 실물보다 못하단 말씀에 동조하실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아무래도 사진을 너무 작은 사이즈로 올려서 그런가 봅니다.
진. 2003.12.01 19:43  
제 신발요. 잘 찾아서 잘 신고 있읍니다. 좋은 산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일이 어디 있겠읍니까! 함 함께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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