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고산문(告山文)

백산 | 1393
유세차

계미년 섣달 초나흗날에 경상도 창원 땅에 사는 범부 '백산'이 지리의 품에 들고자 이렇게 고하옵니다.
늘 즐겁고 안전한 산행을 하게 해 주신데 대하여 감사 드리며 지리산 산신령님과 천왕봉 성모님께 비옵니다.

미천한 이 몸이 비록 속세에 찌든 더러운 족적을 남기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오늘 산행에서 작은 것이라도 느끼게 하고 안전한 산행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그리고 각박한 도시생활과 물질만능의 생활환경에 때가 찌들어 참된 삶의 방향을 잃고 헤매는 저의 불쌍한 영혼을 굽어 보살펴시어 신령님과 성모님의 품에 들면서 정화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제 마음을 짓누르고 제 눈을 멀게 하는 물욕 귀신, 미움 귀신 등은 모두 거둬 가시고 절제 귀신, 사랑 귀신 등 좋은 귀신만 마음 속에 자리잡게 도와 주시옵소서.

끝으로 거룩한 님의 터 지리를 온몸으로 사랑할 수 있게끔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비옵니다.

상향.


<사족>
우리 조상들은 중요한 행사 때마다 마음을 정화하는 벽사의식(辟邪儀式)의 하나로 고사를 지냈습니다.
우리 산꾼들도 산행을 하기 전에 거창한 고사는 지내지 못하더라도 가볍게 합장이라도 하며, 지리를 단순히 즐기는 대상이나 정복의 대상쯤으로 여기지 않고 경건한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어설픈 고산문을 써 보았습니다.
1 Comments
꼭대 2003.12.04 21:47  
짦막한 고산문(告山文)이지만 산꾼의 입장에서 희망하는 바가 다 담겨있습니다. 거창한 고사는 고사하고 가볍운 합장에도 게으름을 피우는 위인 이지만 산자락에 들 때 마다 [님께서 [지리99]에 고산문을 올리신 적이 있다]는 기억만이라도 되새김으로써 산에 드는 마음을 추스려 볼 작정입니다.

To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