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어느 죽음에 관한 추억

꼭대 | 4737
1. 한 여름 밤의 죽음


벌써 12년이 흘렀군요.
제가 창원 생활을 청산하고 당진으로 옮기기 직전
여름이 끝나 갈 무렵의 어느날 밤이었습니다.


그날 밤 11시경 평소와 같이 우리 식구 모두는 잠이 들었는데
12시 가까이 되어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밤중에 전화를 받는 다는 것은 대체로 불안을 동반하게 되는데
아파트 윗집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더군요.


내용인 즉,
신랑이 오지 않아 아파트 창문을 통해서 창원대로변을 내다보고 있다가
충격적인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합니다.

일행 두 명 중 한명이 봉고차에 치어 쓰러져 있는데
다른 일행이 비명을 지르며 아무리 손을 흔들어 지나가는 차를 잡으려 해도
아무도 멈추어주지 않은 지 30분이 지났다 하더군요.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우리가 떠 올라 그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사람이 미친 듯이 날뛰며 차를 세우려 하고 있더군요.

망설임 없이 뛰어나가 차를 몰고 갔습니다.
덩치가 저보다도 더 큰 쓰러진 젊은이를 뒷좌석에 싣고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그제서야 놀란 충격으로 꼼짝을 못하던 가해차량인 봉고차 기사가 신고한 경찰차가 나타나
뒤따르고 있더군요.


승용차 시트에 묻었을 핏자국도 잊은 채 응급실로 황급히 뒤따라 들어갔습니다만
원망스럽게도 굴곡 없이 조용히 평행으로 달리고 있는
심전도 그래프를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좌절감과 허탈감에 젖어 한참을 병원 앞 뜰에 앉아 안타까워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몇 일이 지나갔습니다.
그 교통사고의 내막이 하나 둘씩 동네에 알려지게 되는데

대학생이던 그 피해자는 여름 방학동안 아파트 옆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그날 밤 개학을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종료하면서 직원들과 마지막 회식을 한 후
길가에서 택시를 잡으려다 사고를 당한 것임이 알려져
더 마음을 아프게 하더군요.


그러나 저와 그 사고와의 관계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고도 또 몇 일이 지난 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 피해자의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게 됩니다.

그분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전해 들었을 터이고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하여 힘든 아르바이트를 마다하지 않던 착한 당신의 아들을 위하여
달려나간 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 하셨고

무엇보다도 그분에게 중요했던 것은
시신을 직접 확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아들의 죽음을
직접 지켜본 저에게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몇 일을 수소문하여 저를 찾아내었고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겠다 하셨지요.


그러나 저는 도저히 그 분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만
그 분 앞에서 그 슬픔을 다시 지켜볼 자신이 없더군요.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전화가 왔습니다만 매우 정중히 거절하였고
그 일은 저의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일로써 어두운 기억의 저편에 자리하게 됩니다.



2. 숟가락을 찾아서


작년 여름 대성폭포 위에서 애지중지 하던 숟가락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후일담]을 빌어 이곳에 올려드린 바가 있습니다.

그날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장소에 숟가락을 꺼내 놓고선 챙기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되었지요.


어디서 잃어버린 지 모르는 경우라면
아쉬움은 있겠지만 마음이 그리 안타깝지는 않을 텐데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위치에 정든 숟가락을 놓고 왔으니

오만원 조금 못미치는 거금을 들인 티타늄 숟가락 셋트이기도 하였지만
저와 정이 든 그 넘을 쉽게 잊고 다른 숟가락을 살 수도 없어
다시 찾으러 가리라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의 이기심에 기인합니다만
찾기로 마음먹었다면 곧바로 다시 그 골짝으로 들어갔으면 되었으련만
유혹하는 지리의 다른 골짝에 빠져 미루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지난해 지리산 일대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 태풍 <루사>가 지나가게 됩니다.
섬유류 수저통에 들어있던 숟가락이 경사 급한 그 계곡에 살아 남아 있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었지요.


그러나 여전히 그냥 포기할 수는 없더군요.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직접 꼼꼼하게 확인한 후 정말 없다면 확실하게 잊을 수 있겠다 싶더군요.


지난 해 눈이 수북이 쌓인 겨울날
<우식>형님께서 그 계곡으로 가시며 저의 숟가락을 찾아보겠다 하시고
약 2미터 높이를 뛰어내려가야 도달할 수 있는 대성폭포 1단 위의 공간에
위험을 무릅쓰고 접근하여 찾아보았으나 없더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색대대장 출신답게 오죽 꼼꼼하게 확인하셨겠나 짐작이 가고도 남아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 탓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새로운 숟가락 구입을 미루고
아들 넘의 것을 가지고 다니거나 혹은 집에서 사용하는 숟가락을 가지고 다니기도 하였지요.

없어졌다는 확인을 분명히 하고싶었습니다.
저와 산행을 함께하며 오랫동안 정이 든 그 넘을
다시는 찾을 수 없다고 포기할 수 있는 확신이 필요하더군요.


어제 그 곳에 다녀왔습니다.

다른 지리의 계곡에 비교하여 그리 매력적이라 할 수 없는 그 곳을
오로지 숟가락의 실종을 확인하기 위한 산행이었지요.


물론 숟가락은 그 자리에 없었고 그 주변 떠내려가다가 걸릴 만한 곳에도 없었습니다.


숟가락을 꺼내놓은 마지막 모습이 생생히 떠오르면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십 여년 전 그 교통사고를 당한 학생의 아버지였습니다.

어찌 사람의 죽음과 숟가락의 사라짐을 비교할 수 있는 일이며
그 아버지의 세상 무너지는 아픔을 저의 아쉬움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만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던 저를 만나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듣고싶어 하셨던,
그래서 아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자 하셨던 그분의 심정이 새삼 가슴에 사무치게 다가와
그 여름날 밤 겪었던 한 죽음에 관한 추억이 씁쓸히 떠올랐습니다.



아깝게 청춘을 마감한 그 분의 명복을 빌며
그 아버지께서도 그 아픔을 잘 이겨내시고 잘 지내고 계시기를 바래봅니다.



이제 다시 숟가락을 사려합니다.
앞으로 남은 저의 인생과 함께 할 티타늄으로 만든 좀 큼지막한 넘을 구해볼까 합니다.
혹시 쓸만한 넘을 아시는 분 계시면 추천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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