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달궁] - 그 잃어버린 꿈에 대한 그리움

꼭대 | 4917
1. 군말


제가 어느 곳을 여행지로 꼽을 때 고려하는 점은 세가지 입니다.

첫째, 주변의 자연경관 혹은 문화적 자산, 즉 눈으로 즐기는 대상입니다.
둘째, 지역 특성의 먹거리, 즉 입으로 즐기는 대상이지요.
셋째,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 곳을 살아온 삶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입니다.

흔적조차 사라진 허허벌판이나 영문도 모르는 채 들어찬 현대식 구조물 틈 사이로
이 땅에 전해오는 삶들을 유추해 보는 즐거움은
어쩌면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닌가 합니다.

예를 든다면,

볼품없는 돌무더기 같은 구형왕릉 앞에 앉아
가야의 애틋한 역사 속에 비운으로 막을 내려야 했던
한 왕조 마지막 왕의 애절한 슬픔을 들여다 보는 즐거움은
한나절을 그 앞에 자리펴고 앉아 있어도 지루한 줄을 모르게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가 좋아하는 여행지 중의 하나가 달궁입니다.
10여년전 지리산에서 가까운 창원에 살 때,
개인적으로 산행을 하지 못할 경우, 지리산을 느끼고 싶을 때 가장 많이 찾았던 곳이 달궁이었지요.

달궁을 찾을 때면 항상
[그 잃어버린 꿈에 대한 그리움]이라 여행의 주제를 작명하고
저도 그 그리움들에 편승하여 토속주 힘을 빌어 저만의 그리움을 만들곤 하였지요.


달궁에 얽힌 역사라면
유별난 내용 없이 대부분 잘 알고 계시는 내용입니다만
저 나름대로의 관점으로 그 역사들에서 묻어나오는 동질적인 애잔한 정서가
아스라한 지리산 깊은 골짝의 늦가을 피어 오르는 운무의 쓸쓸한 느낌과 맞아 떨어져
지리산 속에 잠입해 있다는 즐거움을 극대화 하곤 합니다.


(작년에 대충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만
최근 다시 질문이 올라와 다시 정리해 봅니다. 아래와 같이.)


2. 달궁의 전경


얼핏보면, 달궁은 그저그런 지리산 자락의 계곡일 뿐입니다.

청류가 흐르긴 하나 칠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뱀사골이나 피아골에 비해 절경이라 말할 수 없으며,
최근에는 지리산 중요 관광 거점이 되다시피 해서 민박집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바람에
그나마 고즈넉하던 마을도 북적거리게 되었습니다.

하늘아래 첫 동네라던 심원마을도 요즘 그 모양이니
지리산 아래 그렇지 않은 마을이 이제 얼마 남아 있겠습니까만.


88년 지리산 관통도로(인월에서 성삼재 거쳐 구례까지)가 뚫리기 전까지는
궁핍하고도 지독한 산골짜기였는데 도로덕분에 접근이 용이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객관적인 달궁의 현재 모습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달궁을 즐겨찾는 까닭은,
아래와 같이, 역사의 그늘에서 앞서 살다간 사람들의
[잃어버린 꿈에 대한 그리움]을 상상하는 즐거움 때문입니다.



3.달궁에 얽힌 역사


달궁은 선사시대와 현대사에서 각각 풍운을 몰고 등장하게 됩니다.

3-1. 선사시대

마한시대라 함은
백제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지역을 제패해서
고대국가를 형성하기 전의 부족국가 시대를 말합니다.
이때, 마한의 지역에 54개국이 있었다고 하지요.

상상해 본다면, 현재의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지역에 54개의 국가가 있었다니
각각의 나라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되며 그야말로 이야기책에서나 나오던 부족국가 시절입니다.


그 중의 한 나라 (아마도 남원이나 함양 부근에 자리잡고 있었겠지요)가
다른 나라의 침입으로 피난을 가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달궁입니다.
달궁의 지명은 달과 같은 궁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임은 다 아시는 바입니다.

인월에서 달궁으로 들어오다 보면
인월 들판에서부터 협곡을 따라 한참을 들어와야 도달하는 곳이라
지리산 관통도로를 머리에서 지운다면
2천년전 이곳의 전경이 눈에 선하게 다가오게 되며,
그 끝 무렵 잠시나마 평지를 만나게 되는 곳이 바로 달궁이지요.

지금 주차장이 그 당시 궁궐터였다는 고증이 있으니 야영장에 누워
그 옛날 아기자기 했을 어느 부족국가가 손때 묻은 터전을 버리고 하늘도 닫힌 산골짝으로 들어와
잃어버린 꿈을 그리워하며 서서히 사라져 갔던 마지막 모습의 슬픔을 상상하신다면
스스로 그 순수의 시절로 돌아가는 환상에 빠질 수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각자의 상상력에 달린 문제입니다만.


3-2. 현대사

지리산을 말할때, 해방이후 빨치산을 뺄 수 없지요.
지금도 곳곳에 흔적이 남은 지명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빨치산 루트, 이현상 아지트, 정순덕 아지트 등등.

이상은 주로 6.25때 이야기 입니다만
이보다 약간 앞서 여순 반란 사건이 터질 때
또 한번 달궁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지요.

해방전후에 좌익의 지도자중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낭만주의적인 인테리겐챠들이었습니다.
만민을 경제적으로 평등하게 하겠다는,
얼마나 낭만적입니까-지독하게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그리하여 발생한 여순반란사건의 토벌이 마무리 될 무렵,
주모자인 김지회 중위가 막바지에 달궁으로 도피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결국 두 사람은 토벌군에 의해서 김지회는 사살되고 애인 조경순은 부상을 입고 생포되어 총살됨으로써

옮고 그름을 떠나 해방전후 혼돈의 시대에
한 젊은이의 낭만적인 꿈과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잃어버린 꿈에 대한 그리움만 남기고
지리산 자락의 슬픈 역사를 더하게 됩니다.


이때 김지회 중위의 나이가 20대 중반이었으니
달궁 계곡에 탁족하며 앉아
파란만장하던 그 시절 치열하게 살고자 했던 한 젊은이의 꿈과 사랑을 생각해본다면
절로 가슴 저려오는 상상에 빠지게 됩니다,


그 상상의 끝 무렵 주위를 둘러 보았을 때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불현듯 말할 수 없는 행복에 젖게 되기도 합니다.

혹은, 미혼자들의 입장에선,
알지 못할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을 키울 수 있지않나 싶더군요.

물론 이 또한 각자의 상상력에 달린 문제입니다만..


4. 마무리

그렇듯, 여느 지리산 자락과 다름없는 전경이 자리한 달궁이지만
그 역사 속에서 우리보다 앞서 이곳에서 애환을 꾸려간 사람들의
잃어버린 꿈에 대한 그리움을 되새길 수만 있다면,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반야봉 청솔가지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찬 바람에 눈을 뜰 때,
지리산 아침의 고요하고도 장엄한 기운을 느낄 수만 있다면,

달궁에서의 하룻밤 추억은
우리의 인생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또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하리라 믿습니다.


<빠뜨릴 수 없는 군말>

잃어버린 꿈에 대한 그리움이 잘 떠오르지 않을 경우,
야영장에서 민박촌으로 올라 코너를 돌 무렵에 자리한 평양상회에서 파는 칠보주 한 병을 사서
계곡 물소리 안주삼아 들이키다 보면 도움이 되곤 합니다.
최근에 보니 "달궁 구향주"라고 써 놓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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