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산이야기 하나 - 호식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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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식장(총)

예전 산간오지 사람들의 삶의 이면을 보여주는 다양한 문화 가운데 하나로 호식장이라고 있습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로 먼 옛날 이야기가 되었으나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멀지도 않습니다.

‘가혹한 정치는 범보다 무섭다’ 는 공자님 말씀처럼 탐관오리의 횡포와 과중한 세금, 부역 등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피해 화전을 일구던 사람들의 슬픔을 승화시킨 풍습이 호식장입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 존재여부를 놓고 이따금씩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하는 호랑이로 인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경기도 지역에서 한 달에 백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었다고 전합니다.

화전민들은 사람들이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으면 창귀가 되어 호랑이의 종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창귀는 다른 사람을 유인하여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하고 나서야 호랑이의 종에서 풀려나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창귀로 인한 또 다른 호환을 예방하는 주술적 토속신앙에서 나온 것이 호식장이죠.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면 머리와 굵은 뼈는 남겨두는 습성이 있으므로 누군가 호환을 당하면 유골을 수습하여 현장에서 화장을 하고 돌무덤을 쌓은 후 철옹성을 상징하는 시루를 덮고 창검과 같은 쇠꼬챙이를 꽂아두는 호식총이란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유골을 화장함은 사악함의 완전소멸을, 돌무덤을 쌓은 것은 신성한 지역임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시루는 철옹성임을 뜻하는 동시에 솥 위에 올라앉는 형국으로, 뚫린 구멍과 함께 하늘을 상징하여 사악함과 불결함, 모든 것을 찌고 삶아 죽이는 시루를 엎어놓으면 창귀도 그 안에서 꼼짝못하리라 여겼던 것입니다. 또한 아홉개의 시루 구멍으로 귀신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벼락을 의미하는 쇠꼬챙이를 꽂은 것입니다. 쇠꼬챙이를 꽂았던 또 다른 이유는 물레에서 가락의 용도처럼 창귀도 묘 안에서 맴돌기만 하고 나오지 말라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현재 태백산을 중심으로 160여기의 호식총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점차 허물어져 버려진 유물이 되어가고 있는 형편이랍니다.

근래 서민들의 형편은 아랑곳없이 돌아가고 있는 정치판을 보면서 이후 후세인들이 어떤 문화를 거론할지 내심 궁금해 집니다. 혹시 등산도 그런 문화의 하나로 인식되지나 않을는지요. IMF시절 이후 급격히 늘어난 등산객을 생각해 봅니다.


<태백산 당골에 남아 있는 호식총>
3 Comments
운영자 2003.08.25 23:07  
이런 운영자로 접속했네요.....
임우식 2003.08.26 08:47  
이번의 운영자는 누구래요...? 글 솜씨로 봐서 상철님인데.....ㅎㅎㅎ
한상철 2003.08.26 08:54  
오늘은 접속이 되시나 봅니다. 아직 여기저기 손봐야 하니 운영자로 접속해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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