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마눌>과 함께 보낸 쌍재

꼭대 | 2165
지난 주말 모처럼 <마눌>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토요일 새벽 일찍 서울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다소 지체되어
청학동에서 삼심봉-상불재-내원재-청학동으로 내려올 계획을 수정하여
삼신봉만 찍고 되돌아 내려왔습니다.

삼신봉 눈앞에 펼쳐진 지리주능의 파노라마를 즐기리라 올랐었는데
해발1,000 이상에 깔려있는 운무 때문에 주능은커녕
바로 눈 앞 비로드 같이 부드럽게 펼쳐져 있을 단천골 수림도 보지 못했습니다.


쌍재의 <공수>님과 저녁을 함께 하기로 하였으므로
청학동에서 옥종-단성을 거쳐 산청으로 부지런히 차를 몰아
수철리 입구에서 구사촌 아스팔트가 끝나는 곳까지 빨리도 달렸습니다.

구사촌에서부터 비포장 산간 도로를 따라 가는데
오전에 내린 비 때문에 군데군데 뻘길이 되어 차 바닥이 연신 길에 닿는 것을 감수하고
바퀴가 헛돌아 버릴라 가슴 조이며 쌍재를 찾아 올라갔었지요.

한번 간 적이 있었지만 곳곳에 고령토 광산이 길을 내어버려
예상외로 갈림길이 많아 혼란스럽더군요.

한참을 올라가고도 결국 어느 고령토 채취장 앞에서 길은 끊겨
뻘길을 되돌아 내려와야 했지요.
결국 <공수>님이 달려 나오고야 말았는데 초장부터 민폐로 시작했습니다.


쌍재를 굳이 <마눌>을 동행해서 간 이유는

왕산을 베개 삼고 먼 발치의 지리 동부능을 앞 담장으로 쳐놓은 산자락
삼면이 숲 짙은 능선에 둘러 쌓이고
앞 트인 방향을 향하여 뻗어 내린 초원 위에
나즈막한 오두막 <공수>님의 포근한 보금자리를 잊을 수 없었거니와

부산을 떠나와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지리산골에 마음을 붙이고 살아가는
<공수>님 내외분의 낙천적이고도 푸근한 마음을
<마눌>에게 보여주려 하였지요.

보다 더 솔직히 말한다면
<마눌>에게 언젠가 다가올 산골생활에 정을 붙여 주려 선택한
최적지 중의 하나가 쌍재의 <공수>님 댁이었습니다.


아무튼
함께 준비한 저녁상을 주안상 삼아 미사일 한방을 다 비우며
전기불 없는 산골의 밤이 어두워져 가는 동안
두런두런 산골 나그네들의 마음은 붉게 물들어 갔습니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참 신기한 것은
지리자락에서 마신 술은 그렇게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다음날 취한 흔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침 일찍 초원 위에 펼쳐져 있을 신선한 기운을 느껴보려 7시에 일어나
상쾌하고도 가뿐한 기운으로 미사일 자취를 말끔히 씻고
<마눌>과 함께 고등재에 올라가서
<공수>님 내외분이 다듬어 놓은 왕산-왕등재 잇는 능선길을 따라
수철리에서 오봉 마을로 왕등재 산자락을 잘라 만들어 놓은 임도까지 다녀왔습니다.

왕산에서 솟아나는 시원한 물에 멸치 국물을 내어 국수를 말아 점심을 먹고
겨울날 길이 막힐 만큼 눈이 내릴 무렵 다시 오리라
꿈 같은 전원생활을 베풀어준 <공수>님 내외분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쌍재를 떠나왔습니다.

쌍재에서 내려오는 길에
올라갈 때의 갈림길에서 헤맨 기억이 떠올라
그곳을 찾는 분들이 다시는 헤매이는 일 없이 낙원같은 초원으로 바로 갈 수 있도록
갈림길 마다 노란 표지기를 달아두었습니다.

[나 돌아갈 곳] 이라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대낮에 지리를 두고 떠나오는 것이 못내 아쉬워
구형왕릉 돌담을 쓰다듬어보고 임천강을 따라 백무동에 들러
[초가집]에서 지리산꾼들의 땀냄새를 맡아보고 귀경길에 올랐습니다.

그곳에서 <열아홉>님과 뜻밖에 반가운 해후를 하기도 했고
반대편 지리자락에서 들려오는 <칠부>님의 흥겨운 목소리를 듣기도 하였지요.


빡신 산행은 감당하지 못하는 <마눌>로서는
이틀동안 적당한 산행으로 지리자락의 진수를 맛본 즐거움에 아주 만족해 하더군요.

덕분에
당분간 큰 어려움 없이 금요일 밤 배낭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 돌아갈 곳]
그 곳으로 달려갈 야간열차를 타기 위하여.
2 Comments
뫼가람 2003.09.24 07:02  
에구! 그날 추성에 있는 차량회수 때문에 백무동 초가집을 바라보며 지나쳤는데... 아쉽습니다.
열아홉 2003.09.24 18:55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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