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대원 스님이 들려준 문수대 설화

한상철 | 1968
연휴 산행 마지막날 뜻하지 않게 7암자 산행을 마치고 수도처를 찾는 산행팀을 만나게 되어 마지막날 함께 움직였습니다.

덕분에 문수대에서 스님의 환대를 받고 지리산과 관련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역시 오랫동안 지리산에 애정을 갖고 계신 분들의 말씀은 늘 새롭습니다.

우선 문수대 암자를 4년 동안 지키고 계신 대원스님의 말씀 중 문수대 설화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 보겠습니다.

문수대는 자료에 의하면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수행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대원스님의 말씀처럼 천년을 내려온 수도처인 셈입니다.

이곳이 문수대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100여년전 두 젊은 스님이 고승이 수행한 자리에서 수행에 용맹정진하고자 동안거를 계획하였습니다. 이때 남루한 차림의 노승 한분이 함께 수행할 것을 제안하여 젊은 스님들과 함께 동안거에 들었습니다. 동안거란 겨울 석달 동안 외출을 삼가하고 한곳에서 수행에 전념하는것을 말하죠.

첫 일주일 동안은 노스님이 계속하여 조는 바람에 젊은스님이 죽대로 노스님의 잠을 깨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후 남은 기간은 젊은 스님들이 졸게 되어 노스님이 죽대로 젊은 스님의 수행을 도와주게 되었죠.

무사히 동안거를 마치고 마지막날 노스님은 홀연히 사자의 상을 하고 하늘로 사라지셨다고 합니다. 젊은 스님들이 생각하기에 문수보살께서 현신하여 젊은 제자의 수행을 도와주셨다고 하여 이후 이곳을 문수대라고 하였답니다.

출입구의 돌담은 위에서 보면 만(卍)자를 만들고 있다고 하네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어서 그런지 돌담 하나에도 의미를 담고 있는것 같습니다.

대원스님의 말씀으로는 지리산에는 반야봉을 중심으로 8대가 있는데 금강대가 제1대였다고 하나 그 흔적을 찾지 못하여 현재는 문수대가 제1대의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무허가란 이름으로 하나둘 사라져 가는 옛 수도처의 모습도 가슴아프고 토굴에서 수행에 정진하는 노력을 버리고 큰 절에서 행정일을 보는것을 우선으로 하는 현재의 불교 모습도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버려진 수도처가 무분별하게 무속의 현장으로 이해되는것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3 Comments
바우 2003.10.06 20:35  
구례의 옛 읍지인 「봉성지(鳳城誌)」에는 “신라 경덕왕(742∼764) 대에 왕의 명으로 화엄사를 크게 중수하고 8당우와 81암자를 세웠다.”고 하였으니 문수대 역시 이 암자들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문수대는 신라의 원효 성사와 의상 대사가 주석했던 곳이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승장(僧將) 청매 선사(靑梅禪師)와 이 충무공의 군사(軍師) 자운 선사(慈雲禪師)가 머물렀고 화엄사 중창주이신 벽암 선사(碧巖禪師)와 그의 제자들의 발자취가 드리워져 있다. 「구례군사(求禮郡史)」에도 고종 4년(1867)에 화엄사의 초운(楚雲) 스님이 수도하셨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토굴터로도 제법 알려져 있던 모양이다. 월간 [불광] 2002. 5월호 - 설화가 깃든 산사 기행 에서
바우 2003.10.06 20:39  
상철형님 께서 어제 들으신 대원스님의 말씀 잘 정리 해 주셨네요^^ 어제 전 그만 문수대의 기운에 휩싸여 그만 몇 마디 놓치고 말았네요... 집으로 돌아와서 문수대 관련 내용을 찾다보니 위와같은 내용이 있네요
꼭대 2003.10.06 22:32  
소중한 이야기에다 제대로 나온 문수대 사진을 얻은 뜻깊은 산행을 했군요. 하루만에 종주했다는 등의 의미없는 걷기보다는 구석구석 다양한 상상력의 헤드렌턴을 켜고 돌아다니며 가슴으로 채우는 산행이 더 어울리는 지리산행 진수의 한 모습이 아닌가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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