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가시오가피 나무가 불쏘시게로 타던 날

소나문 | 1830
개천절 연휴에 2박3일로 지리산에 다녀왔습니다.
첫날은 연하천대피소 옆의 명선봉에서 비박을 하고, 다음날 반야봉 아래에 있는 묘향대로 갔습니다. 그곳에 계신 진묵스님이 그 날 늦게 도착하신다고 연락을 받았는데 결국 그 날 오시지를 못하셨습니다.
결국 저희끼리 지내게 되었는데.
부엌에 딸린 방이 냉방이라 불을 좀 때야 할 것 같아서 제가 자원을 했지요.

불을 어떻게 피운다.
일단 신문지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장작을 패고 남은 작은 나무 부스러기로 불을 이어갔습니다.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장작을 올리기엔 불이 너무 약했고, 중간 정도의 나무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딱인 나무가 바로 옆에 있는 겁니다.
그것도 아궁이 바로 옆에 커다란 고무다라이에 적당한 크기로 잘린 나무가 가지런히 세워진 채로 가득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 그것을 불 위로 올렸죠. 불쏘시게로 말입니다.
그 다음에 장작을 올려서 멋지게 제 맡은 바 소임을 다 했습니다.
나름대로 뿌듯했죠.
덕분에 다들 따끈따끈한 방에서 잘들 잤구요.

다음날 아침.
날씨도 춥고 물이 너무 차가워 세면을 하려면 따뜻한 물이 필요할 것 같아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진해서 물을 뎁혔습니다.
불을 때는 방법은 어제와 똑 같은 방법으로 완벽하게 했지요.
커다란 가마솥에 물이 쩔쩔.

오전 11시 쯤 묘향대를 출발해서 저희는 달궁으로 하산을 해서 반선의 일출식당에서 동동주에 맛난 안주에 즐거운 뒷풀이를 했지요.

진묵스님의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를 했습니다.

[나]: 스님 부엌에 있던 고무다라이 안에 있던 나무는 모에요?
[스님]: 아 그거. 내가 약에 쓸려고 꺽어 놓은 가시오가피 나뭅니다.
[나]: ....

전 그걸로 불쏘시게로 썼다는 말을 차마 못하겠더라구요.

어쩐지 너무 가지런하게도 담아 놨다 했지. 쩝.

가시오가피 나무를 얼마나 땠냐구요?

그야 충분하게 땠죠 뭐.
4 Comments
꼭대 2003.10.09 08:20  
님이 가시오가피에 훈제 처리 되었으니 40kg 배낭 메고 지리산 누비는 괴력이 나오는군요.
임우식 2003.10.09 08:25  
소나문님...잘 들어 가셨지요..? 전 덕분에 잘 내려왔고, 정신이 정상으로 돌아와 근무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빌려주신 빗살무늬 랜턴 ok에 수리나 교환을 요청했는데 내가 구입한게 아니라 그럴수 없다고 하여 소나문님께 빌린거라 했지요...ㅎㅎㅎ모르겠네요 잘 되려나... 임의로 ...해드랜턴 아주 가볍고 작은 걸로(스파이더)보내드릴까 합니다. 고마웠습니다.
한상철 2003.10.09 18:24  
급하게 헤어져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습니다. 언제 다시 한번 뵙기를 기대합니다.
소나문 2003.10.09 22:50  
삼도봉에서 묘향대 가는 길에서 우연히 지나쳐 가시는 것을 뵈었는데. 묵묵히 걸어가시는 걸음 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한상철님이셨군요. 저 역시 지리산에서 한상철님을 만나서 영광이었습니다. 산행기 잘 보고 있습니다. 저 또한 담에 한번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임우식님 그러시면 넘 부담되는데요. 빌려드린 랜턴은 스위치 때문에 애를 먹이던 거였는데. 해드랜턴으로 주신다면 제가 넘 송구스럽습니다. 그 랜턴은 임우식님의 길을 밝혀준 걸로 제 소임을 다 한듯하네요. 담에 또 지리산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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