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다방

다시 생각해보는 화전(火田)마을

한상철 | 1929
지리산에서 산행을 하다보면 깊은 산속에서 집터의 흔적을 만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빨치산 투쟁의 상처로 여겨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지리산은 치열한 빨치산 투쟁으로 인해 많은 산촌마을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빨치산 투쟁으로 인해 사라진 마을은 일부이고, 대부분 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정부의 화전민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서 사라졌습니다. 정부에서는 68년 울진지역 공비침투 사건을 계기로 제2의 빨치산 근거지가 될 수도 있는 화전마을을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화전금지에 대한 정책을 강화하였습니다.

물론 내건 이유는 약탈경제인 화전이 산림을 황폐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일 뿐더러 홍수 산사태 가뭄 같은 자연 재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의하면 옛 산촌문화가 우리의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이 아님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화전은 신라시대부터 그 기록이 보이고 있다고 하지만 본격적으로는 조선시대에 들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부패한 관료사회의 과중한 부역과 세금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 본격적인 사회문제가 된 셈입니다.

결국 화전이 사회문제가 된 이유는 화전민에 대한 통제와 세금부과 등 사회문화적 권력관계 때문이었습니다. 때문에 화전이 발생하면서 지속적으로 화전에 대한 규제가 있었습니다.

7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화전민에 대한 강제이주가 시작되었는데 제 기억 한편에도 확연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시 면사무소 직원들이 이른 봄 밭에서 올라오는 콩이나 감자의 어린싹을 발로 짖뭉게며 윽박지르던 모습이 철도 들지 않은 어린 소년의 가슴에 깊이 자리하게 되었죠.

당시 정책입안자들은 생태계도 보호하고 도시 노동력도 확보한다는 두가지 효과를 동시에 노렸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에서는 근대화 정책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무엇보다 노동력의 확보가 관건이었을 테니까요.

최근 생태학 등이 일반화 되면서 예전의 산촌문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고 있는 글을 보았습니다. 깊은 산속에 둘러 쌓여 있다보니 논농사 보다는 밭농사가 우선되었고 그나마 뙈기밭으로 입에 풀칠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생활은 밭보다는 산에 더 의지하게 되었던 셈입니다. 산에서 약초나 송이, 더덕, 산나물 등을 얻게 되니 산이 바로 밭이었던 셈입니다.

농업정책 입안자들은 이러한 문화를 농업기술혁신을 이루지 못한 오지마을의 삶과 문화로 치부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의도적이건 그렇지 않건 그들의 농업은 자연환경이 견뎌낼 수 있는 한도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재배작물의 선택부터 선택한 작물을 가꾸는 농업기술은 자연스럽게 환경친화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생태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근대농업정책의 일환인 벼농사나 고소득 작물 위주의 농업도 종의 다양성을 해치는 행위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문화의 획일화도 결국 문화의 종 다양성을 해친 결과일지도 모르죠.

지금에 와서 우리가 옛날 사람들처럼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저 옛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지혜를 역사적으로 인류학적으로 탐구해 그들의 삶이 얼마나 풍부했던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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