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칼럼
왕시루봉의 서정
왕시루봉의 서정
다시 그리운 지리산. 나는 또 지리산에 간다. 지리산에서 가장 긴 능선, 억새가 물결처럼 일렁이는 곳, 외국인 선교사의 별장,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 황홀한 그림 같은 섬진강의 모습, 금환낙지의 명당을 품고 있는 곳, 부드럽고 감미로운 산길, 등의 이미지가 떠올려지는 ‘왕시루봉’으로 간다.
여명의 노고단
가을 섬진강을 좌측에 끼고 화개동천, 피아골 입구를 지나 성삼재로 향한다. 새벽도로는 한적해서 좋다. 화엄사 근처에서 짙은 안개지대를 힘겹게 통과하고 굽이굽이 지리산 관통도로를 돌고 돌아 눈에 익은 ‘성삼재’ 휴게소에 차를 멈춘다.
날은 이미 밝았고 전국에서 산행인파가 모여들고 있다. 기온은 초겨울을 연상하듯 몸을 움츠리게 한다. 하늘은 맑다. 숙련된 동작으로 배낭을 챙겨 노고단으로 향한다. 사진속의 정경과는 달리 올해는 단풍의 색깔이 곱지 않다. 어둡고 칙칙하다. 화려하고 고운 단풍의 자태를 찾기란 어렵다. 지난여름 태풍이, 그 싱싱한 잎들에게 모조리 생채기를 내었을 것인즉, 상처 난 잎에서 아름답고 고운 단풍의 모습을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잘못된 생각일 것이다.
‘노고단 산장’은 등산객들로 비좁다. 대체 이들은 언제 어디서 왔단 말인가. 산장에서 밤을 지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제 밤부터 잠도 포기하고 달려온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 희생 없이는 지리산행이 불가능하니까.
왕시루봉은 노고단에서 발원하여 전남 구례군 토지면까지 이어지는 장장 16Km의 기나긴 능선이다. 여덟시에 ‘돼지평전’ 입구에서 초입을 찾는다. 평소에 눈도장 찍어두었던 수풀을 헤치고 들어간다. 길은 희미하지만 정확하다. 이제 이 길만 놓치지 않는다면, 왕시루봉 능선을 답파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도 쉰다. 울렁이는 마음을 애써 눌러본다.
파란 산죽과 노란 잎의 잡목이 어우러진 데다 험한 돌길이다. 표지기도 간간이 보인다. 20여분쯤 우측으로 붙어 비스듬히 내려가니 능선에 붙는다.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물 한 모금 마시며 윗도리를 벗어 배낭 속에 넣는다. 최소한 7시간의 산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참나무와 여러 나무들로 어울린 능선길이 부드럽다. 푹신한 낙엽으로 뒤덮인 오솔길의 낭만이 서걱인다. 이렇게 곱고 섬세한 능선을 지리산은 또 감추어 놓았구나. 그 수많은 능선과 계곡이 제각기 다른 모습과 개성을 가지고 있음에 놀란다.
낭만이 서걱이는 능선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어 내려가는데 지척에서 또 하나의 산봉우리인 ‘질등’이 마주한다. 그 사이로 고갯마루 하나를 걸쳐 놓았는데, 이름도 아름다운 ‘질매재’다. 질매재 부터는 능선 길을 따라 오른다. 가을의 서정이 풋풋하다. 좌측 피아골 건너 ‘불무장등’이 우람하다. 지난여름 저 능선을 오르며 그 깊고 고요한 침묵의 원시림 속에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며 사색에 젖었던가. 30분쯤 오르자 확 트인 전망이 조망되기 시작한다. 지리산 주능선이 수림 사이로 얼핏 스친다. 뒤돌아보니 ‘종석대’와 ‘노고단’이 우뚝하다.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을 내려다보는 것 같다 해서 이름 붙여진 ‘노루목’의 모습도 노루처럼 선명하다.
지리산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신비롭고 당당하기만 하던 반야봉이 여기서만은 아니다. 보는 측면에 따라서 이렇게도 달라진 산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매사가 완벽하다 해도 어떤 부분에서는 부끄러운 면도 있을 것이다. 나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애써 반야봉에 비유하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하지만 반야봉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지리산 제2의 봉우리인 것이다.
질등에서 ‘문바우등’을 우회해 싸리샘 까지의 한 시간 동안 걷는 길은 가파르고 좁다. 오르락내리락 기복이 심하고 초목이 무성하다. 듬성듬성 바위들이 널려 있어 긴장감도 있다. 싸리샘 도착 직전, 오른쪽으로 넓게 펼쳐지고 있는 다래넝쿨 숲이 인상적이다.
‘싸리샘’, 이름이 좋아 샘이지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수량도, 관리도 되지 않고 있다. 문득 싸리샘 위 능선을 바라보니 하얀 억새의 무리가 푸른 하늘 아래서 흔들리고 있다. 지리산의 가을이 절정에 머물고 있다. 샘을 돌아 내려가니 바로 앞에 엄청나게 큰 산 하나가 버티고 서있다. 왕시루봉 이다. 그 밑에 뚝 떨어진 잘록한 능선은 느진목재가 된다.
기나긴 왕시루봉 능선에서 고도가 가장 낮은 이 재는 좌측 ‘피아골’ 의 ‘연곡사’와, 우측 ‘문수골’ 너머 ‘화엄사’사이 가장 가까운 길로 옛날에는 양 사찰간 스님들이 서로 넘나들었던 길이다. 낭만이 깃들인 멋스러운 고개다.
태산처럼 막아서 버티고 서있는 정상까지는 매우 힘든 여정이다. 서두르지 않고 비탈길을 오른다. 땀이 흥건히 밴다. 좌측으로는 병풍 같은 바위가 열병식 하듯 도열해 있고 분위기는 습하다. 하지만 산행의 묘미란 이렇게 한 발 한 발 힘겹게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삶의 아픔까지도 밟을 수 있어 오히려 좋다.
느진목재에서 약 한 시간 가까이 오르자, 작은 산죽 사이로 난 길이 정겹다. 경사가 매우 심하다. 갑자기 시계가 확 트이며 길은 동서 두 갈래로 나뉜다. 잠깐 망설이다 서쪽으로 향한다. 일망무제의 전망대다. 현란한 풍광이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든다. 그저 멍하니, 백 리도 넘는 지리능선을 하염없이 바라만 볼뿐이다.
신의 작품, 섬진강의 풍광
종석대와 노고단으로 시작되는 주능선이 멀리 촛대봉, 천왕봉, 중봉, 하봉 능선까지 이어진다. 직선이 아니라 부드럽고 둥근 모양으로 지리산 전체를 감싸 안고 있는 형세다. 특히 멀리 천왕봉과 촛대봉의 조화가 절묘하다. 천왕봉이 지붕이라면, 제석봉과 촛대봉은 기둥이고 그 앞에 펼쳐진 세석평전은 마당이다. 한 가정이 오순도순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경이롭고 신비로운 형상이다.
주 능뿐만이 아니다. 그 사이사이로 부채 살처럼 펼쳐진 능선들이 제각기 개성적인 자태를 뽐낸다. 그 중에서도 바로 앞 불무장등 뒤로 장쾌하게 누워있는 남부능선이 지리산의 중심기둥답게 가장 강렬하다. 불무장등의 통꼭봉 밑 농평마을은 그 속살을 전부 드러내 놓았다. 바로 밑 피아골은 천인단애, 수천수만 길의 낭떠러지로 가물거린다.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로 기억하고 싶다.
해발 1,243m의 ‘왕시루봉’ 정상. 표지석도 없이 잡목 속에 묻힌 봉우리는 언뜻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누군가가 주변 나뭇가지에 ‘왕시루봉’이란 표시를 해 놓지 않았더라면 이곳이 정상인 줄도 모를 일이다. 상상하던 모습과는 조금 실망스럽다. 좁은 정상에서 점심을 먹으며 한 시간 가까이 머문다.
멀리 섬진강 건너 백운산을 바라보며 부드럽고 기나긴 능선이 진득하게 누워있다. 빤히 나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간다. 하얀 물결의 억새가 바람에 출렁인다. 저 넓고 높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짙푸른 가을 하늘위로 태양은 따스하고 현란하다. 이렇게 좋은 날을 만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능선을 내려가면서 보는 섬진강은 걸출하다. 누가 ‘왕의 강’이라 불렀다고 했던가. 백운산, 도솔봉, 형제봉 능선을 병풍삼아 굽이굽이 돌아 내려가는 섬진강의 자태가 구례, 하동의 황금들판과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위대한 신의 섭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빼어남이다. 저렇게 영원의 세월을 흐르고 있으리라.
주변은 억새가 물결을 이루는 평원이다. 억새는 무르익어 절정에서 온 몸을 떤다. 바야흐로 10월19일의 가을이 터질 듯이 익었다.
나는 결코 불행한 사람이 아니다. 삶의 과정에서 이유 없는 억울함을 당할지라도, 현실을 향해 분노가 치솟아 오를지라도, 가슴이 너무 아파 통곡을 하고 싶을지라도, 지리산이 주는 이 위안과 은혜로움으로 스스로를 달래고, 배려하며 살아야할 일이다
.
아차, 이 근처 어디쯤 외국인 선교사들의 별장이 있을 것인데 지나쳤는가 보다. 헬기장에서 뒤돌아 조금 올라가니 푸른 잣나무 밑으로 노란 십자가 이정표가 선명하다. 서편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니 인적이 느껴지고 진녹색 둥근 지붕의 군용막사 같은 건물이 숲 속에서 나타난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곳에 작은 계류가 흐르고, 하얀 물줄기가 콸콸 쏟아지는 모습이 경이롭기만 하다. 출입구에는 “예배당 관리자, (사)지리산 기독교 선교유적지 보존연합. ccc 한국 대학생 선교회”라는 사각형 표찰을 붙여놓았다. 조그만 둔덕 하나 넘어가니 별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 네다섯 동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고즈넉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 앞에서 서서히 폐허로 변해버릴 것만 같다.
원래 이 별장은 1920년대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등 선교사들이 노고단에 건립하였으나 한국전쟁 중에 폭격을 당하자, 지리산의 시원함을 잊지 못하는 이들은 이곳 ‘왕시루봉’을 그 대안으로 택해서 옮겨온 것이다. 수영장 등의 위락시설물들이 한때의 호화로웠음을 침묵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시 능선으로 돌아 나온다. 아무리 보아도, 완벽에 가까운 풍광이다. 굳이 흠을 잡자면 굽이치며 휘돌아 가는 섬진강이 거센 강물의 모습이 아니라 한 폭의 그림 같다는 것이다. 그 옛날 해방공간에서 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백운산과 지리산을 목숨 걸고 넘나들었을 빨치산들이 여기서는 오히려 낭만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유달리 잣나무가 많다. 푸른 기상으로 쭉쭉 자란 나무에는 탐스러운 열매가 풍성하게 달려 있다. 30여분쯤 내려오니 전망은 사라지고 숲이 무성하다. 길은 자꾸만 좋아진다. 동네 뒷산 같이 편안하다. 산세로 보아서 아직도 두 시간 정도는 더 걸어야 할 것 같다. 오히려 이 길이 끝나버리면 허전해서 어쩔까 싶을 정도다. 부드럽고 완곡한 내리막이다.
15시 20분, 산길이 끝나고 포장도로가 맞이한다. 표지리본 하나 없는 입구 바위에는 노란 글씨로 ‘王’자를 새겨 놓았다. 외국인 별장을 오르는 사람들을 위한 이정표인 것 같다. 십분 후 ‘구만교’를 건너 토지면 사무소에 도착하며 아홉 시간이 넘는 산행을 접는다.
가을의 절정에서, 지리산의 모든 아름다움과 위안을, 이렇게 종일토록, 깊이,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왜 갑자기, 이다지도 쓸쓸함이, 다시 울컥, 솟구치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