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칼럼

지리산권 개발을 잠시 내려놓자 /이상윤

지리통신 | 1744

[아침숲길] 지리산권 개발을 잠시 내려놓자 /이상윤

 

 

 

사단법인 숲길 상임이사 / 이 상 윤

 

 

 

 

달마다 끝 주 금요일, 토요일은 지리산둘레길 마을 순례의 날이다. 지리산에 사는 어르신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소중한 자리이다. 종교 간 화해와 소통을 실천하는 '지리산종교연대'도 그 자리에 함께한다. 길이 열리고 사람들이 오가며 생기는 여러 문제를 안고 끙끙거리다 마을에 들어가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뜻에서 시작되었다. 


이야기마당에 필요한 장을 봐 저문 시간, 마을회관에 도착하면 화사한 얼굴로 우리를 반기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정겹다. 마을마다 드문드문 젊은 귀농·귀촌자들이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으며, 이야기마당에 나와 건의사항을 조리 있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아준다. 이렇게 마을의 다양한 삶이 엮어가는 이야기마당이 한차례 펼쳐지고, 다음 날 오전에는 '생명평화 지리산둘레길 ○○마을' '마을 순례단 일동'이 새겨진 마을 서각 현판을 걸고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을생명평화 기도를 올린다. 이 현판은 미리 이장님께 손글씨로 마을이름을 써 주실 것을 부탁드려 새겨넣은 것이기에 더 정답게 느껴진다. 

7월 마을 순례지는 지리산 댐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경남 함양군 동강마을이다. 동강마을은 댐 건설 예정 아랫마을이고 순례를 하며 지나게 될 다른 마을들도 댐 건설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지리산 댐은 1984년 기본계획이 만들어졌으며, 2001년 12월 '댐 건설 장기계획' 때에는 제외되었다. 2007년 건교부는 홍수 조절, 용수 공급, 지자체의 지속적 요구 등을 이유로 지리산 댐을 댐 건설 장기계획에 포함시킨다. 

낙동강이 살아야 지리산이 산다. 2000년 전국 189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지리산국민행동'은 지리산 댐 건설의 연원인 낙동강 오염대책 수립을 요구하고 낙동강을 순례했다. 지리산과 낙동강은 떨어져 있지 않다는 평범한 진실을 알리고, 낙동강 수질 개선을 요구했지만 결국 문제의 핵심을 피해가는 4대강 사업으로 귀착되었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강을 살리겠다는 정책을 입안하고 거기에 발맞춰 춤춘 사람들이 지금 지방정부의 수장이 돼 물 나누기, 지역발전을 핑계로 지리산 댐을 만들어야 한다고 떠들고 있다. 지리산 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생업을 뒤로 하고 수자원공사로 문화재청으로 부지런히 달려간 주민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지역발전을 위한 실적이라도 되는 양 기초단체장들은 댐 건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지리산은 지금 장마 기간이다. 술추렴하기 안성맞춤이다. 어쩌면 무더운 여름날 농사일 한숨 돌리며 쉬라는 하늘의 계시가 장마인지도 모르겠다. 반짝 볕 드는 날,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밭이랑을 매다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원두막이나 정자에 모여 막걸리 한 잔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리산 댐 이야기가 보태진다. 하늘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고 비오면 비를 피하고, 가뭄이 들면 가뭄 든 대로 제 몸 놀려 입에 풀칠하면서 자식 살뜰하게 키워 도시로 내보냈다. 살 만한 자식들이 도시로 오라고 한다지만 내 몸 비비고 살았던 곳보다 좋은 데가 있을까. 내 난 곳에서 여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바람이, 소의를 저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치부되는 현실이 지리산 댐 예정지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아픔이자 서글픔이다. 오죽하면 제 목숨을 끊어 버릴까. 

지난 6월, 지리산 주변지역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내세운 대표적인 공약이 지리산 케이블카 건설, 지리산 댐 건설이다. 대규모 국책사업을 유치해 지역 경기를 살리고 '관광사업'으로 돈을 벌겠단다. 지방정부 초기부터 오랫동안 되풀이되는 재탕 삼탕 베끼기 공약이다. 이런저런 개발사업으로 편의시설은 넘치고 국가기간망 확충으로 도로는 넓어졌고 접근성도 좋아졌다. 이만큼 발전했으면 지리산에 붙박이로 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야 한다. 제 고향을 지키며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져 있어야 한다. 엄청난 돈을 들인 도로를 따라 관광객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주머니를 열어 지역농산물을 사고 몇 날 며칠을 지리산 이곳저곳을 다니며 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과연 현실은 어떤가. 관광단지 위락시설은 준공도 못한 상태로 흉물이 되었고 그나마 반짝 경기를 노린 바가지 상혼으로 인심만 사나워지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지리산권 시·군의 인구 감소는 되레 지역발전을 내세운 그동안 치적의 결과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상상력이 필요하다. 한 마을이 마을 숲 하나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곳, 주민들의 합의로 온천을 고갈시키지 않고 지속가능한 온천을 운영하는 마을은 없을까.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 주민들 스스로 삶의 자긍심을 높이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생태적으로 안정된 곳을 잘 지키고 보존하는 일이 세계적인 담론이자 행동으로 이어지는 이때, 지리산의 개발 계획들을 잘 살펴 다음 세대에게 부끄러운 결정은 내리지 않아야 한다.

 
-7월 25일자 국제신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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