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명소
진경산수(眞景山水)시대를 지리산에 끌어들인 [불일폭포]
선현들이 명승지를 찾아 다니며 아름다움을 표현하여 남긴 시나
그림을 보면 금강산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지리산은 그리 많지 않다.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은 금강산에 비할 바는 못 되는 이유이지만, 선비들의 유산기를 통하여 옛사람들이 남긴 자취를 되새겨 보기로는 지리산이 한 수 위다.
다행스럽게도, 17-18세기에
걸쳐 겸재 <정선>을 필두로 문화적 르네상스를
연 진경산수도(眞景山水圖)에 지리산의 명승지 한 곳이 담겨
있으니 바로 불일폭포이다.
그 이전까지 중국화가들의 도첩을 보면서 모방하거나 혹은 상상한 그림을 그리던 관념산수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의 실제 산천을 직접 가서 답사를 하고 그곳에서 풍겨 나오는 이미지를 소재로 그린 그림이 진경산수도다.
물론, <겸재> 이전의 시대에도 사물을 실물 그대로 그린 실경산수(實景山水) 혹은 사경산수(寫景山水)가
있었지만, 진경산수는 실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다가 작가의 감흥을 더하여 그린 그림이라 르네상스로
일컬어지는 독특한 화풍을 일구어 냈던 것이다.
*1733년 <겸재>가
경북 청하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영남 일대의 명승지를 둘러보며 그린 그림을 묶은 것으로 전하는 [교남명승첩(嶠南名勝帖)]에 수록되어 있는 [불일암폭포]
그러나, [교남명승첩]은 <겸재>의
작품집이 아니라 그의 손자인 <정황>의 작품집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의 의견이 많은데, <정황> 역시 <겸재>의 화풍을 이어받아 분간하기 어려운 진경산수도들이라
이견이 분분한 것이리라.
불일암폭포를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의 <최완수>실장이 불일폭포를 직접 보면서 “불일암폭포가 얼마나 핍진(逼眞: 실물과
아주 비슷하다)한 지를 실감하였다.” 고 감탄할 만큼 진경산수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아쉽게도 위에 올려진 그림은<최완수>선생의 어느 책의 한 귀퉁이에 흑백으로 실린 것을 스캔하다 보니 진경산수의
감흥이 제대로 오지 않는다.
그래서, 제대로
된 그림을 구하기 위하여 온 도서관을 뒤져도 실린 곳에 없어 [간송미술관]에 전화를 했더니 공개된 적이 없고 당장 공개할 계획도 없다고 한다.
지리산꾼으로서는 간절한 국보급 자료를 구할 수도 없다니 [간송미술관]이 비난 받고 있듯 문화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불쾌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하여<겸재>의 또 다른 명품 폭포 그림인 [박연폭]을 보면
<겸재>의 진경산수는 실경을 즉물적으로 사생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적으로 재해석한 미학에 있다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의 대표작이다. (<유홍준>교수의 평)
*<겸재>의 진경산수도 대표 걸작으로 꼽히는 금강전도 - 진경산수가 무엇을 말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그림이다.
*진경산수시대 이전의 관념산수의 대표작인 15세기 <안견>의 [몽유도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