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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편액] 1. 편액이란 무엇인가

꼭대 | 3205

[지리산의 편액] – 1. 편액이란 무엇인가

 

1.     편액이란 무엇인가

 

우리나라 궁궐이나 사찰과 서원 등 한옥의 전각에는 글을 써서 붙여놓은 판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을 통틀어 현판(懸板)이라 한다.

 

현판도 용도와 부착 장소에 따라 크게 나누면 다음 세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1)     편액(扁額)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서()를 뜻하는 편()과 이마 액(), 즉 전각의 이마에 해당되는 건물의 천장과 문 사이에 건물의 명칭을 써서 달아놓은 판을 말한다.

        편액을 통하여 그 건물의 명칭과 의미와 성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 횡으로 적혀 있어 아래의 주련에 대비하여 횡액이라 하기도 한다.

 

1 화엄사 대웅전 편액.JPG

*화엄사 대웅전 편액 (대웅전의 처마와 문 사이에 걸려 있다.)

 

2)     주련(柱聯)

건물의 기둥에 종으로 글씨를 써서 달아놓은 판을 말한다.

궁궐이나 서원 등 유교적 영향을 받은 건물들에는 유교의 경전이나 유학자들의 명언 들을 기록해 놓았으며, 사찰에는 불경이나 선사들의 법문들을 적어 놓았다.

 

그렇다 보니, 주련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도 통달해야 할 뿐 아니라 유교나 불교의 경전 등을 이해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일반인들이 감상을 위하여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2 쌍계사명부전 주련.JPG

*쌍계사 명부전의 주련들 (각 기둥에 횡으로 불경에 나오는 글을 써서 달아 놓았다.)

 

3)누정기(樓亭記)와 시문

누각(樓閣)이나 정자(亭子) 내부에 누각을 방문하여 감회를 기록하거나 상량문 등을 기록하여 달아 놓은 판을 말한다.

 

누정기는 한문으로 작성되어 있어 일반인이 접근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3 구례 운흥정 누정기.JPG

*구례 운흥정 내부에 걸려 있는 누정기들

 

 

이상과 같이 살펴본 대로, 일반인이 사찰을 답사하면서 간결한 한자로 이루어져 쉽게 뜻과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글씨도 큼지막한 대자(大字)로 써 놓아 서예에 대한 세밀한 안목이 없더라도 비교적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편액에 한정하여 알아 보기로 한다.

 

 

2.     편액의 역사

 

2008년 황망하게 남대문이 불타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 와중에 불행 중 다행이라고 숭례문 편액이 떨어져 전소를 피하여 복구할 수 있게 되었다.

건물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편액이 그나마 보수를 거쳐 옛 모습 그대로 달려지게 되어 화재에도 불구하고 남대문의 위용이 손색없이 지켜지게 된 것이다.

 

 

 4 숭례문 편액.JPG

* 남대문에 걸려 있는 숭례문 편액 (화재 때 떨어지면서 편액의 태두리 등에 약간의 손상이 있었으나 깨긋하게 복구하여 다시 달아 놓았다.)

  (남대문에 걸려 있는 1474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하는 [崇禮門(숭례문)] 편액을 쓴 사람은 양녕대군, 안평대군, 신장 등 아직까지 학설이 분분하다.) 

 

 

편액은 우리나라 신라시대부터 고궁이나 사찰에 달았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고궁과 사찰이 대부분 목조건물로 만들어져 주기적인 전란과 화재로 소실을 거듭하다 보니 건물에 달아 놓은 편액도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편액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신라 시대 명필 김생(金生:711~791)의 필체라고 전하는  충남 마곡사의 [大雄寶殿(대웅보전)]이 있으나 오늘날까지 1300년동안 마곡사의 화재나 중창의 역사를 고려한다면 지금 달려있는 편액이 김생이 직접 쓴 편액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다만, 김생의 서체로 복각을 거듭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5 마곡사 대웅보전 편액.JPG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편액 (신라 시대 명필 김생의 필체로 전한다.)

 

좀 더 근거 있는 오래된 편액으로 경북 영주의 부석사에 있는 [無量壽殿(무량수전)] 편액이 전해지고 있는데, 고려 공민왕(1330~1374)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안동지역으로 피난 와서 머무는 동안 썼다고 전한다.

부석사의 무량수전 이외에도 안동지역에 공민왕의 글씨로 전하는 편액이 몇점 있는 것을 보면 설득력 있는 설이다.

 

6 부석사 무량수전 편액.JPG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편액 (고려 공민왕의 글씨로 전한다.)

 

 

그런데, 지난 6월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편액으로 공인된 편액을 문화재로 지정하였다는 뉴스가 알려졌다.

과학적인 연대측정방법인 방사성탄소연대 측정법으로 측정된 것 중에서는 1474년의 숭례문 편액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2011년 제주도 관아의 정자였던 홍화각의 편액 [弘化閣]을 측정한 결과 숭레문 보다 30년 앞선 143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2011년도에 측정된 결과를 가지고 2년 동안 검토한 후 지난 6월에 공식적으로 문화재로 공인하게 된 것이다.

 

7 제주 홍화각 편액.jpg

*제주 삼성혈에 있는 홍화각 편액

 

 

3.     편액의 구성

 

 

8 화계사 편액.jpg

*서울 화계사 편액 (<해영>님 사진)

 (대원군의 글씨, 대원군은 서화에 능하여 이 밖에도 서울의 흥천사, 남양주 흥국사, 양산 통도사를 비롯하여 전국의 많은 사찰에 편액이 전해지고 있다.)

 

 

일전에 <해영>님이 올려준 서울 화계사 걸린 대원군의 [華溪寺] 편액을 참고로 편액의 구성를 간략하게 알아 보자.

 

편액의 글씨 우측 상부에 글 쓴 이의 호나 혹은 상징을 찍어 놓은 것을 두인(頭印)이라 한다.

편액의 두인은 임금이나 왕세자 만이 사용할 수 있는데 대원군의 편액이기에 두인을 찍은 것이다.

 

통상은 좌측 하단에 글을 쓴 년도나 글 쓴 작가의 호나 이름을 글로 써거나 도장으로 새겨 찍어 놓는데 통틀어 낙관(落款) 혹은 관지(款識)라고 한다.

관지를 통해서 글 쓴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있다.

 

위 사진의 화계사 편액에는 낙관으로 각각 대원군의 호인 [石坡] [大院君章] 두개의 도장이 찍혀 있다.

통상 대원군은 상징적으로 나뭇잎이 새겨진 두인을 사용하는데 위의 편액에 사용한 두인은 알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간송미술관 <최완수>실장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편액에 두인을 말 할 것도 없고 관지도 임금이나 왕세자 급이 되어야 새길 수 있는 것이라고 그 외의 사람이 두인이나 관지를 남긴 편액을 보면 예를 지키지 않았다고 엄히 나무라곤 하는데, 이와 같은 원칙도 조선 중기 이후에는 무디어졌는지 많은 편액에서 관지를 볼 수 있다.

 

서예의 대가들은 대개 필체의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필체를 보고 누가 쓴 편액인지 짐작할 수 있긴 하지만 관지가 없다면 글씨의 모방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기록이 없는 한 누구의 작품인지 확정하기는 쉽지 않다.

 

 

4.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편액

 

크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 예술품에 있어 크다는 것은 우리나라 가장 큰 석조보살상인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에서 보듯 자칫 짜임새 없이 조형미를 잃을 수 있기는 하지만 최대인 화엄사 석등과 고달사지 승탑과 같이 아름다운 조형미를 자랑하는 문화재도 많다.

 

9 풍폐지관 편액.JPG  

*전주객사에 달려 있는 풍패지관 편액 (편액 아래 앉아 있는 사람의 키와 비교를 해보면 편액의 글자가 얼마나 큰 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편액은 전북 전주에 있는 전주객사에 달린 [豊沛之館(풍패지관 풍패는 중국 한고조인 유방의 고향으로서, 전주가 조선 왕조의 뿌리가 전주임을 뜻하고 있다.)] 편액인데,

글자 하나의 높이가 1.8미터를 넘는 큰 글씨이지만 결코 흐트러짐 없이 대자(大字)의 호방함이 가득하다.

 

이 현판의 글씨는 특이하게도 명나라 사신이었던 주지번(朱之蕃)1606년 사신으로 조선에 와서 남긴 글씨로도 유명한데, 그 배경이 되는 일화 또한 흥미 있는 역사의 한 토막이라 잠시 전한다.

 

1593년 임진왜란에 원군을 보낸 명나라에게 고마움을 표하고자 송강 정철이 이끄는 사신단이 명나라로 향했고, 이때 표옹 송영구가 합류했다.

북경에 머물던 숙소에서 표옹은 숙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어려운 남화진경을 외는 한 청년을 마주하게 된다. 표옹은 그 청년이 과거를 보기 위해 북경에 왔는데 몇 차례 낙방하여 귀향할 여비조차 없어 이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고 있다는 사정을 듣고 기특하게 여겨 과거시 답안을 작성하는 요령과 돈 서책 등을 주며 도와주었다.

그 뒤, 그 청년 주지번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1606년 명나라의 사신단 최고 책임자로 조선을 방문한 기회를 이용하여 포옹을 은혜를 잊지 않고 수소문하여 익산에 거주하고 있던 표옹을 찾아가는 길에 전주의 객사에 머물면서 현판을 쓰게 된 것이다.

 

친한파가 된 주지번은 이외에도 경포대의 [第一江山] 등 우리나라에 많은 편액을 남겼다.

 

 

5.     지리산 사찰의 편액

 

편액은 전각의 얼굴이며 백미이다.

따라서, 전각을 새로 짓거나 중건할 때 건축을 주도한 사람은 당대 최고의 글씨를 받아 걸어 놓고 싶어 했을 것이다.

편액을 통해서 건축을 주도한 창건주 혹은 중창주의 정치적 역량을 엿볼 수 있으며 당대 최고의 서예의 필력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편액은 마치 건물의 눈과도 같아서 눈이 없는 얼굴을 상상할 수 없듯 아름다운 눈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균형 잡힌 얼굴을 갖춘 전각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각종 전란을 겪으면서 많은 전각과 더불어 편액들이 불타고 없어지긴 했지만 답사길에 나서 조금만 관심을 가져보면 복각을 하거나 오늘날까지 당대 명필들의 글씨가 품어내는 그윽한 문화의 향기를 느껴보기 더 없이 좋다.

 

 

문경 천추산 자락 작은 시골마을 구석에 무너져 가는 정각이 하나 있다. 사람이 떠난 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건물은 몰락했는데 뜻밖에도 간신히 매달려 있는 편액 두점이 낯선 답사객에게 이곳에 살았던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사람을 만나는 즐거움, 답사의 즐거움이다.

 

 

CIMG5609.JPG

*문경 천산정 (사람이 떠난지 오래인 건물을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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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정에 걸려 있는 해강 김규진의 [天山亭(천산정)]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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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정에 걸려 있는 성당 김돈희 글씨의 [芝艸珢玕(지초은간)] 편액

 

해강과 성당은 1920년대 서예계를 이끌었던 당대 최고 명필들인데, 이들의 글씨는 후에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1 Comments
인제 2013.08.28 09:25  



유령(?)으로만 남기엔 예의가 아닌 듯 하군요.제가 살고 있는 전주의 객사에 있는 커다란 편액도 무심히 지나쳤는데 유심히 살펴봐야 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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