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명소

<우천>선생 움막터

꼭대 | 4095
智異山을 유구한 역사 속에서 본다면
오랜 세월 智異山 자락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수도자와 은둔자의 피안彼岸) 이었습니다.

이러던 智異山에 현대 개념의 등산이 도입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고작 50여년 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智異山 등산의 개척기에 전설과도 같이 중요한 분이
바로 우천 <허만수> 선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智異山꾼들에게 추앙의 대상이 되시는 분입니다.


*<이종길>선생님의 [智異山]에 실려있는 <우천>선생 사진


<우천>선생에 관한 이야기는
[智異山 사람들]게시판에 <우듬지>형님께서 정리해 두신 것을 비롯하여
智異山 관련의 많은 책에서 소개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을 듯합니다.

<우천>선생에 관하여 智異山꾼들의 모임인 [지리99]에서 해야 할 일이라면

첫째, 산재해 있는 <우천>선생의 이야기를 집대성할 필요가 있으며
둘째, <우천>선생이 智異山에 들어와 살며 智異山꾼들의 보호자가 되어주었던 기념비 적인 움막터를 보존하는 일이며
셋째, 그 분이 智異山에 영원히 은둔했던 영면(永眠)지를 찾아내어 기념하는 일입니다.


이 중에서 첫번째 일은 현재 진행하고있으나
많은 분들로부터 증언을 청취하고 협조를 구해야 할 일이므로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좀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할 듯합니다.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두번째인 [우천 움막터]를 기념하는 일인데 현재 구체적으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최화수>선생님의 [智異山365일]에 실려있는 1961년도 [우천 움막] 사진


우선은 智異山꾼들이 그 곳을 방문하여
智異山 등산의 개척기에 智異山 속에 살던 그 분을 추모하는 일입니다.

움막터의 위치는
지금까지 [음양수골]로 불렸던 음양수 샘에서 북해도교로 내려가는 골짝길에 있습니다.

음양수 샘에서 남부능선을 따라 백여미터 진행하면 좌측으로 뚜렷한 산길이 열려있는데
이 샛길로 접어 들어 수십미터 진행하면 좌측에 돌제단이 쌓여있는 바위가 보이고
이곳을 지나 조금 내려서면 우측으로 움막터가 있습니다.

움막터에 표시를 해 두었으며
움막터에서 산길은 직각으로 좌로 꺾여 얼마가지 않아 계곡과 만납니다.

지금은 산죽으로 뒤덮여 있어 이곳이 움막터 였는지 언뜻 보아 알 수 없지만
석축의 흔적이 남아있어 60년대 <우천>선생의 움막을 떠올리기엔 충분합니다.




*현재 산죽으로 뒤덮여 있는 움막터


현재 이곳을 어떻게 기념할 것인지 여러모로 강구 중에 있습니다.
진행 경과를 별도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천>선생에 관한 마지막 일인 영면지를 찾아내어 추모하는 일도 착수했으며
올해의 숙원사업으로 진행해 보겠습니다.


<우천>선생에 관한 자료나 이야기를 알고 계시는 분은
지리다방에 올려주시기 부탁 드립니다.
2 Comments
쌍칼 2005.05.16 15:52  
그곳을 지나면서 단순한 집터나 아님 옛 청학동(?) 사람들의 한 가옥 정도로 생각했는데~ 우천 선생의 움막터 였다니 ? 다시 갈때는 제라도 한번 올리고 와야 겠네요~~
산유화 2005.05.17 08:06  
저 움막이 우찌 없어졌을까요? 그리 긴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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