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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화산12곡] 제2곡 : 연주탄

엉겅퀴 | 787

  

제2곡 : 연주탄(聯珠彈)

 

소[소 담潭]가 있으면 여울[여울 탄灘]이 있다. 내가 본 것은 연속으로 몇 개의 여울이 이어져 쉴 새 없이 하얗게 부서지며 흐르는 광경이었다. 흰 눈이 흩날리는 듯, 이무기가 빗줄기를 뿜어내는 듯, 수만 개의 하얀 구슬이 서로 부딪치며 튕겨 나오는 듯하였다.

낮은 층계가 진 소폭(小瀑) 같은 계곡의 흐름이 4차례나 연속되어 있다. 그것도 약 100여m 이내에. 첫번째 세번째는 수수하고, 두번째 네번째는 보다 화려한 편이다. 특히 2번째 흐름 곁의 바위는 산의 형상을 오밀조밀하게 축소해 빚어 놓은 수석 같다. 물결 문양도 선명하다.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바위를 만나 헤어졌던 물은 아래에서 다시 만나고 좁은 여울목에서 엉켰던 물은 어느덧 느슨하게 풀어지곤 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또 바닥에 깔린 돌도, 곁에 놓인 바위도 둥그스럼하다. 따라서 거기를 미끄러지는 물결도 다 휘어 흐른다. 굽이쳐 흐르는 물은 서로 부딪치고 어우러지면서 물방울을 뿜어낸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눈과 귀가 심심하지 않다.

탁한 물이 넘치는 여름이나 물이 줄어드는 겨울보다는 봄‧가을이 구경하기에 훨씬 낫다. 봄에는 물이 적은 겨울 동안 낀 물이끼가 바위에 남아 있어, 큰물이 지고 난 가을이 그중 제일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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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름을 붙여야 어울릴지 고민되었다. 그 모양으로 볼 때는 은하수가 흘러가는 은하탄(銀河灘), 흰 눈을 뿜어내는 분설뢰(噴雪瀨), 흰 명주를 펼쳐놓은 듯한 백련계(白練溪), 기묘한 수석 사이로 흐르는 수석천(壽石川) 등 그 모두가 그럴 듯하였다. 물 흐르는 소리로는 물이 많을 때는 우르릉거리는 폭포수 같다고 굉폭뢰(轟瀑瀨), 그 다음으로는 세찬 소나기 쏟아지는 취성탄(驟聲灘), 물이 적을 때는 비파나 거문고 소리인 듯 비파계(琵琶溪)‧청금탄(聽琴灘)‧탄금뢰(彈琴瀨)라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많은 후보 중에서 최종 낙착은 연주탄(聯珠彈)으로 하였다. 연주(聯珠)는 ‘구슬을 꿰어 놓은 것’을 말하며, 아울러 아름다운 시문(詩文)을 가리킨다. 당‧송시대의 훌륭한 7언절구를 모아 시 짓기의 전범으로 삼았던 책이 元나라의 《연주시격(聯珠詩格)》이며, 일찍이 우리나라에 들여와 성종대에는 언해본까지 간행한 바가 있다. 옛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시문(詩文)을 모아 연주시(聯珠詩) 또는 연주집(聯珠集)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또 연주(聯珠)는 시문이 뛰어난 형제를 일컫기도 한다. 이처럼 연주는 다중적인 의미가 있다. 다 구슬을 꿴 듯 아름답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탄은 ‘여울 탄灘’이 아니라 ‘악기 연주할 탄彈’으로 하였다. 탄灘은 약간 상투적이기도 하거니와, 또 포말을 일으키며 내닫는 물결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구슬이 연주하는 곡조도 듣는다는 의미로 彈으로 하였다. 연주(聯珠)와 연주(演奏)라···.

내 고향에 청류정(聽流亭)이 있다. 집 앞으로 반석이 깔린 시내가 굽어 흐르는데 집 안에서는 보이지 않고 문을 나서야 보인다. 이때 청은 ‘물맑을 청淸’이 아니고 ‘들을 청聽’을 쓴다. ‘맑은 물이 흐르는 정자’보다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정자’가 훨씬 운치 있지 않은가? 여운도 남고.

말은 끝나도 뜻은 남고, 풍경은 다해도 정취는 남으며, 자리는 거두어도 여운은 이어지는 것, 이런 것도 자연을 잘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그러려면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때로는 눈을 감고 소리로 심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에만 담아두면 금방 사라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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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물을 보는 데에도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보아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 관수유술 필관기란)”고 말했다. 이때 瀾(란)은 물(氵)과 란(闌)으로 이루어진 글자다. 闌(란)은 가로막다의 뜻이다.(*나무木로 가로막은闌 것을 난간欄이라 한다) 물이 가로막히면 물결이 일어난다. 물은 절벽에서만 가로막히는 것이 아니라 여울목에서도 가로막힌다. 그래서 위 구절은 “~ 그 여울목을 보아야 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물이 여울목을 만나면 어떻게 나아가는가?’ 즉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는가?’라는 비유적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남명선생은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看山看水看人看世)”고 하였다. 니는 연주탄에서 뭘 봤냐고 묻는다면, 하얗게 부서지며 부딪쳐서 더 아름다운 여울물을 보았다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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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날 연주탄 물가에 나와 볕쪼이하는 남생이. 등짝이 내 손바닥 2개 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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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모든 사진은 내 폰카로만 찍은 것이라 시원찮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감안해서 보시길~.

 

[이 게시물은 꼭대님에 의해 2019-03-18 21:04:26 지리다방에서 복사 됨]
5 Comments
백운 2019.01.07 09:32  
이야기가 있어 새로운 명소가 되겠습니다. 다음편 기대합니다..
다우 2019.01.07 14:29  
화산12곡을 새롭게 해석하고 바라본 `新화산 12곡`이라....
내가 아는 한 그동안 언급되어온 구곡문화의 대개가 그곳에 정착하여 오랜 시간 그곳의 정취를 즐겼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옛문헌을 읽고 찾아보는 답사는 으레 몇차례 방문으로 족하지만
이렇게 본인 나름의 `新화산 12곡`이란 이름을 짓기까지는 이곳에 거진 살다시피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사람도 자주 보다보면 없던 정도 들듯이 화산12곡을 제집 드나들 듯하며 새록새록 솟은 정과 어우러져
아우의 풍부한 인문지식이 `新화산 12곡`을 탄생시킨 것 같습니다
백산 2019.01.07 16:59  
우와!! (신)화산12곡까지나...
역시나 글 풀어내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작명도 놀랍고요.
"聯珠彈" "포말을 일으키며 내닫는 물결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구슬이 연주하는 곡조도 듣는다는 의미로 彈으로 하였다."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유키 2019.01.07 23:59  
퇴직하시면 작명소 차리세요. ㅎㅎ
엄천강의 매력에 푹 빠지신 엉선생님은 강용하선생님보다 오만배 엄천강을 잘 아시고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폰사진으로도 신화산십이곡의 정수가 잘 드러납니다.
완전 매료되는구만요.
언제 또 백산님과의 합작이 이루어지시기를 앙망합니다.
강호원 2019.01.10 18:56  
1, 거참 대단한 학구열이고 평생 늙지 않을 열정입니다.

2, 유키님의 버끔소 사진,
이름난 추상화가의 붓으로 그린 것 같고, 한석봉이가 휘갈겨 쓴 초서 글씨 같습니다.

3,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때로는 눈을 감고 소리로 심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에만 담아두면 금방 사라지니까."
대단한 심미안입니다.

4, 화산12곡 답사에 용맹정진 하시더니 그 발품 덕에 신 화산12곡이 탄생하였으니
그야말로 도랑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돈 줍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
입니다.

5, 덕분에 새로운 풍경들 감상 잘 합니다.
고맙고,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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