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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화산12곡] 제3곡 : 심원대(여망소)

엉겅퀴 | 586

제3곡 : 심원대(尋源臺, 여망쏘)

 

솔봉능선의 북쪽 물이 모여 세동마을 옆을 지나 엄천강과 합류하면서 깊은 소를 이루었다. 시퍼런 물결이 거대한 벼랑을 따라 흐르는데 그 절벽을 심원대라 한다. 동네사람들은 바위가 절벽을 이룬 이곳을 여망쏘(소)라 하였다. 첨에는 병풍소라 하기에 처음 화산12곡을 답사할 때 제3곡 병담(屛潭)이 여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망소가 무슨 뜻인지 주민들에게 물어봤더니 2가지 얘기가 있었다. 하나는 여망이란 사람이 빠져죽은 쏘, 또 하나는 약간 위쪽에 사람들이 건너다니던 섶다리가 있었는데, 여망이 누나를 업고 그 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져 누나의 몸매가 드러나자 자기도 모르게 욕정이 솟았고, 누나에게 음심이 동한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던 여망은 자기의 거시기를 돌로 쳐 짓이기고는 죽었다 한다. 그래서 여망소라 한단다. 왕조시대 백성들을 세뇌시킨 삼강행실도 등 도덕교과서의 영향일까? 어쨌거나 여망소의 이름에 갖다 맞춘 이야기란 냄새가 짙다.

나도 씰데없는 상상력을 발동해본다. 여울을 ‘여’라고도 하니 여는 시내를 뜻하고 ‘망’은 망태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여망소는 시냇물을 가득 채운 망태기 모양의 쏘? 아니면 여망은 강태공 여상을 가리키는 말이니 낚싯대 드리우고 세월 잊기에 좋다는 뜻일까? 너무 나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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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는 거대한 심원대(尋源臺) 각자바위가 있고 그 곁에는 농암석공두석풍영소(農菴石公斗錫風咏所)가 새겨진 마당바위가 있다. 마을사람들은 해치바구라 한다. 해치는 잔치의 갱상도 방언이다. 과거에는 자주 거기서 마을잔치를 베풀었단다. 아래는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검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이무기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마당바위 끝에 서면 수면에서 제법 높아 아찔하다. 옛사람들 같으면 아마 천길 벼랑 또는 수십길 낭떠러지라 했을 것이다. 맞은편엔 포트홀(돌개구멍)도 더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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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바위절벽도 볼만하지만 이곳의 또 다른 명물은 용바위가 아닐까 싶다. 맞은편 언덕에서부터 강 가운데로 길게 몸을 내밀어 병풍소의 입구를 감싸고 있다. 꿈틀거리는 긴 몸통과 치켜든 머리가 영락없는 용이다. 통상 뿔이 있는 것은 규룡(虬龍), 비늘이 있는 것은 교룡(蛟龍), 날개가 있는 것은 응룡(應龍)이라 하는데 자세히 보면 뿔이 돋아 있는 것 같으니 규룡(虬龍)이라 해도 될 것이다. 동네(*세동)사람들 중에서도 용이라 하는 사람들은 없었고 기록에도 없지만, 과거 누군가는 분명 용바위로 불렀을 것 같아 나도 용바위라 이름 붙였다. 내 눈에만 용으로 보였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동네분들에게 “거, 용바위 같지 않습니까?” 했더니 “아, 그라고 보이 그렇네요.” 한다.

이 용바위와 심원대 절벽 사이를 통과한 물은 너른 소에서 깊고 고요하게 흐른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소에 꼭 등장하는 익숙한 전설을 인용한다면, 명주 실꾸리 한 타래를 다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을 것 같다. 이쯤 되면 나의 허풍도 옛사람에 버금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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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Daum 지도의 스카이뷰

 

과거 세동에 살던 선비 신상규(申相圭 1837-1913)가 심원대(尋源臺)라 이름짓고 각자를 새겼다. 「심원대 만서신공 장구지소 ▨인사월일(尋源臺 晩捿申公 杖屨之所 ▨寅四月日)」 1글자(▨)는 판독불가다. 그는 합천 삼가에 살다가 중년에 지리산으로 들어와 세동에 살았다. 만년에는 지곡으로 옮겨갔다. 지리산엔 늦게 들어왔지만 만년을 보내리라는 뜻으로 호를 만서(晩棲 *늦을 만, 살 서)라 하였다 한다. 다음은 그의 시 「입방장산(入方丈山)」이다.

    靑藜指点碧山深(청려지점벽산심)  청려장(*명아주 지팡이)으로 깊고 푸른 산 가리키며

    攀木緣崖一逕尋(반목연애일경심)  나무를 부여잡고 벼랑을 따라 한 줄기 좁은 길 찾아가네

    容易登高應酒力(용이등고응주력)  높은 곳 수월하게 오르는 것은 술의 힘이요

    彷徨觀物㧾詩心(방황관물총시심)  이리저리 거닐며 경물을 바라보니 시심이 절로 솟네.

    憑雲始覺人捿谷(빙운시각인서곡)  구름 위로 오르니 비로소 깊은 골짜기에도 사람 사는 것 알겠고

    入夜猶多鳥語林(입야유다조어림)  밤이 되니 오히려 숲에는 새들의 지저귐 왁자하다

    烏石靈源知在此(오석영원지재차)  여기 검은 돌 사이에 솟는 신령한 샘물처럼

    纖塵不上自家襟(섬진불상자가금)  내 가슴속엔 한 점 티끌도 쌓이지 않네. (국역 : 엉겅퀴)

위 시에서 관물(觀物)은 원래 성리학(주자학)에서 ‘고요하게 사물을 바라보며 그 이치를 깨닫는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경물(景物 *경치)을 본다’는 뜻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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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尋源)은 물의 발원을 찾다, 도(道)의 근원을 찾다, 사물의 원류를 찾다, 조상의 시초를 찾다, 무릉도원을 찾다 등 다양하게 쓰인다. 또한 유학(*周易)에서는 원시반종(原始反終 *근원을 미루어 그 끝을 헤아리는 것)도 공부의 한 방법이어서 심원은 낯선 말이 아니다.

어쨌거나 물도 깊고 풍부한 이곳에서 굳이 물의 근원을 찾겠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큰 강도 그 근원은 술잔에 넘칠 정도의 적은 양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걸 남상(濫觴 *넘칠 람, 술잔 상)이라 한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한 성경의 말씀과 같다.

근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잘 살 때에도 가난했던 때를 잊지 않고 영예로울 때에도 보잘것없던 시절을 기억하라는 교훈적인 뜻으로 많이 쓰인다. 성공한 사람을 보는 것도 어렵지만, 성공했어도 한결같은 사람을 보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리하여 혹시 근원에서 한참 떨어진 이곳에다 엉뚱하게 ‘근원을 찾는다(尋源)’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물이 적든 많든 근원이 멀든 가깝든 처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물에 빗대어 경계하는 의미로 그런 것은 아닐까?

 

근원을 찾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불교에서는 원래부터 부처인 본래의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림으로 나타냈다. 심우도(尋牛圖)이다. 모두 10장면으로 그렸기에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그중 아홉 번째 그림이 반본환원(返本還源)이다. 근원(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그 게송(偈頌)을 한번 보자.

    返本還源已費功(반본환원이비공)  본래대로 돌아올 걸 괜히 헛수고만 하였구나

    爭如直下若盲聾(쟁여직하약맹롱)  차라리 눈 멀고 귀 먹었다면 찾아나서지 않았을 터

    庵中不見庵前物(암중불견암전물)  암자에 있는 물건들이 다 실상인데 왜 보지 못했던가

    水自茫茫花自紅(수자망망화자홍)  물은 절로 흘러 아득하고 꽃은 절로 피어 붉은 것을.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가 다 부처인데 돌고 돌아서 본래의 자기를 찾아왔을 뿐이다. 알았다면 찾아나서지 않았을 터, 그러나 찾아나서지 않았다면 그 자리가 본래자리인 줄도 몰랐을 터. 깨닫고 보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진리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다. 소동파의 시를 빌어 말하면 “시냇물 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이요, 산빛은 부처님의 청정법신(溪聲便是長廣舌 山色豈非淸淨身/계성편시장광설 산색기비청정신)”이다. 이때에서야 비로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전에는 소를 타고서 소를 찾는 격이니, 보았던 것은 산이되 산이 아니요, 물이되 물이 아니다. 늘상 보고 다니던 꽃도 붉은 줄 몰랐던 것이다. 이제사 비로소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의 근원을 찾는 심원(尋源)도 결국 자신을 찾는 일이 아닐까?

(*여기서 한 마디 덧붙일 것은, 주자학의 수양론도 ‘처음으로 돌아감(復其初)’ 또는 ‘본성을 회복함(復其性)’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므로 이 지점은 신유학(주자학)과 불교가 겹치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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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우도 중의 제9도 반본환원도 / 송광사 벽화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쓴 그(신상규)의 행장을 보면, 엄천 상류의 물이 모여 돌아 흐르고 고기와 새와 어울리고 바람과 달을 벗 삼을 만한 곳을 찾아 심원대라 하고는 세간의 영욕과 득실이 일체 들리지 않는 것처럼 하였다는데, 어쩌면 그냥 물의 근원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가기 위해 지리산 더 깊은 골짜기로 찾아왔기에 심원이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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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도로에서 바로 심원대로 접근하는 것은 길을 모르면 찾기가 어렵다. 연주탄에서 강변을 따라 내려가거나 십주도에서 계곡 따라 오르는 것도 한 방법이다.

 

6 Comments
유키 2019.01.09 12:08  
이곳으로 겨울소풍 가야겠습니다.

여망소의 유래는 섬뜩한 사연보다는 망태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꼭 망태기랑 닮았습니다.
다우 2019.01.09 15:05  
난 아우가 찾은 십주도 덕에 곧 조주의 불사초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너무 흥분되고 좋아 미치고 환장할 것 같네....
백산 2019.01.09 16:23  
蝸牛角上爭何事!(‘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위의 글귀를 무척 좋아하는데 십주도 작명 유래를 읽어보니 옛사람들의 뻥튀기가 가관입니다.
여망소 전설은 옥녀봉 전설과 일맥상통하지만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고요.

재미있네요. ^____^**
가객 2019.01.10 05:35  
여망소의 정확한 이름은 어망소인 듯 합니다.
경상도 사투리(밀양 우리 고향)에 욕이 센 사람들을 두고 어망이 세다고 하는데... 뭐 여망이나 어망이나 전설과도 딱 부합이 되네요.

화산십이곡으로 엄천강의 가치를 태산만큼 올리신데 이어,
이 엄동설한에 신화산십이곡을 위해 고군분투하신 노고에 대한  보답으로 慕華碑라도 하나 세워드려야 할것 같습니다.
엄천강 물 깊이보다 더 깊은 내공으로 또 하나의 엄천강 역사를 펼치시는 이선생께 이 시대의 마지막 유림이라 이름 부쳐드리고 싶습니다
강호원 2019.01.12 18:20  
심웓대를 찾아내고는 그 어원에 대한 고찰이 가히 논문급입니다.
십주도 작명과 해설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리고 사진도 수준급입니다.
백산님 동행하더니 눈이 트이셨는가?


세상만사 부처 아닌 것이 없다는데 불교와 기독교, 도교, 유학을 훤히 꿰며 이상향을
속세의 엄천에서 구현해 내시는 이선생이 그야말로 부처입니다.

아무튼 발품 파시느라 수고하셨고,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강호원 2019.01.12 18:22  
아, 참!
본지 까마득하여 준수한 용모 다까묵었는디 날 잡아 소주 한 잔 하입시다.
신화산12곡 때문에 머리카락 더 빠졌는지 확인도 할겸.

어제 삼천포 갔는데 회맛이 더 좋아졌더라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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