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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화산12곡] 제5곡 : 은하사

엉겅퀴 | 504

제5곡 : 은하사(銀河槎)

 

5곡까지는 산속의 산이고 물속의 물이라 외지고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 참으로 한적하게 즐길 만하다. 운이 좋으면 수달도 만난다. 십주도에서 200m를 내려오면 강 가운데 바위들이 늘어서 있다. 십주도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십주도가 모양이나 배치가 지멋대로였다면 여기 바위는 크기는 다르지만 대체로 길쭉한 모양새이고 방향도 거의 동일하며 나름 질서 있게 정렬되어 있다고나 할까. 연상되는 것이 있었다. 뗏목이 나란히 떠가는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대장선(船) 뗏목도 있고 보조 뗏목, 구명정 뗏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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뗏목도 그냥 뗏목이 아니다. 삼신산 중에서도 제일가는 방장산의 뗏목이 아닌가? 그리하여 은하수에 떠 있는 뗏목 또는 은하수를 건너는 뗏목, 은하사(銀河槎)라 이름지었다. 사(槎 또는 楂)는 뗏목을 뜻한다.

중국 한(漢)나라 장건(張騫 ?-BC 114)이 무제의 명을 받고 대하(大夏)에 사신으로 갔을 때 황하의 근원을 찾으러 뗏목을 타고 은하수를 건너 견우와 직녀를 만나고 왔다는 전설이 전한다. 또 태고에는 바다와 은하수가 하나였다가 갈라졌기 때문에 해마다 8월이면 바다에 뗏목을 띄워 천상에 다녀왔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전한다. 그 뗏목을 선사(仙槎) 또는 성사(星槎)라 하는데, 장건의 행로에 빗대어 사신(使臣)의 행차를 선사‧성사라 미화하여 일컫기도 하였다.

 

임천 엄천 할것없이 요즘 지리산엔 기상이변과 집중호우에 휩쓸려온 토사와 돌덩이가 쌓여 계곡을 메우고 있는데 희한하게도 십주도와 은하사 주변에는 그런 것 이 거의 없어 깔끔한 편이다. 풍치도 뛰어나거니와 뗏목 운항(?)에도 방해물이 없는 셈이다.

거친 계곡에는 당연 배보다는 뗏목이다. 또 뗏목은, 흘러가면서 사방의 산수 구경에 막힘이 없고, 발끝에 물이 찰랑거리기도 하며, 고기들이 노는 모습을 손에 잡힐 듯이 즐길 수도 있을 터이니 훨씬 자유롭다 할 것이다. 허나 뗏목이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뗏목은 선박의 원형이므로 고난과 모험의 표상이기도 하다.

조화옹이 이 뗏목을 만든 건 누군가를 건네주기 위함일 텐데, 엄천강엔 이 떼를 띄울 만한 물이 없는지 시내 가운데 정박해 있다. 저 아래 지리산댐이 만들어져 물이 차오르면 이 뗏목도 뜨려나? 끔찍한 상상이다! 아니면 뗏목이 내와 강을 지나 바다로 흐르지 않는 것은 지리산이 좋아 지리산을 떠날 수 없어 그만 닻을 내리고 바위가 되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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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나 나갈까 보다.(道不行 乘桴浮于海)” 하였고,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선사(仙槎)를 띄워 내여 두우(斗牛 *북두성‧견우성)로 향해볼까.”라 했다. 그런 용기와 호기가 지금 내게 있을까?

인생은 흔들리는 조각배에 몸을 싣고 만경창파 헤쳐 나가는 것이라 했는데, 나는 인생이라는 뗏목을 타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가고 있기나 한 건지.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고 물을 건너고 나면 뗏목을 잊어라 했는데 개코나 건너기나 해야 잊든지 말든지 하지, 피안(彼岸)은커녕 아직도 강 이쪽[차안(此岸)]에서 서성대고 있으니… 덴장!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다 후회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글쎄···. 산에서야 길을 잃으면 대체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 또 길을 잃은 곳에서 찬찬이 찾아보면 된다. 허나 인생에서는 길을 잃어도 잃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안다 해도 도대체 어디서 길을 놓쳤는지도 모르고, 어딘지 안다 해도 너무 멀리 떠나와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올바른 길을 찾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긴 인생이란 정답을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아니라, 어디로든 흘러가는 것이고 살아 움직이는 것이며 살아야 할 내 몫이니, 알은들 어떠하며 모른들 어떠하리. 이대로 살지 뭐.

 

몇 십 년 산에 다니면 나도 산이 되고 바위가 될 줄 알았다. 훗날 나는 아쉬워할지도 모르겠다. 왜 그때 희로애락에 흔들리지 않는 산이 되지 못했는지, 풍우에 깎이는 묵묵한 바위가 되지 못했는지. 그래서 이제라도 더 자주 더 오래 바위 위에 누워 있어볼 참이다. 가슴속 더 이상 맑은 물소리 들리지 않으면 여기 뗏목에 올라 엄천강과 함께 흘러가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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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뗏목을 보는 데에도 방법이 있다. 계곡 안에서는 그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므로 뗏목인 줄 알아채기 힘들다. 약간 떨어져서, 이를테면 강가의 펜션 마당에서 보면 한눈에 볼 수 있다. 아, 물론 바위와 물길 하나하나를 보려면 계곡으로 내려서야 한다.

 

3 Comments
강호원 2019.01.12 18:42  
우찌 이 선생 인생이 길 잃고 헤맨 인생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수십 년 지리산 품에 안긴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고
그 덕에 지리산에 신혼여행도 가고.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것만해도 훌륭한 삶입니다.

올해 말 은퇴하시면 엄천강 은하사, 승벽담에 누워 속세의 번민을 씻으며 막걸리나 한 사발 들이키며
구도자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위 글을 보면 이미 득도한 것 같기도 하다만.

잘 봤습니다.
가객 2019.01.14 01:35  
엄천강의 숨은 비경들에 대취하신 것 같습니다.
자연을 대하는  상념과 지식이 이토록 탁월하기에  신화산십이곡이라는 대작을 꿈꾸었나 봅니다.

지난 봄인가,
 진소의 수문장같은 승벽담을 보고서 어찌  화산십이곡에서 빠졌을까? 했었는데 이선생 덕분에 신화산십이곡의 범주에 들게되는군요.
 운치없는 운서보에 만 앉아 있어도 반선이라도 된 듯 한데, 은하사와 승벽담에서 엄천강을 만끽하는 경지는 오죽하겠습니까.

고향도 아니시면서,내 중.고 학창시절 단골 소풍지였던 밀양의 진늪숲(솔밭)은 우찌아시고...?
백산 2019.01.14 17:15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예사로 보면 별 볼일 없을 것 같은 돌들과 물웅덩이도 그렇게 아름답고 고매한 이름을 붙이니 그럴 듯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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