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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화산12곡] 제7곡 : 화한정

엉겅퀴 | 629

 

제7곡 : 화한정(華漢亭)

 

화한정에 오르면 엄강이 굽이도는 진소가 발 아래 있고, 아래쪽은 와룡대요 위쪽은 병담이다. 건너편으로 비녀봉이 우뚝하고 비단장막을 펼친 듯한 산주름 뒤엔 문필봉과 노장대 향로봉이 아련하다. 정자는 참으로 있을 만한 곳에 있다. 옛사람들의 기막힌 안목에 감탄한다. 지금은 웃자란 잡목이 풍경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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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정은 구한말의 화산(華山) 강주룡과 한계(漢溪) 강주백 형제를 기려 세운 것이다. 형제의 號에서, 화산이 법화산이라면 한계는 엄천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다.

대략 조사해보니 전국(남한 기준)에 華山화산이란 산이름은 25개쯤 되었다. 연화산(蓮華山) 법화산(法華山)까지 포함하면 더 될 것이다. 花山화산까지 친다면 족히 수백 개는 되지 싶다. 華山화산은 대체로 화려한 꽃처럼 정기가 모인 고을의 진산이었다. 가장 유명한 화산은 삼각산(=북한산)이고 그 앞의 물이 한강(漢江=漢水)이다. 그리하여 아마 당시 “화산:한수=법화산:엄천”을 대비(對比)하여 여기 화산 앞의 물 엄천을 한수(漢水=漢溪)라 부르기도 한 모양이다.

산과 물, 용맥(龍脈 *산)과 용수(龍水 *산과 어우러진 물)는 형제처럼 짝이 되니 두 형제의 호-화산과 한계-가 법화산과 엄천을 가리키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화산12곡(7곡 한남진)에서 소개한 권도용의 한남군을 추모한 시 「王子怨(왕자의 원한)」의 한 구절은 이러하다.

    冤魂竟不死(원혼경불사)  원혼은 끝내 죽지 못하고

    夜夜隨月照漢江(야야수월조한강)  밤마다 달빛 따라 한강을 떠도네.

따라서 ‘한강’은 한양의 한강이 아니라 엄천강을 뜻한다면 앞뒤가 맞아 떨어진다. 화과 한의 호를 따서 조은대 일대를 산계동천(山溪洞天)이라 한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은 더욱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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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조은대 풍경(2016년 백산님의 사진이다.)

 

화한정에 대하여는 나의 구구한 말보다는 옛사람의 기록으로 대신한다. 다음은 화한정의 기문(記文)이다.

 

화한정기(華漢亭記)

 

「두류산의 북쪽과 뭇산들의 남쪽으로 나오는 물이 있어 엄강이라 하는데, 내 고장 최대의 수원(水源)이다. 강가에 있는 마을이 무려 열 몇 개인데 오직 문헌동만이 두드러진 것은 세상에 전해지는 말로, 정문헌공과 김탁영이 이곳을 지나며 가리켜 말하기를, “앞에는 큰 시내가 있고 뒤에는 세 봉우리가 솟아 있어 군자가 살 만한 곳”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화산 강공 주룡이 이 동리에서 나서 자랐으며, 기우가 헌앙하고 스스로 지키는 것에 독실하여 위세에도 굴한 적이 없으며, 성격 또한 불쌍한 사람 도와주기를 좋아하여 춘궁기에 곡식을 베풀어 마을의 굶주린 사람을 살린 것이 많았다."고 들었으니 산남(山南)의 위인임을 알 수 있다.

강변에 큰 바위 하나가 가파르게 치솟아 마치 물 가운데 버티고 선 기둥 같은데 이는 공의 조은대(釣隱臺)이다. 공은 시골구석에서 일어나 청운을 품고 충훈부 도사를 시작으로 만년에는 중추원(中樞院)의 품계 3품에 이르렀으니 영예로운 지위에 올랐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도리어 관모(冠帽)를 벗고 삿갓을 쓰고, 홀(笏)을 내던지고 낚싯대를 잡고 유유자적 세상을 잊을 뜻이 있었던 것은 어째서일까? 뽕나무밭이 바다로 바뀌는 변고를 미리 알아 산수간에 놀 마음이 있어서인가?

그 동생 한계공 주백 역시 몸가짐이 고아하고 절조가 있으며 마음씀이 어질고 후덕하였다. 일찍이 사람들에게 큰 재물을 빌려주고서도 그 문서를 불태워버렸으니 어둠 속에서 음덕을 쌓았다고 할 것이다. 형을 따라 이 대에서 노닐 때에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곤 했는데 부르고 화답한 시 중에 한 연(聯)은 이러하다.

    靑山流水渾忘世(청산유수혼망세)  푸른 산과 흐르는 물에 세상을 모두 잊고

    葭露懷人宛在坻(가로회인완재지)  갈대 잎의 이슬 같은 세상에서 그 사람을 생각느니 그 사람은 저 물가에 있구나.

그 시를 읊고도 그 사람을 모른대서야 되겠는가?

옛날 장천 조창보 형제가 왕산에 은거하여 창안백발(蒼顔白髮)로 산수간에 서로 어울릴 제 당시 모두 말하기를, "인간세상의 지극한 즐거움은 어찌 세상이 다른데도 이렇게 똑 같은가?"라 하였다. 어느덧 두 선생의 무덤가 나무는 아름드리로 자랐는데 조은대의 새김은 오히려 변함이 없다.

한계공의 아들 현종이 대 곁에 정자를 세우고자 하였으나 지세가 마땅치 않아 뜻만 품은 채 오랫동안 이루지 못하였다. 근년 여름, 대로부터 활 한바탕 거리에 터를 잡고 밭 한 이랑을 구입하여 정자를 짓기 시작하였다. 2년간 지붕을 덮고 난간을 두르자 전날의 거친 들판과 후미진 구석은 돌연 경관이 바뀌었다. 두 선생의 호에서 취하여 화한정이라 이름을 짓고는 재종손 동철로 하여금 나에게 기문(記文)을 지어 달라고 청하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두 선생을 드러내는 것은 이 대에 있지 않으니 대가 어떻게 스스로 높아질 수 있겠는가? 선친을 밝히고자 하는 효성스런 아들의 고심(苦心)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정자가 있겠는가? 그러나 두 公의 자선과 인후한 행적이 없었다면 비록 이 정자가 있다 한들 사람들이 어찌 일컫겠는가? 대개 사람과 사물이 서로 응하고 이름과 실질이 서로 따르는 것이 이와 같다.

아, 무릇 이 정자에 올라 바라본다면 어찌 마음에 경계하는 바가 없겠는가? 혹 형제간에 어그러져 서로 친목하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부끄러움을 알 것이고, 영화를 탐하고 이익을 좋아하여 편안히 물러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는 경계할 바를 알 것이다. 자손을 위하면서도 조상을 생각지 않는 자 역시 두려움을 알 것이니 무너진 풍속에 도움이 된다면 돌아봄이 어떻겠는가?

바위 봉우리의 진기함과 구름과 노을의 아득함은 안목을 갖춘 자라면 스스로 품평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군더더기를 덧붙일 필요가 없으니 이와 같이 쓰고 돌아갈 뿐이다.

정해년(1947) 유화절(流火節 *7월) 하순 진강(*진양) 하기현(1880-1967) 쓰다.」(국역:엉겅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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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안부를 묻거들랑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백대의 과객"(*이백)이라 했으니 여기도 한세월 보내기 좋은 곳, 엄천강을 여관 삼아 바람 가득한 누정에서 나그네 되어 얼쩡거리고 있다고 전해주오.

   

8 Comments
다우 2019.01.14 10:58  
진흙 속에 꼬리치며 놀고있을망정 언제나 고아한 생각에 유유자적하니 반선이나 다름없네
내 관어기에 가면 반선이 된 물고기를 구경할 수 있으려나....
백산 2019.01.14 17:29  
관어기(觀魚磯), 작명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화창한 날 관어기 끝자락에 앉아 멍때리며 신선놀음 하고 싶습니다.
꼭대 2019.01.14 23:21  
출장 다녀와 한꺼번에 몰아 읽다 끝에 도달하여 서운하더만,
12곡 제대로 끝을 볼려면 아직 4곡이 더 남아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소양이 필요한 글이라 우리 같은 필부야 버벅거리며 읽긴 하였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눈에 보일 듯 또한 귀에 들리는 듯 엄천강변의 풍경이 그윽하게 들어옵니다.

50년전 당시의 선배들이 최초로 칠선계곡을 개척하면서 명소에 붙인 이름이 근거도 없이 떠오르는 대로 진부한 선녀탕이나 뜬금없는 청춘홀이었는데, 수십 차례 소와 담을 오르내리며 지리산 정취에 대한 심미안으로 바라보고 깊은 고전의 지식에서 끌어낸 작명이 일품입니다.
문제는 작명으로 끝나버리지 않고 작명에 이르기까지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세밀하게 풀어내었으니 新화산12곡으로 지리산에 새로운 명소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엉겅퀴>님에 의해 자리 잡은 총 화산24곡은 산행하듯 서둘러 둘러볼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에 한곳 느긋이 앉아 주변 풍경을 음미하며 노닐어야 비로소 <엉겅퀴>님이 보고 느꼈던 바를 얼핏 얻을 수 있겠습니다.

지리산길 지도에 반영하고, 두 곡씩 합쳐져 올린 글은 한편한편 나누어 문화유적 게시판에 반듯하게 올려 놓겠습니다.
가객 2019.01.15 10:53  
오늘아침 운서보를 접수한 넘들.
가객 2019.01.15 10:54  
관어기를 향하여!
가객 2019.01.15 10:57  
엄천강 지키미

이선생 게시물 보고 지리산리조트 산새님이 보내왔습니다.
유키 2019.01.15 11:18  
귀한 인연입니다.
동영상이 있을 것 같은데요 ㅎㅎ
강호원 2019.01.15 18:25  
화산과 한계, 두 강씨 형제분이 참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 후손인 백산 강 선생 같은 지리99보물도 나오지 싶습니다.

화한정의 이름에 얽힌 박식한 고찰과 관어에 대한 여러 인용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장자는 거의 신선입니다.

맨 위 다우님 말씀대로 장자에 심취하시는 엉겅퀴  이선생도 반선을 넘어선 것 같습니다.ㅎㅎㅎ

돌아서면 까묵겄지만,
수준 높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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