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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화산12곡] 제11곡 : 절앞들숲
제11곡 : 절앞들숲
숲은 이름이 없다. 옛날에는 그냥 솔숲이라 불렀다. 몇백 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가 빽빽했기 때문이다. 전쟁통에 사람들이 땔나무로 베어다 쓰고 논이 조금씩 숲을 잠식하고 제방을 쌓고 둑길을 내면서 숲은 쪼그라들었다. 급기야 솔숲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사람들은 빨리 자라는 외래종 리기다소나무를 심고 느티나무 팽나무를 심어 지금의 숲 모양이 되었다. 지난날의 솔숲을 기억하는 노인분들은 말한다. “격이 없어졌어.” “영 볼품이 없어졌어.” 또 과거엔 수양버들이 강변 따라 삥 둘러서서 방풍림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지금의 동호마을은 옛 엄천사 절터였으므로 마을사람들은 마을 앞 들판을 절앞들 또는 절터앞들이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나도 그 들 끝에 있는 이 숲을 ‘절앞들숲’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숲은 조그맣다. 길이 100여m에 최대너비 40여m, 몇백 평 밖에 되지 않는다. 나무는 4십 몇 그루인데 토종 소나무는 고목 6그루를 포함하여 9그루 밖에 남지 않았고, 수양버들 고목 1그루, 리기다소나무가 19그루, 나머지는 느티나무 계통의 활엽수이다. 그래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꽤 운치 있어 보인다. 요즘은 이런 마을숲‧들숲도 귀하디 귀하다. 그래서 사시사철 캠핑족들이 끊이지 않는다.
같은 숲이지만 침엽수에 이웃한 활엽수의 풍경은 휑할 때도 있다. 이파리 무성했던 푸른날의 기억도 선명한데, 반짝이던 잎새들 다 지고 잎들의 두런거림도 그치는 겨울날엔 숲들도 외로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굴표정 짓던 잎이 없어 팔만 휘저어 “어여 와라!” “어여 가라!” 몸짓하는 겨울나무. 지나가던 바람이 나뭇가지 흔들며 장난을 걸고 눈비가 씻어주고, 밤이면 별들도 쉬어가고 달빛도 엿보는 숲. 게다가 곁엔 늘 푸른 이웃나무가 있고, 둑 너머엔 밤낮으로 멈추지 않고 흐르는 엄천강 물은 더 깊은 산속의 소식을 전해주고 또 대처로 소식을 전해갈 것이니 뭐 외롭지는 않으리라.
나도 그 들녘 숲에 누워 나무 사이로 눈부신 하늘과 찬란한 별빛을 맞이하거나 바람소리를 느껴보고 싶어 지글지글 볶고 끓이는 사람들이 없을 때면 가끔 들르기도 한다. 거기서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침엽수와 활엽수, 빈 가지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는 제각기 다르다.
내게 이 숲은 ‘휴식’이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한다. 내가 꿈꾸는 서재가 있다. 직사각형의 충분히 넓은 공간에 양쪽의 긴 벽면엔 책이 천정까지 가득하고, 천정에는 하늘창을 내어 별과 달과 구름을 흐르게 하고, 앞쪽의 벽에는 자연광을 걸러주는 은은한 창 아래 작은 책상 하나, 창 위엔 족자 하나, 방 가운데는 앉은뱅이책상, 나머지 벽면엔 대형 화면과 오디오, 적당한 자리에 안락의자도 하나 있어야겠지.
내가 생각하는 서재는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나만의 휴식공간이면 좋겠다.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책을 보다가 잠들기도 하고 때로는 마누라와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 그런 공간 말이다.
서재를 채운 책장과 책상, 그리고 책(종이)은 ‘나무’라는 같은 뿌리를 지닌 형제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서재 속의 나는 큰 나무 아래에서 또는 숲속에서 쉬고 있는 나그네라 해도 될 것이다. 내가 산에 가면 나무 아래에서 쉬듯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숲에서 내가 꿈꾸는 서재가 자연스레 연상되는 것이다. 물론 가지지 못했으니 상상으로만.
장자(莊子)는 쓸모없는 나무는 쓸모없기에 천수를 누린다고 하였다. 선인들의 유산기를 보면 천왕봉 등 산꼭대기 주변의 나무는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천수를 누린다고 하는 얘기가 많다. 이제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온난화까지 미치고 있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숲 파괴의 역사였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현재도 진행형이다. 독일의 숲 학자 페터 볼레벤은 “당신이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곳은 예전에 숲이었다.”고 하였다. 그렇고말고.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곳도 예전엔 분명 숲이었으리라.
사냥감과 열매 등 먹거리의 대부분을 숲에서 얻었던 수렵‧채취시대부터 삶의 원천인 숲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을 테고, 숲은 삶의 터전이자 또한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어둠에 묻힌 미지의 세계였을 테니까. 두려우면 숭배하게 되어 성소(聖所)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환웅이 하강했던 신단수(神壇樹), 터부였던 소도(蘇塗)‧솟대, 서낭당의 당산나무, 정한수 떠놓고 빌던 신목(神木), 나무에 두르는 금줄까지. 또 그리스신화의 배경도 거의가 숲이었다. 이런 것은 다 고대인의 숲에 대한 외경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북이탈리아의 네미 호수 옆에는 ‘디아나(Diana *다이아나=아르테미스)의 숲’이라 부르는 신성한 숲이 있었다. 그 숲에는 황금색 가지를 지닌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칼을 든 남자가 밤낮 그 나무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사제(司祭)이자 동시에 살인자였다. 그는 나무를 지키던 전임자를 살해하고 황금가지를 꺾은 후 비로소 사제가 될 수 있었는데, 그 또한 언젠가는 다른 자의 손에 의해 살해당할 운명이었다. 이 사제는 왕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렇게 주술과 신화, 종교와 문화의 관계를 추적한 프레이저의 저술이 인류학의 고전 《황금가지(Golden bough)》(1890년작)이다. ‘황금가지’는 잎이 진 겨울의 떡갈나무 위, 푸른 가지와 잎사귀에 황금색 열매가 달린 ‘겨우살이’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우주와 소통하고 신과 교감하던 이런 나무를 우주목 ‧ 神木이라 하였다. 우리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자주 마주치는 큰 나무도 신목 우주목 신단수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 고구려 고분벽화 중 각저총 씨름도>장천1호분 백희기악도>무용총 수렵도 (모두 부분)
우주와 인간의 소통 수단이었던 숲에서 자꾸 멀어지고 있는 인간. 홀로이면서 무리를 이루는 나무와 숲, 반면 숲이 되지 못하는 개인과 사회집단의 관계를 시인 정희성은 이렇게 읊었다. 「숲」(1970년작)이다.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맹자는 숲과 마음이라는 탁월한 비유를 들어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 바 있다. 대강 요약하면 이렇다.
「우산(牛山)은 원래 나무가 울창한 아름다운 산이었다. 큰 나라의 도읍 가까이에 위치한 까닭으로 사람들이 도끼로 마구 베어내어 지금은 민둥산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우산의 본래 모습이겠는가? -〈중략〉- 사람은 누군들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겠는가? 그 양심을 버리는 것은 나무에 도끼질을 하는 거와 같다. 그 바탕을 기르지 않아 금수에 가까운 사람이 있다 해도, 그것이 어찌 그 사람의 본래 성정이겠는가?」
맹자의 비유와는 다른 의미지만, 숲이 황폐해지면서 인간의 마음도 같이 황폐해진 것은 아닐까?
지날 때마다 나를 유혹하는 들녘 강변의 자그마한 숲, 바람에 나뭇가지 부드럽게 흔들리고 잎사귀 일렁이는 그 숲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평온이 나를 감싼다. 어릴 적 상상하던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의 “성문 앞 샘물 곁 보리수”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절앞들숲을 11곡으로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