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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타는 즐거움, 우락대(牛樂臺)

엉겅퀴 | 369



   김홍도, 기우도강도(騎牛渡江圖)


1

 

어릴 적 시골에서 소 먹이러 다닐 때 꼭 하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는 소를 타고 오가는 것이었다. 평소 성격이 온순하여 꿍꿍대며 농사일도 잘하고 길마를 얹어 구루마(달구지)도 끌지만 사람을 태우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더구나 평소 꼬맹이들이라고 얕보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고것들이 자기 등에 올라타는 것은 소들도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 도리질을 하고 난리를 쳤다. 어른들이 타고 다니며 길을 들여야 하는데, 농사짓기도 바쁜데 한가하게 소를 타고 다니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장날이면 소 등에 길마를 얹어 짐을 싣고 그 위에 앉아가는 영감님들은 있었다.

어른들은 소 골병든다고 또 애들 다친다고 소를 못 타게 하였지만, 금지된 장난일수록 더 하고 싶은 나이였고 놓아 먹인 소처럼 지독히도 말 안 들을 때였다. 멋져 보이고 우쭐하게 보이고 싶은 일종의 놀이였다. 몇 놈이서 코뚜레와 고삐를 단단히 잡고 소 등에 올라보지만 몇 걸음 못 가 미끄러지곤 하였다. 그나마 등쪽보다는 넓고 펑퍼짐한 엉뎅이쪽이 견디기는 훨씬 나았다. 안장 없이 먼 길 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또 누가 누운 소 타기누워서 떡 먹기만큼이나 쉽다고 했노? 누워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뿔을 휘두른다. 소를 타려고 끙끙댔던 기억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다만 숫소는 부랑한 동네 영감처럼 성질이 사나워 타볼 엄두를 못 내었다.



   김홍도, 길 가는 여인 훔쳐보기(단원풍속도첩)

 

2

 

옛날에 소를 타고 다니는 일은, 상민들은 별 탈 거리가 없어서 소라도 탔을 것이고, 사대부들은 말이나 나귀가 없어 소를 타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당시에도 느림의 미학을 실천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들이 남긴 글을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의외로 소를 타고 다닌 기록은 풍부하다. 걸맞는 시가 있다. 중종대에 활약했던 양팽손(1488~1545)의 『우음(偶吟)/문득 읊다』이다.

  不識騎牛好(부지기우호) 소 타는 것 좋은 줄 몰랐더니

  今因無馬知(금인무마지) ()이 없다 보니 이제 알겠네

  夕陽芳草路(석양방초로) 석양 녘 방초 가득한 길을

  春日共遲遲(춘일공지지) 소도 느릿느릿 봄날도 늬엿늬엿

풍류가 넘치고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한가로움을 즐기는 정()이 한껏 느껴진다.

 



   김홍도, 박제가, 기우도(騎牛圖)

세종대의 정승 고불 맹사성(古佛 孟思誠, 13601438)은 출입할 때에 소 타기를 좋아하여 보는 이들이 재상인 줄을 알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런 일화가 전한다.

「온양(溫陽)으로 부모를 뵈러 가면서 왕래할 적에 관청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항상 간소하게 다녔으며 때로 소를 타고 가기도 하였다. 양성과 진위 두 고을의 수령이 공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장호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소를 타고 지나가는 늙은이를 보고는 꾸짖어 금하자, 공이 온양의 맹꼬불이(孟古佛)가 제 소 타고 간다 하였다. 두 수령이 놀라 달아나다가 깊은 연못에 관인(官印)을 빠뜨렸다. 후인들이 그곳을 인침연(印沈淵)이라고 불렀다.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의 《해동악부》에 나오는 얘기다. 야사(野史), 수령들이 놀라 도망가다가 관인을 빠뜨렸다는 얘기는 이외에도 종종 등장한다.

 

옛그림을 보면 안장이나 깔개도 없이 소의 맨등에 올라앉아 가는 경우가 많다. 가능할까? 자세가 불안하여 꾸벅꾸벅 졸지도 못하고 신경쓰여 한가함을 즐기기도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유명한 분의 말씀 스타일을 빌리자면, 내가 어릴 적에 소를 타 봐서 아는데 그렇게 해서는 오르락내리락 길을 가거나 먼 길 가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등 중간보다는 뒤쪽 방뎅이 위에 앉으면 훨씬 안정적인 자세가 나오므로 그런 그림은 그나마 실상을 묘사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소의 맨등에 타는 그림이 많은 것은 멋스러움과 풍류를 강조한 회화적 표현이 아닐까. 모르겠다. 소도 사람도 훈련이 되면 익숙해지는지.

 



   심사정, 최북, 기우도(騎牛圖)

옛사람들의 소를 타는 방식을 조금은 엿볼 수 있는 시조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학교 댕긴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의 시조이다.

  재너머 성권롱(成勸農) 집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희야 네 권롱 계시냐 정좌수(鄭座首) 왔다 하여라

술이 익어간다는 말을 듣고는 누워 있는 소에게 안장을 얹을 새도 없이 언치만 걸치고 눌러 타 재촉하는데 마음은 이미 재너머 콩밭에 가 있다. 술이 고파 마음 급한 술꾼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김홍도의 해학이 넘치는 풍속화를 보는 듯 재미있다. 그러나 보는 사람은 느긋하고 여유롭다. 그건 말을 타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느릿한 소를 타고 가기 때문이 아닐까.

언치는 마소의 등과 안장 또는 길마 사이에 까는 깔개를 말한다. 안장은 사람 타는 것이고 길마는 짐 싣는 것이다. 위 시조에서 유추해보면 소를 탈 때에도 통상적으로 언치와 안장을 갖추었다는 얘기가 되겠다.

 

다음은 양촌 권근((陽村 權近 1353-1409)이 쓴 『기우설(騎牛說)』이다. 사대부들이 소를 타는 이유는 이 한 편에 다 녹아 있다. 이후 선비들의 소를 타는 즐거움도 이 글을 벗어나지 않는다. 기우(騎牛)에 관한 종합세트 같은 글이다.

「나는 일찍이 산수를 유람하는 데에는 오직 마음에 사사로움이 없은 뒤에야 그 즐거움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하였다. 나의 벗 이주도(李周道)가 평해(平海)에 살면서, 매양 달밤이면 술을 가지고 소를 타고서 산수 사이에 놀았다. 평해는 명승지로 일컫는 곳이라, 이군은 옛사람이 알지 못한 묘한 바를 다 얻었을 것이다. 무릇 물체를 볼 때 빠르면 정밀하지 못하고 더디면 그 미묘한 것을 다 얻는다. 말은 빠르고 소는 더딘 것이니, 소를 타는 것은 곧 더디고자 함이다. 생각컨대, 밝은 달이 하늘에 있고 산은 높고 물은 넓어 상하가 한빛으로, 굽어보나 우러러보나 끝이 없다. 만사를 뜬구름같이 여기고 맑은 바람속에 긴 휘파람을 불며 소를 놓아 가는 대로 맡기고 생각나는 대로 스스로 술을 부어 마시면 가슴이 유유(悠悠)하여 스스로 그 즐거움이 있으리니, 이 어찌 사사로움에 매인 자가 능히 할 수 있는 바이겠는가. 옛사람 또한 이 즐거움을 얻은 자가 있었던가? 동파公(蘇東坡)의 적벽의 놀이가 거의 근사할 것이다. 그러나 배를 타는 위태로움은 소 등의 안전함만 같지 못하고, 술도 안주도 없어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 의논함보다는 스스로 휴대하는 편리함만 같지 못하다. 계수나무 돛대와 목란 노는 이미 번거로운 일이고, 배를 버리고 산으로 오르는 것은 수고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소를 타는 즐거움을 그 누가 알리요. 만약 그가 성인(聖人=공자)의 문하에 있었더라면 공자도 위연(喟然)히 탄식하며 소를 타는 즐거움에 동의하였으리라. (*한국고전번역원의 국역을 약간 손봄)

글 속의 주인공 이주도(李周道)는 고려 말에 고관을 지낸 이행(李行 1352~1432)을 말하며, 조선조에서는 전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켜 출사하지 않았다. 호를 기우자(騎牛子)라 하였다. 중종대에 우의정·대제학을 지낸 이행(李荇 1478~1534)과는 다른 사람이다.

 

3

 

소를 타는 것은 신선의 행적과도 관련이 있었다. 노자(老子)는 말년에 푸른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서쪽으로 함곡관을 나가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후 이야기는 수레가 아니라 직접 푸른 소를 타고 간 것으로 변하였고, 그림도 대부분 청우(靑牛)를 탄 모습으로 그려졌다.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라 한다. 푸른 소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검은 소를 검푸르다 하여 청우(靑牛)라 하였으며 우리나라 토종 칡소 같은 종류를 말한다.

 


   정선, 김홍도, 노자출관도(老子出關)

이리하여 청우는 상상 속의 신비로운 동물로 신선의 이미지와 결부되었다. 중종 때의 문신 안정(安挺 1494-1548)의 시조는 그런 신선세계를 꿈꾸고 있다. 중국 천태산은 신선이 사는 산으로 유명하다.

  청우(靑牛)를 빗기 타고 녹수(綠水)를 흘러 건너

  천태산(天台山) 깊은 골에 불로초(不老草)를 캐러 가니

  만학(萬壑)에 백운(白雲)이 잦았으니 갈 길 몰라 하노라.

 

그러나 다음의 그림을 보면 멀리 찾을 것 없이 좋은 경치와 간여할 일 없는 한가함이 곧 신선이라고 하였다. 공감한다. 김홍도의 선인기우도(仙人騎牛圖)이다. 화제(畫題)는 이러하다. 꽃잎은 떨어져 물 위로 흐르고 새는 한가로이 지저귀는데 간여할 일 하나도 없으니 땅위의 신선이로세.(落花流水閒啼鳴 一事無干陸地仙 낙화유수한제명 일사무간육지선)


 

한편 불교에서는 깨우침으로 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아가는 것에 비유하여 그림으로 나타냈는데, 심우도(尋牛圖)이다. 웬만한 사찰에서는 벽화로 볼 수 있다. 모두 10장면으로 그렸기에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그중 여섯 번째가 기우귀가(騎牛歸家),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림이다. 그 게송(偈頌)은 이렇다.

  騎牛迤邐欲還家(기우이려욕환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羌笛聲聲送晚霞(강적성성송만하) 피리 소리 드높고 저녁 노을 붉구나

  一拍一歌無限意(일박일가무한의) 한 박자 한 노래 무한한 뜻을

  知音何必鼓脣牙(지음하필고순아) 알고 있는 사람에게야 구태여 말하랴

 



   조계사, 송광사, 심우도-기우귀가(騎牛歸家)

선가(禪家)에서는 말한다.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 스스로가 다 부처인데 본래의 자기를 찾지 못하고 엉뚱한 데서 찾아 헤매고 있을 뿐이라고. 소를 타고도 소를 못 보는 격이니 눈뜬장님이나 마찬가지라 하겠다불교는 신을 믿고 절대자에게 의지한다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깨치지 못하면 구원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조선중기의 고승 소요 태능(逍遙太能 1562~1649)은 이렇게 읊었다.

우습구나, 소를 탄 자여/소를 타고서 다시 소를 찾는구나(可笑騎牛子 騎牛更覓牛 가소기우자 기우갱멱우) 시는 이어진다.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저 바다의 거품을 다 태워버리면(斫來無影樹 燒盡海中漚 작래무영수 소진해중구) 그때는 깨칠 수 있으려나? 그러나 그림자 없는 나무는 어디서 구하며 바다의 물결은 어떻게 태울 것인가?

 

4

 

소를 타고 유유자적 즐기고 싶은 사람들은 지리산 골짜기에도 있었다. 게다가 옛 방장산은 소를 타고 나서면 곧 신선을 만날 듯한 풍경이 아니었던가? 굳이 신선을 따로 구하고 애써 불로초를 캐러 다닐 일이 있었을까? 김홍도의 그림처럼 소를 타고 느릿느릿 두류산 구석구석을 소요하는 것이야말로 신선놀음이 아니겠는가. 또 모르지, 구석구석 수행하기 좋은 곳 천지니까 그러다 어느날 도를 깨치게 될지도.

우락대(牛樂臺)는 사람들의 그런 염원을 담아 새긴 것이라고 생각된다. 의탄(금계)의 방장제일문(方丈第一門) 각자 바위 아래 시냇가에 있다. 우량관측소 바로 밑이다. 높이 10m에 집채만 한 바위다. 牛樂臺 각자는 그 바위 이마에 새겨져 있는데 이끼가 끼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어렵다. 바위 중간쯤에 계원들의 이름 30여 명이 새겨져 있고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도 않은데 판독가능한 이름은 몇 되지 않는다.









몇몇 분은 바위 윗부분이 삼각형으로 갈모(비 올 때 갓 위에 쓰는 우장)를 닮아 갈모바위라 불렀다고 기억하였다.


우락(牛樂)은 기우락(騎牛樂 *소를 타는 즐거움)의 줄임말로 보인다. 아마 입에 달라붙지도 않는 이름인 기우락대(騎牛樂臺)라고 부를 수는 없어 우락대(牛樂臺)라 칭한 게 아닐까 싶다. 옛사람들은 이름을 붙일 때 말은 끝나도 뜻은 남는 운치를 즐겼다. 우락대도 그런 종류가 아닌가 싶다. 당시에는 우락(牛樂)이라 해도 알 만한 사람은 다 기우락(騎牛樂)으로 알아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몇 사람이 주도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소의 즐거움[牛樂]은 소를 타는 즐거움[騎牛樂]이라야 맞아떨어진다. 나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랬기 때문에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마을사람들도 유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음에 다른 증거가 나타나면 그때 가서 고치기로 하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시냇가 덩그런 바위, 이제 잠시 멈춰 서서 이름 한번 불러주는 건 어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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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애기나리 2020.02.05 08:07  
제가 어릴적에 소먹이러 다니다가 소를 한번 타보고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한번도 시도해 보지는 못했습니다.
뒷발에 채일까 겁이 나서요.
그런데 나만 그런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수수꽃다리 2020.02.05 11:48  
감사합니다
산유화 2020.02.05 22:24  
아우님!
참 재미난 글 잘 보았다오.
옛 어른들의 시조도 다시한번 음미해 보았고
우락대...
조만간에 들러 이름도 불러주고 구경도 해 보리다.
해영 2020.02.07 13:54  
소 말고 썰매 한번 타는 것도 신기했던 말라 비트러진 어릴 때 추억이~~ 몰 하고 살은건지..
말도 타고 낙타도 타고 코끼리도 타보았는데 정작 소는 못 타 봤습니다.
돼지도 못 타봤고.
그러고 보이 입에 들어가는 짐승은 타는게 아닌가 봅니다.
말고기는 제주도 가서 먹었는데..
글이 하두 고급져서리 댓글 쓰기도 부끄럽습니다.

한돌 가수님의 牛調란 앨범의 [소] 란 노래 찾아 듣는데 왜 그리 궁상스러운지...
꼭대 2020.02.25 14:50  
기우도는 몇 번 보았지만 그냥 그러려니 별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엉겅퀴>님 글을 읽고 다시 붙여 놓은 그림을 보니 소 타는 여유와 풍류가 확 느껴집니다.
각박하지 않았던 옛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만, 특히 지리산 골짝에 숨은 듯 살던 사람들은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우락대 작명할 수 있었겠지요. 그분들 뒤따라 <엉겅퀴>님 청우타고 서쪽으로 함곡관 구경한 이야기 자주 기대하겠습니다.

옛날에는 우락대 부근에서 의탄으로 건너가던 섶다리가 있던 곳이지만 지금은 천변 개량공사로 옛 정취는 흔적도 없는데, <엉겅퀴>님 멋진 글 덕분에 우락도 떠올려 볼 거리가 생겼습니다.
까막눈이 2020.02.25 17:40  
소 탈 일은 없을 터이지만 소 탄 듯 느릿느릿 사소~
山용호 2020.02.26 12:17  
아..역쉬 아는 만큼 보이는게 맞습니다. ㅎ 모르고 있었으니 맨날 지나댕겨도 ㅎㅎㅎ
이젠 우락대도 보고 방장산 각자도 보고 불러도 보겟습니다...역쉬 고품격 인문학입니다..ㅉㅉㅉㅉ
뿌구리 2020.03.01 21:33  
지난해인가, 이대장 빼고 백수끼리 마천 입구 방장제일문을 걸어서 지나면서도 우락대를 몰랐군요. 나는 어릴 적에 소도 타 보고, 개와 돼지까지 타 보았으니 행복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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