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폐사지

두류암지(頭流庵址)

가객 | 1867

위치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6

 

문헌에서의 두류암

천령지(天嶺誌鄭秀民 編

정수민(鄭秀民)이 효종 7(1656)에 편찬한 함양(咸陽지역의 읍지(邑誌)로써,저자 정수민이 평생동안 직접 답사하고 수집한 것을 작고 2년 전에 쓴 함양군의 옛날 군지이다.

편자 정수민(鄭秀民, 15771658)은 조선 후기의 학자로 본관은 하동(河東)이며,일두 정여창의 증손이다.

 

(기록내용 및 해제)

두류암 군자사동쪽 30리 지점에 있다.동쪽에 송대가 있는데,운치가 그윽하고 한적하다.지금은 없다.[頭流庵在君子寺東三十里 東有松臺 韻致 幽閑(今無)]

 

두류암의 폐사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써이후 역대로 간행 된 함양군지에서는 두류암의 기록을 볼 수가 없다.

참고로 천령지 이후 역대 함양군지 발간 역사는 1788년 경.1956.1981.1995.2012년 5차례 정도이었다.

 

함양군사(咸陽郡史)

2012년 함양군이 주관하고 함양군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함양의 역사.문화.인물등의 향토지로써,역대에 발간된 함양군지(咸陽郡誌)들을 저본으로 하였다.

 

(기록내용)

郡史 제 3권 문화 편의 없어진 절(弊寺편에서 두류암 추성(頭流庵.楸城)”이 폐사지 목록에 있다.

 

역대 발간된 함양군지에서는 보이지 않음에도 여기서는 간략하게나마 언급을 해 둔 것을 보면 천령지의 두류암” 부분을 참고한 듯 하다.

 

난중잡록(亂中雜錄) (임진왜란 때 남원의 의병장 조경남이 쓴 1582~1610년에 걸친 일기형식의 기록.|

(내용)

1597년 11월 24일 /정유년 만력 25선조 30(1597)

 

....24일 나는 왜적을 함양 음리(陰里)까지 추격하여 178명을 사살하고 데려온 사람과 짐승이 20여 구()나 되었다이때에는 내가 평소에 데리고 다니던 왜놈과 싸워온 경험이 있는 자 10여 명을 구례에 있을 때 김식에게 전부 이속시켰기 때문에 내 수하에는 한 사람의 병사도 없었다. ......당벌촌(唐伐村)에 이르니온 마을이 텅 비어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어둘 녘에 한 사람이 와서 알리기를, “왜적 50여 명이 오늘 낮에 두류암(頭流菴)으로 들어와 이내 흩어져 산을 뒤지고 있습니다.” 하였다다음날 나는 인원을 나누어 적의 정세를 탐지하기 위해 망을 보게 하였더니저녁 때에 정탐한 사람이 알리기를, “왜적은 두 패로 나누어 한 패는 마천곡(馬川谷)으로 들어가고한 패는 음리(陰里)로 향하였습니다.” 하였다이날 밤에 이동하여 등구현(登丘縣)에서 잤다.....

 

 

 

선인들의 유산기 기록(이하 인용한 유산기 문장들은 옛 산행기방에서 본문보기가 가능하기에 관련 문단만 제시한다)

변사정 유두류록.1580(선조 13) 4.5~11). 

.....용유담(龍遊潭)을 지나 두류암(頭流庵)에 도착하였다층층의 벼랑이 깎아지를 듯 솟아 있고 절벽이 만 길 높이로 우뚝 서 있었다온갖 꽃이 다투어 피어나니 꽃향기가 계곡을 온통 뒤덮었다하루 종일 앉아서 완상하니 날이 저무는 것도 몰랐다마침내 선방(禪房)에 들어가 함께 잤다.

 

박여량 두류산일록.1610(광해 2) 9월 2일 ~ 9월 8.

.....두류암과 상류암으로 가는 갈림길에 이르렀다두류암은 예전에 내가 유람하며 쉬었던 곳이지만상류암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라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상류암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도록 강요하였다.

 

유몽인 두류산록. 1611(광해 3) 3월 29~ 4월 8.

동쪽으로 마적암(馬跡庵)을 지났다. ....

드디어 두류암(頭流庵)에 들어갔다암자 북쪽에 대()가 있어 그곳에 올라 정남쪽을 바라보니바위 사이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는데 마치 옥으로 만든 발을 수십 길 매달아놓은 것 같았다저녁 내내 앉아 구경하더라도 피곤하지 않을 듯하였다.

 

김영조 유두류록. 1867(고종 4) 8월 26~8월 29.

....저녁에 송대촌(松臺村)에 이르니마을이 두류산 아래 있어사방에 산이 빽빽하게 들어서서숲과 골짜기가 울창하며시내 소리가 세차게 들리니또 하나의 색다른 경치였다박덕원(朴德元)을 찾아가서 하룻밤 묵었다.

 

고개 하나를 넘어 숲 아래 있는 돌 시내에 이르러각자 소반 위의 배 하나씩을 먹었다큰 언덕을 지나 두류암(頭流菴)에 이르니농가 수십 호가 모두 띠풀로 지붕을 얹고나무를 얽어서 살고 있었다.

 

 

〈 배찬裴瓚 유두류록. 1871(고종 8) 94~9월 8

....비현(扉峴)*[현 사립재]을 넘으며 굽어보니 두류암(頭流庵), 벽송암(碧松庵)인데 이는 함양(咸陽)의 경계이다. ....걸음을 재촉하여 마암의 산막으로 돌아왔다시종이 먼저 도착해서 조반을 이미 지어놓았다밥을 먹은 후에 마침내 바로 두류암으로 내려와 잠시 쉬고 오봉촌 뒤의 산촌에 이르렀는데,....

 

권도용 방장산부. 1922(일제강점기) 422~. 

....두리(杜里)의 폐사(廢寺)를 지나니 양쪽의 바위가 서로 붙어 있는 곳이 있어 무엇이라 부르는지 물었더니 금강문(金剛門)이라 하였다이 또한 승려들이 보이는 대로 갖다 붙인 말이다....

 

폐사지의 형승

대략 천 여평이 훨씬 넘을 듯 한 사지의 군데 군데 기와파편이 너부러져 있으며,계단식으로 층층히 쌓은 축대들과 샘터의 흔적은 물론 배수구의 모습도 완연하게 남아있다.생활도구로 활용했던 돌 절구며 자연석을 이용해서 만든 멧돌등의 석조물도 보인다.

본당 터 추정지 북쪽에는 의탄천(일명 허공다리골)의 계곡미를 완상할수 있는 커다란 너럭바위 조망대가 있기도 하다이부분은 유몽인이 언급한 암자 북쪽에 대()가 있어 그곳에 올라 정남쪽을 바라보니바위 사이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는데 마치 옥으로 만든 발을 수십 길 매달아놓은 것 같았다.”문장과 일치한다한편 본당터의 남쪽에는 석종형 부도 1기가 있어 절의 창건연대를 짐작해 주기도한다.

 

절집의 창건연대 및 폐사연대 추정.

절집이 남긴 관련 문서가 극히 미비하기에 정확한 창건연대를 알 수는 없지만 대개 고려말 조선초에 유행했던 석종형 부도와 진한 흑갈색을 띄는 기와파편등을 참조하면 고려말 혹은 조선초기에 창건된 절집으로 추정이 되며,폐사시기는 1656년 정수민의 천령지에 지금은 없다” 의 기록과 변사정.유몽인의 유산기를 참고해 보면 조선중기대로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유몽인이 다녀온 1611년 이후 약 20~30년 간에 폐사가된 것으로 추정을 할 수 있다.

 

두류암 폐사이후 근대까지의 두류암지 현황

두류암 사하촌 마을 광점동 추성리 사람들은 두류암지 그곳을 두람동이라고 부른다.“두류암동의 줄임말로써 폐사이후 두류암은 일개의 부락명 두람동으로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두람동에는 근대 70년도 중반까지 사람이 거주했으며,당시 거주자 중의 한 분은 지금도 광점동에 살면서 두류암지 근대 역사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유몽인 이후 250 여년의 세월이 흐른 시점에 쓰여진 김영조의 두류암(頭流菴)에 이르니농가 수십 호가 모두 띠풀로 지붕을 얹고나무를 얽어서 살고 있었다.”고 한 기록에서  폐허의 절터에  산민들의 집단부락이 형성 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절 주변 척박한 골짜기의 환경을 보면 수 십호의 농가와 절집이 공존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그러하면김영조가 언급한 두류암은 당시 절을 명칭한 것이 아니고 일개의 부락명으로 일컬은 것으로 보인다김영조 4년 후배찬이 비현(사립재)에서 보고,하산중에 들러서 쉬었다는 두류암 역시 산간마을의 명칭  이었을 것이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등장하는 선열암 신열암 고열암등은 두류암 지척 상내봉능선 너머의 절집들이다.천령지의 기록에는 이 들 절집들도 금무(今無즉 지금은 없다고 했다.

추측컨대,지리적 요소로 인해 한 때는 천왕봉 등정 유생(儒生)들의 숙박장소가 되기도 했던 두류암을 비롯한 지리산 암자들이 배불정책의 조선의 역사에서 견딜 수 없어 사라졌다고 보아진다.

조선 후기,진주민란 을미사변 등 나라의 어지러운 난세를 피해 대책없이 지리산으로 흘러 들었던 조선 유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준 곳이 두류암 사지이다.

 

<<지도와 유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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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성리 산 6임 네이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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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령지에서의 두류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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