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사람
新版 林巨正 (학병거부자의 수기 제 3 부) - 하준수(河準洙)
실성한 과부
기나긴 여름해도 거의 기울어 으슥으슥 땅검이 들 무렵이었다. 우리 당원들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제각기 지껄이면서 유쾌하게 저녁밥을 먹고 있을랴니까, 때마침 쌀을 구하러 하산하였던 당원들 중의 한패가 들어들 오는데 그들의 행색이 예사때와 달랐다.
그들은 들어오든 말에 다짜고짜로 큰일났다 하였고, 또 뒤미처 같이 내려갔던 패 중에서 ○○골로 간 趙 崔 金 세 동무가 어제 밤에 그곳 주막집에서 잡혀갔다 하면서 연방 밖을 내다보는 것이 수상하여, 우리들이 잼쳐 물어라 하였더니 그때서야 한 동무가 “들어오시라요. 아주머니!” 하고 나갔다. 우리는 벙벙히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한마디의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동무 셋이 왜놈들한테 붙잡혔다는 것만도 우리에게는 여간 큰 충격이 아니었는데 그 우에 그들은 새파란 젊은 여인네 하나를 다리고 들어왔다. 그 여인은 무엇이라 말하려는 듯 머뭇머뭇 거리다가 파랗게 질려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여인의 머리는 흐트러지고 입은 옷은 갈 갈이 찢어져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대체 이렇게 험한 산중에 저런 여인네가 무엇 하러 왔을까? 어떻게 걸어서 찾아왔을까.....
그러나 그들의 하는 이야기로 우리들의 質疑는 차츰 풀어졌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그들이 산발치의 마을 □□골(세 동무가 잡힌 ○○골과는 다른 방향의 마을)에 내려가서 쌀을 구해가지고 산중턱을 올려 오려니까 어떤 여인이 험한 벼랑길을 허우단심 하고 기어 올라 가는데 그들은 먼발치로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랬다고한다. 웬고하니 이곳은 험한 산중이라 산 아래 발치마을과도 오십 리를 격(隔)한 곳으로서 잔弱한 여인의 몸으로는 도저히 올 수 없는 곳일 뿐더러 그가 이곳을 더 파고 든다한들 인가 하나 있을 리 없는 때문이다.
대체 이이가 실성한 사람이나 아닌가하고 그들이 멀리서 발을 멈추고 살폈더니 그 여인은 아래도 내려다보지도 않고 실성한 사람처럼 무턱대고 길도 없는 벼랑으로 기어 올라가다가 인제는 더 갈수도 없고 다시 내려올 수도 없는 옴삭달삭할 수 없는 그러한 곡경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그는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듯이 무엇이라 몇 마디 고성을 지르더니 다시는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 후에 그 高聲은 산울림이 되어서 다시 돌아왔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그 만세 소리는 하늘에서 새어나오는 듯 온 산중을 흔들었다.
그들은 소스라치듯 깜짝 놀랐다. 다음 순간 정신을 가다듬고 올라가서 그 여인을 다리고 내려온즉 그는 새파랗게 질려서 말 한마디 못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를 주워섬기는데 “나의 남편을 도로 살려 보내라”는 둥, “수돌이는 유복자인데 壽하라고 수돌이라 불렀는데 그놈마저 제 아비 따라 가버렸다”는 등, ‘어젯밤엔 수돌이가 날 보러 온다길래 金첨지 집에 수돌이를 보러갔더니 그놈의 왜놈들이 엄마 보러온 수돌이와 날 보러온 수동 아비까지 잡아갔다“는 둥,
그러나 그들이 함께 놀란 것은 그 여인의 죽은 남편과 그들의 유복자 수돌이가 그를 만나러 어젯밤 金첨지 집에 왔다가 악착스런 왜놈순사가 도로 붙들어 가려할 제, 때 마침 그곳에 있던 괘관산 도령 셋이 그들과 다투다가 함께 모두 다 붙잡혀 갔다는 대목이었다.
실성한 과부 2
실성한 여인의 나이는 올해 스물일곱으로 지금으로부터 삼년 전에 어디선가 괘관산 발치 ○○마을로 젊은 내외 단둘이 떠들어와선 외 따른 곳에 단칸방 오막살이 하나를 지어들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떠들어왔는지 마을사람들한테 일절 알리지 안했다.
그들도 마을 사람들하고 일절 가까이하지 않았고 이따금 남의 집에 품도 팔았지만 그들 과거에 대하여서는커녕 대체가 남하고는 말대꾸를 하지 않았다. 젊은 남편은 우직하리만치 성질이 온순하였고 그의 아내는 해사하게 생긴 얼굴에 언제나 수심이 가실 날이 없는 듯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한번도 젊은 내외가 웃는 것을 보지 못했다. 도대체 그네들은 어떠한 과거를 가진 것일까?
남편의 말소리에 약간 충청도 사투리가 섞여 있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충청도 사람인가 짐작하였을 뿐 젊은 아내의 말에는 충청도 사투리는커녕 이런 산골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애틋한 서울말씨였다. 그들은 내외가 모두 일만 있으면 어느 집이나 또 무슨 일이나 가리지 않고 품을 팔았고 그 외에는 틈나는 대로 산기슭에다 밭을 이뤘다.
그러나 군에서는 일본으로 다려 갈 노동자들의 할당을 지시하여 성화같이 독촉하는 판이라 면에서는 또 각 구에다가 지시를 내려 자기면의 할당 숫자를 채우느라 갖은 악스러운 술책을 다하였다. 그러한 틈바구니에 끼어서 더구나 타지에서 떠들어와 아무 일가친지조차 없는 젊은 남편이 가장 만만하게 걸려든 것은 정한 이치였다.
그는 한마디의 거부조차 않고 일년 작정으로 일본 땅 북해도의 어느 탄광으로 끌려간 것이 지금으로부터 두 해전 여름이었다. 그때 아내의 뱃속에는 여섯 달 째 된 아이가 들어있었다. 남편에게선 일본으로 건너 간지 석달만에 어린 것 낳거든 부디 내 걱정 하지 말고 잘 길러라는 옆서 한 장이 왔을 뿐, 어린애를 낳아서 백날이 되어도 소식이 없었고, 그해 겨울을 나서 그가 오마든 일년 기약의 이듬해 여름이 되어도 남편은커녕 그가 부친 옆서 한 장 오질 않았다.
젊은 아내는 저녁마다 별별 흉악스러운 꿈을 모두 다 꾸었다. 남편이 석탄굴 속에 파묻히는 꿈, 흙차를 밀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꿈, 또 허허바다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리다가 어린 수돌이와 함께 가라앉는 꿈.....
그것은 수돌이 세살 먹든 해 이른 봄이었다. 남의 집에 가서 절구질을 할때부터 등에서 보채는 아이가 저녁이 되어 집에 돌아와서부터는 불덩이가 되어서 밤새껏 자지를 않고 똥질을 하였다. 무엇에 체하였나 하였더니 그 이튿날부터는 눈에 눈곱이 끼고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홍역인가 보다하고 겁이 덜컥 들든 참인데 사립문 밖에서 낯선 사나이의 음성이 들리었다. 누구시냐고 지게문을 열든 그는 깜짝 놀랐다.
문밖에 와 선 이는 바로 이태 전에 자기의 남편과 같이 이 마을서 징용 갔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들어오라 해도 굳이 문밖에 서서 거북스러운 말투로 당신 남편이 북해도 간쓰매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징용간 지 석달만에 잘못하여 그만 기계에 치어 죽었는데 이것이 죽기 전에 부탁받은 물건이라고 자그마한 보퉁이 하나를 떠맡기곤 가버렸다.
그 일이 있은 지 몇 일후이었다. 젊은 아내가 실성하였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비로소 알은 것은. 그리고 그의 등에 늘 업히어 다니던 수돌이까지 죽고만 것도....
실성한 과부 3
어저께 아침밥들을 일찍암치들 먹고 쌀을 구할 겸, 화전수곡을 앞두고 그 연락 차 발치마을로 각기 내려간 패들 중에 趙 崔 金 세동무는 ○○마을에서 아주 하룻밤 묵을 셈 대고 천천이들 놀이삼아 마냥 걸어서 ○○마을에 닿은 것은 대낮도 훨씬 지난 오후 서너시 쯤이었다. ○○마을은 지난 5월 달에도 사냥 나갔다가 하룻밤 즐거이 새운 곳이라 우리에게 낯익은 얼굴도 몇 사람 있었고, 또 우리들은 사냥한 산돼지 고기도 順히 주었을 뿐더러 도중에서 식량 대신 베뿌쟁이를 뜯고 있는 농군들을 만나면 우리가 지고가든 쌀을 절반씩이나 나눈 적도 있기 때문에 대체로 그 고장사람들은 우리를 가리켜 괘관산 도령들일라 불러 오히려 숭상하는 편이었다.
그들이 몇 군데 돌아다니면서 볼일을 보고 그 중에 어느 집 사랑방에 들어서 저녁밥을 먹을려니까 저녁상이 들어오는 대 여니 때와 달라, 그 인고를 물으니 주인 영감하는 말이 다름이 아니라 오늘밤에 요 뒤 우리형님 댁에 병인이 있어 대감놀이를 하오니 손님이 시끄럽더라도 널리 용서를 하시란다. 아닌게 아니라 떠들썩하니 아까부터 어디선가 가까이서 장구소리가 들리었다. 주인이 권하는 대로 술에 밥에 배불리 먹고 드러들 누워서 오래간만에 듣는 장구소리에 장단을 맞추다가 고단한 몸이라 어느 듯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를 잣는지 밥도 이슥하였다. 별안간 굿하는 집에서는 장구소리 대신으로 날카로운 여자의 목 따는 소리가 들리었고 거기에 응 하여는 짖궂은 사내들의 야료하는 소리가 어울렸다. 이년 저년 하다가 나중에는 주먹으로 마 때리는지 사람 살리라는 외마디소리까지 났다.
“이 놈들 우리 수돌이 살려내라. 우리남편 살려내라. 너이 놈들이 잡아다가 모두 다 죽였지...”
셋 중에 잠귀 밝고 성미 팩한 崔동무가 벌떡 일어나서 지게문을 차고나갔다. 금시로 이놈 저놈 이쿠 저쿠 하더니 주인영감이 황급히 대들어서 趙동무와 金동무를 딥다 깨었다. 趙동무와 金동무가 놀라 깨어 싸움터로 가 보니 崔동무가 마을 청년단 놈들한테 한창 몰매를 맞는 판이다. 물과 불을 헤아릴 때가 아니었다.
모두들 한창 기운이라 잠시는 치고받고 하였지만 셋이서 십여 명을 당치 못하고 마을 불량배에게 실컷 얻어맞은 끝에 때마침 연통을 받고 달려온 왜놈순사 포승줄에 엮이었다.
“너희 놈들이 바로 괘관산에 몰려있는 그놈들이구나. 그렇지 않아도 아까 道警察部에서 지령이 나와 도내 경찰관들을 모두 다 풀어서 몇일 있으면 너희 놈들을 모조리 잡으러갈 작정인데” 하며 구둣발길로 마구 걷어차며 따귀를 내려 갈기고는 그들이 묵든 집주인까지 함께 끌고 갔다. 그곳에 있던 불량배들도 왜놈순사를 護術하듯 둘러싸고 따라갔다.
“흥 이놈들 내일 봐라! 어디 내일도 너희 놈들이 헛자를 부릴 텐가” 실성한 과부는 비웃듯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대한독립만세!
이것은 우리가 나중에야 마을에 내려간 다음에 알은 사실이지만 趙 崔 金 세 동무가 ○○마을에서 잡힌 경위는 대강 이상과 같았다.
그래서 실성한 과부가 어떠한 행동으로서인지 그 이튿날 산중에서 우리 당원들한테 救險을 받아 산막까지 와서는 그만 혼도하여 버린 다음 그는 밤새껏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종시 헛소리로 “흥 이놈들 내일봐라. 어디 내일도 너희 놈들이 헛자를 부릴 텐가...” 하며 밤을 밝혔다.
그는 필시에 우리들이 내일이면 곧 내려가서 그놈들을 때려 부수고 또 우리의 동무 셋을 도로 찾아오리라 믿고 있는 성싶었다. 그 여인은 우리들의 힘을 그렇게도 믿고 있는 것일까.
여하튼간에 우리는 내일 새벽에 하산하여 붙잡힌 우리 동지를 도로 뺏어 오지 않으면 않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잡혀간 것이 어저께 밤이요, 벌써 오늘 하루 해가 지난 다음이라 그놈들이 이 세 동무를 입때껏 그 마을 주재소에 두었을 리 만무하였다. 만일에 그 마을 주재소에다가 그대로 가두어 두었다면 우리가 그들을 구출하기 여반죽이겠지만 오늘 낮에 벌써 邑 警察署로 옮기였다면은 일을 버리기가 조금 난처하였던 것이다. 어찌되었던 간에 우리는 내일새벽에 일찍이 00마을까지 내려가 보기로 하였다. 그 이튿날 새벽에 우리는 동도 트기 전에 몇 명을 추리어 가지고 길을 떠났다. 손에다는 제가끔 몽둥이 하나씩을 쥐고서 우리들이 虛位丹心하여 대낮이 채 못미처 00마을 어구를 휘어들 제 우리들은 제가끔 귀들을 솔깃하고 또 제가끔 서로 얼굴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들은 들었든 몽둥이를 그 자리에 내어던지고 금시로 남이 된 듯이 제가끔 죽어라하고 달렸다. 똑 바른 고장을 향하여, 내 눈앞에 迫到한 그리운 우리 祖國을 향하여.... 우리의 발길은 허공에 떠서 우리들의 들뜬 마음은 하늘까지 닿게 하였다. 길 끝에서는 처마 끝에 달린 종이깃발이 우리들을 향해서 손을 저었다.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면사무소 앞 넓은 마당에는 흰옷 입은 동포들이 모여서서 무시로 두 손을 들고서는 목이 터져라하고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대한독립만세! 늙은이도 젊은이도 부르짖었다. 누나도 그 어린동생들도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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