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사람

<서산>대사의 지리산 자취 – 2. 낭만적인 출가를 감행한 [원통암(圓通菴)]

꼭대 | 6342
  

    

 

<서산(西山)>대사는 우리에게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분으로 잘 알려진 분인데,

지리산으로 출가하여 오랜 시간을 지리산에서 보내면서 수행과 학덕을 쌓아 불교계에서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주저 없이 꼽히는 대단한 분이다.

 

이와 같은 대선사께서 어찌 지리산에서 출가하게 되었는지 어찌 지리산 산중 암자에서 청장년 시기를 머물면서 오늘날까지도

이어오는 청허문중을 이루셨는지 오늘날 지리산에 입산하는 산꾼들이 새겨볼 일이다.

 

 

 

대사는 1520년 평안남도 묘향산 인근의 안주에서 태어났다.

 

아홉살과 열살 때 각각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지만 훗날 지리산에 입산하게 되는 장면을 보면,

유년기에 보고 자란 낙천적이며 세상에 욕심 없는 부모의 성정을 물려받은 것 같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는 호인이었는데, 조그만 벼슬을 내려도 [정든 산, 희뿌연 달과 한 병의 막걸리, 아내의 즐거운 마음이면

나는 그 것으로 만족한다오.] 하며 거절하였다.

 

어머니도 항상 세독의 술을 빚어 아버지와 손님이 함께 취하지 않는 날이 없게 하면서 [다정한 친척이나 친한 벗을 보거든 행

여 집이 가난하다고 박정하지 마시오. 첩의 치마라도 잡혀 대접하리...] 하였다니

세상의 욕심에 초월한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란 유년시절이 결국 대사가 지리산에 빠져 머물다가 속세의 미련을 버리고 출

가하게 된 근본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신 10살 때 안주 목사의 양자가 되었고 서울로 와서 공부를 하였다.

15살 때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과 호남의 고을 원으로 부임한 스승을 만나러 호남으로 떠났으나,

마침 스승이 모친상을 당하여 거꾸로 서울로 돌아가는 바람에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곤란한 상황에 답답해하던 차에 한 소년이 [스승을 찾아 천리를 왔는데 일은 비록 틀렸지만 이런 명승지에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겠는가. 천천히 이 남방 산천이나 구경하며 노는 것이 좋겠다.]하여 지리산으로 들어가 크고 작은 절들을 찾아 다니며

반년을 떠돌게 되면서 우연찮게 찾았던 지리산 깊은 산중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만난 <숭인>대사가 유독 대사에게 일컫기를

 

[자네를 보니 기골이 맑고 빼어나 절대 보통사람이 아니다.

마음을 돌려 심공급제(心空及第 -심공은 마음이 한없이 크고 넓어서 우주 만유를 다 포함하기 때문에 허공같이 어떠한 것에도

조금도 구애를 받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데 사람의 마음이 심공의 상태가 된 것을 심공급제)하면 영원히 세상의 명리(名利

예와 이익)를 끊고 고통을 떠나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서생들의 일이란 아무리 온종일 노력해도 백년동안의 소득은 다만 하나의 헛된 이름뿐이니 참으로 슬프지 아니하냐.]

 

하면서 은암(隱菴 지금의 연암)에 머물던 <부용>대사에게 소개하게 되고, <부용>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행자생활 6년 끝

21세 때인 1540년 지리산 의신에 있는 원통암에서 삭발 출가하게 되었다.

 

이때 얻은 법명(法名)이 <휴정(休靜)>이며, 후에 [내은적암]을 [청허원(淸虛院)]이라 명명하고 스스로 붙인 법호(法號)가 <청허(虛)>이며,

말년에 묘향산에 머물렀다 하여 <서산(西山)>이라 한다.

 

 

<서산>대사의 문집인 [청허당집]에는 주옥같은 시들이 실려 있는데, 이 중에 출가할 무렵 썼을 것으로 보이는 출가시(出家詩)

로 알려진 [화개동]이란 시를 통해서 장차 대선사가 될 21세 청년의 놀라운 각성과 감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화개동(花開洞)

 

화개동에 꽃이 지는데

청학의 둥우리에 학은 아니 돌아오고

잘 있거라, 홍류교 아래 흐르는 물이여

너는 바다로 돌아가고 나는 산으로 돌아 가려네

 

 

 

이리하여 우연히 나섰던 지리산 유람길에 지리산에 빠지게 되고 결국 속세를 떠나 출가하게 된 <서>대사의 발자취를 살펴

보면  우연찮게 지리산행에 나섰다가 지리산 아흔아홉골을 떠돌게 된 지리산꾼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지리산행을 통해서 심공급제(心空及第)를 꿈꾸면서도 세상의 명리와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업보를 받은 미련한 중

생들이라 시지프스처럼 지리산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고를 끝없이 반복하고 있는 수련을 당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덕평능선 산행 들머리로 많이 이용되는 원통암에 가거든, 원통암에서 뒤돌아서서 본존불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탁 트인 조망

바라보며, 15세에 지리산에 들어와 21세에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출가를 감행 <서산>대사의 생애를 떠올려보며 자신을

번 되돌아 볼 일이다.

 

 

 

<서산>대사의 생애가 전해지는 문헌은 극히 미비한데, <서산>대사가 스스로 양력을 소개하고 있는 [완산 노 부윤에게 올리는 글]이 유일하다시피

했는데 여기에도 지리산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간략하게 서술할 뿐, 어느 암자에서 출가했는지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서산>대사의 제자였던 <경헌>대사의 [제월당집]이 발견되면서 출가한 암자가 [원통암]으로 밝혀졌다.

 

 

 

 

 

 

**참고문헌

1.     화개면지편찬위원회 - [화개면지]

2.     하동군 - [서산대사 유적지 정비사업 계획서]

3.     <서산대사> - [청허당집]

-본문의 많은 내용을 참고문헌에서 발췌하여 인용하였습니다.

 

 

fb52ba2e2c9fc33482541a4ad72eeffd.jpg

*원통암 주변 지형도

붉은색선; 의신-원통암 산길 

  

 

 

fde6292466e7d0e2f813c92212458bd0.jpg

*원통암  (<청호>님 사진)

  원통암은 오래전 폐사되었으나 1987년부터 1994년까지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cad0a8052c96c681f6039d8ee8f7ae33.jpg

*원통암에서 바라본 지리산 조망 (<청호>님 사진)

 

 

 

 

 

10 Comments
객꾼 2011.11.10 21:35  
조선조의 주요 통치철학 중의 하나가 숭유억불인 것으로 배웠고 별 생각없이 그랬거니 하였난데,
1530년대에 출가하신 휴정스님이 항차 행자생활를 6년이나 하시고서야 그 수계를 받았다(받을 수 있었다)함에....
우리가 옛 조선조시대의 산행기들을 읽어 보면 지리산중은 그야말로 절반산반인 것이고,
하모 이런 사유로 보자면 결코 조선의 불교나 고려조의 불교나 별반 그 차이는 없는거 같은데....
우리의 50년 근대사도 그렇거니와, 최근 500년 근대사도 어덴가 중요한 그 맥점을 잃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듭니다
내 식솔의 호구가 걱정되지 않은 인연이 우연히 따르면 한문학을 전공하야 베이징등에 유학하고자 하는 생각이 많았는데,
안되겠어
사학을 전공하야 일단 근래의 역사부터 바로 세워야 겠어
유키 2011.11.10 22:20  
문헌에서 발췌하여 소개해 주신다고 애써신 꼭대님께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 ^*
읽다가 오타를 발견하였어요 서산대사가 사산대사로 표기 ㅎㅎ
 
몇년 전, 원통암은 진주비박팀 신년산행지 영신대로 향하던 초입였는데
뜻하지 않은 유키전쟁으로 하마터면 원통암을 못보는 원통한 사태가 벌어질 뻔 하였던 일이 떠오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 때는 아는 것이 없어 암자마당의 한 쪽
빨랫줄에 가지런히 널린 빨래와 빨래집게만이 깊게 인상에 남아 있을 뿐이지만
그날 보았던 아늑했던 공간과 맑은 샘물의 원통암이 꼭대님께서 들려주시는
[낭만적인 출가를 감행한 원통암] 이야기와 매치 오버랩 되면서
깊이있게 재음미합니다.
 
휴정, 청허, 서산대사가 모두 한 인물, 아이고 복잡해요 ㅎㅎ
어저께 황당한 일을 겪어서 계속 머릿속에 꾸정물이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리고 있는데
우짜믄 심공급제 하여 영원히 기쁠 수 있을까요
 
 
다우 2011.11.11 00:21  
" 마음이 꽉 차있어야 생각이 깊고 지혜롭다고 할 것이며
  슬기로운 사람으로 쳐주는 것이 일반적인 상정인데
  그와는 정반대로 심공(心空)은 마음이 텅 비었다는 것을 뜻할 터인즉, 거기에 다시 급제(及第)라는 말이 붙었으니
  그런 말장난이 어디 있는가. 
  그렇다면 한 번 따져봐야겠다
  그러고는 여신이  숭인 장로에게 다가앉으며
  `심공급제가 뭡니까 ? `...............  "
 
요즘 읽고있는 서산 관련 책들중에 `서산의 사상`을 쓴 신지견의 장편 `서산` 10권 소설 속의 한 토막을 발췌 편집헀습니다
 
 
 
 
유키 2011.11.11 09:34  
다우선사님
책 벌거지 앞에서 책자랑을 하십니까
서산 다 읽고 나시면 좀 빌려주셔요
책장에 꽂아 둬 봐야 먼지밖에 더 앉겠습니까요
(흠, 다우님은 암만케도 문짝달린 책장에 소장할 거 같애......)
 
책값이 만만치가 않네요 10권이라니
한꺼번에 살려니 목돈이고 태백산맥을 한 권씩 사다가 봤더니
서점 주인왈, 어차피 다 읽을 거 한참에  사서 보시죠. ㅠㅠ
애들 곧 겨울 방학하고 나면 지리구구 접속 나들이도 잘 안될 꺼이고
죽어라고 책만 붙잡고 있어야 하는데...... 새 책은 못사고 남한산성을 5번 째 리플레이 하고 있는 지경입니다
 
구걸구걸~ 11-11-11 일부터 구걸구걸~ ㅋㅋㅋ
다우님 빼빼로나 가래떡 대신 를 드릴게요^ ^*
절대 할미꽃 아님.
 
은총을 베푸시면
객꾼님께 책 빌리면서 생막걸리 사겠다고 하시고 아직 사지 못하시는 꼭대님과 달리
저는 꼭 생막걸리 쏘겠습니다우~
다우 2011.11.11 12:04  
공개적으로 요구하니 청이라기보다 강요 수준이네....ㅋ
 
서산은 지금 읽고 있는 중이고
이미 읽은 최명익의 `서산대사`를 먼저 빌려 드리죠
작가가 1903년 생인데 북한 말씨에다 향토색 짙은 옛날 말투여서
초반 읽기가 어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난 재미있게 읽었소
 
고충경의 여동생 보패가 왜구에 잡혀  왜장 앞으로 불려나가
` 날 죽일 수는 있어도 욕 보일 수는 없다(可殺不可辱) ` 며 악바리 치는 부분을 사무실에서 읽을 때
밖에서 고객들이 기다리게 한다며 엄청 짜증을 내는데도 아랑곳없이 마저 다 읽고 난 후에야 다시 일을 보았소
 
내가 좋아하는 건 막걸리도 꽃도 아닌 홍옥같은 것이요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만큼 좋아하거든요.........................ㅋ
귀소본능 2011.11.11 08:22  
"화개동에 꽃이 지는데
청학의 둥우리에 학은 아니 돌아오고
잘 있거라, 홍류교 아래 흐르는 물이여
너는 바다로 돌아가고 나는 산으로 돌아 가려네 "
 
캬 듁인다.  ^^*
행님 이것 좀 가차 하겠습니다.
 
 
 
산나그네 2011.11.11 09:02  
요즘 미지근한 지리산에 대한 열정이
서산으로 하여금
새로운 불길을 당길 것도 같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뫼가람 2011.11.11 12:47  
얼마전 원통암 옆마당에서 술한잔 마시며 쉬던때가 문득생각납니다.
시기적으로 이맘때가 또 제격일 것 같은데.....
엉겅퀴 2011.11.11 13:33  
禪家에서는 서산대사가 입산할 때의 일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져 온다고 들었습니다.
숭인스님이 보기에 열다섯 나이에도 똘똘한지라, “모름지기 대장부는 하찮은 벼슬자리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큰마음 먹고 부처되는 공부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꼬셨답니다.
소년 왈 “부처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스님 왈 “마음을 비우면 되느니라.”
“얼마나 걸리는데요?” … “평생을 바쳐도 이룰 수 없을지 모른다.” “아, 그렇게나요?” …
“이번 생은 태어나지 않은 셈 치면 되지 않겠느냐?” … “예, 하겠습니다.” 했다나...
 
옛 중국 禪의 황금시대에 우수한 인재들이 출가하려고 줄을 섰는지라 禪房을 選佛場, 즉 부처를 뽑는 과거장이라 일컫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그때 과거급제에 빗대어 心空及第라는 말이 나왔는데, 방거사(龐居士)가 처음 한 말이랍니다.
居士는 불교에서 출가하지 않고 경지에 이른 在家弟子를 이르는 말인데, 부처님의 직접제자로는 유마거사가 유명하고 중국에서는 방거사가 알려져 있습니다.
마등자 2011.11.11 16:41  
일찍 열거 하셨다면 이몸도  원통암에서  서산대사를 따라 출가승이 되지 않았을까 ,
조심스럽게 자문자답 해 봅니다 ,
지리산을 들면 꼬리에꼬리를 붙는  속세의 번뇌들 ,
유감없이 훌훌 벗어 버리고 이런곳이면  남은 생 보낼수있지 않을까 유혹의 끝이  없더군요 ,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어쩌겠읍니까 ,
꼭대님께서도 집필 하실때 잠시나마 저와 같은 마음을 먹었으리라 믿고요 ,
서산대사님의 생애를 더듬어 보면  한가지는 계시를 해줄것이라 믿고
원통암을 다시 답사 하겠읍니다 ,
감사 합니다 ,,,,
 

Total